Monday, March 28, 2016

Day #46: Vigil - 10년만의 부활 성야 미사

방금 부활 성야 미사에 다녀왔습니다.

그동안은 내내 저희 성당의 부활 성야 미사만 다니다가, 이번엔 처음으로 동네 성당의 부활 성야 미사에 참례했습니다. 이런 대축일 미사를 아이들이 자기들에게 가장 편한 언어로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었거든요. 그러고 보니, 처음인 것은 부활 성야 미사를 영어로 봤다는 사실 뿐만이 아니로군요. 큰 아이 같은 경우, 유치원 이후로 부활 성야 미사에 참례한 것이 이번이 처음입니다. 정확히 10년만에 처음이네요.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성삼일을 모두 빠지지 않고 성당에 나온 것도 이번이 처음입니다. 사순 시작때부터 작정을 했던 것은 아니었고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지만, 제가 제 손으로 제 등을 잘 했다 하고 토닥토닥 두들겨 주고 싶네요.

10년전, 분위기 파악 못하고 부활 성야 미사에 갔다가, 게임기 가지고도 달래지지가 않을 정도로 그 긴긴 미사 동안, 몸을 비비틀며 주변에 앉은 사람들까지 분심들게 만드는 큰 아이와 졸려서 찡찡대는 작은 아이와 씨름하느라 다음날 몸살이 난 다음부터는, '애들 데리고는 절대 못 볼 미사'로 분류해 버리고나서 애들한테 한번도 부활 성야 미사 가자 소리를 하지 않았던 덕에, 오늘 큰 아이를 미사에 데리고 나오기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철수: "어제도 가고 그제도 갔쟎아?"

지아나: "일년 중에 가장 중요한 3일이야. 어제 그제 갔어도 오늘 안 가면 의미가 없는 거야."

철수: "그냥 주일 미사만 보면 안되는 이유가 뭐야?"

지아나: "주일날 보는 부활절 미사는 간단 버전이고, 오늘 보는 미사가 진짜 부활절 미사야. 너 한번도 제대로 부활 성야 미사 본 적 없쟎아. 그 미사도 한번 안보고 어른이 되는 건 부끄러운거야."

철수: "숙제 가져가서 하면 안 돼?"

지아나: "그래도 되는 거였으면, 아예 가자고 하질 않았지."

철수: "난 미사내내 그냥 잘거야."

지아나: "그래, 졸리면 그냥 자."

철수: "영희(동생)는 그렇게 긴 미사 보기엔 아직 너무 어리쟎아?"

지아나: "영희는 그래도 긴 미사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철이 들었어. 너는 철이 들었어야 하는 만큼 나이를 먹었고."

무슨 말을 해도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석을 찾길래, "엄마가 너로 하여금 새로운 것에 도전하게 하는 거야"라고 했더니만 더이상 얘기를 못하더군요 (요즘 '도전'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었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큰 아이를 데리고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활 성야 미사의 빛의 예식 장면 1
빛의 예식 장면 2

성당에 미사 시작 5분전에 도착했는데, 성당 밖에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대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생겼나 했는데, 알고 보니 여기 성당은 마치 성지 가지 주일에 사람들이 밖에서 성 가지를 흔들며 성당 안으로 입장을 하듯, 밖에서 부활 초에 불을 붙인 다음 각자 초에 불을 붙여 성당 안으로 촛불을 들고 입장하면서 빛의 예식을 시작하더군요. 그런데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촛불을 붙여 들고 들어오면서도 여러번 꺼뜨려 다시 붙이고 또 다시 붙이고 성당안에 들어와서도 촛불 가지고 장난치는 큰 아이를 보면서 '언제 철들라나...' 싶기도 했지만, 잘 모르는 화답송이나 성가들도 나름 열심히 따라 부르고, 그 긴 여러차례의 독서 중에도 졸지 않고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모습이 그래도 기특했습니다. 뭔가를 보면서 손톱을 물어뜯고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은 뭔가 굉장히 집중했을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버릇이거든요.

2시간까지는 어느 정도 버틴다 싶었는데, 2시간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언제 끝나느냐고 계속 물으며 주리를 틀기 시작하더군요. 미사는 약 2시간 반정도 걸렸는데, 끝날 무렵 퇴장 성가가 나올때 저를 옆구리로 툭툭 치며 저쪽을 한번 보라며 눈짓을 했습니다.

그쪽을 보니, 어느 젊은 부부가 완전히 잠에 곯아떨어진 아이를 하나씩 들쳐업고 퇴장 행렬이 시작되기 전에 성급히 성당을 나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딱 10년 전에 너희 모습 생각난다" 하고 얘기했더니 큰 아이가 씨익 웃더군요.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10년 전에 저랬을라나 하는 생각을 자기도 했는가 봅니다.

드디어 미사가 끝나고 성당을 나섰습니다. 자기는 미사 중에 잠자야 한다며 굳이 맨 뒷줄에 자리를 잡았던 덕에 군중들 중에서는 거의 맨 처음으로 성당을 나섰습니다. 성당을 나서자 마자 퇴장 행렬을 막 마친 복사들에게 주임 신부님이 안수와 강복을 해 주고 계셨습니다.

그 옆을 지나쳐 아이들이 주차장으로 걸어나가길래 붙들어 세우고, 신부님이 강복을 마치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부활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였습니다. 그냥 갈 수도 있는데 굳이 인사를 드리고 싶었던 이유는, 그 전날 성금요일 십자가 경배와 미사 없는 영성체 예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데 이 신부님이 저희에게 굉장히 관심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성금요일 예식 내내 저희 바로 뒤에 앉아계셨는데,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나이어린 학생들이 별로 많지 않았는데 그래서 일부러 좀 챙겨주셨는지 아니면 뭔가가 눈에 띄셨는지 집에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독히 큰 아이에게 '이름이 뭐냐, 우리 전에 인사 나눈 적이 있었냐, 만나서 정말 반갑다' 하며 관심을 보여 주셨거든요.

신부님이 강복을 마치시길래 신부님께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처음으로 다다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금방 알아보시더군요. 큰 아이를 보면서 "우리 어제 만났지? 이름이 뭐였드라..." 하면서 아주 비슷하게 맞추시더라구요. 그리고 미국 사람에게는 어려운 제 이름도 비슷하게 맞추시고... 그러더니 이번에는 성씨까지 물어보시더군요 (그것까지 기억하시기에는 좀 어려우실텐데...). 어쨌든 이번에도 큰 아이 손을 꼭 잡으며 "미사에 와 주어서 정말 고맙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사실은 제가 더 고마왔습니다.

이번 부활 성야 미사가 아이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았을지 궁금합니다. 그렇지만, 묻지는 않았지요. 그건 어쩌면 그 아이에게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나오는 '코어 메모리(Core Memory)'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보기에도 따뜻해 보이던 그 신부님의 손길을 그 안에 오래오래 간직해 주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