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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킨, 난 당신의 사랑만 있으면 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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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만으로는 당신을 구할 수 없어요, 파드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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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나킨: 나의 새로운 능력만이 당신을 구할 수 있어요. 파드메: 어떤 댓가를 치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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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좋은 사람이예요. 이러지 말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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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다 당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오.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
스타워즈의 2편에 보면, 아니킨이 파드메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다이의 삶에 있어서) 집착(attachment)은 금지되어 있어요. 소유도 금지되어 있죠. 제가 조건없는 사랑이라 정의하는 깊은 공감(compassion)은 제다이 삶의 중심이예요. 그러니까, 제다이들도 사랑을 하도록 권장된다고 말할 수 있죠."
아나킨이 이미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제다이는 집착하지 않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실천으로 옮겨낼 수 있었다면, 자신을 행복에서 멀어지게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사랑하는 파드메도 불행하게 만들지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송봉모 신부님은, 아흔 아홉살이 넘어 귀하게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그와 함께 모리야 산을 오르는 아브라함의 여정에 대한 책, "순례자 아브라함 - 모리야 산으로 가는 길"(바오로딸, 2014년. p.222-223)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에게 이사악은 무엇인가? 하느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것, 내가 최고로 여기는 것, 그래서 그분이 요구하실때 내놓기가 힘든 것은 무엇일까? 사랑하는 자녀? 사랑하는 사람? 지금까지 심혈을 기울여 온 사업? 유명 대학에서 받은 학위? 피땀 흘려 모은 재산? 현재 누리고 있는 명예나 권력, 아니면 자기애로 똘똘 뭉친 에고(자아)?
(중략)
다시 한번 자문해 보자. 무엇이 이사악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내 것이라 생각하는 태도가 이사악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내 것이라 간주한다면, 언제 하느님이 그것을 갖고 가실지 몰라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아브라함이 이사악에게 애착하다가 모리야 시험을 당한 것처럼 내가 애착하는 것을 하느님이 언제 다시 달라고 할지 몰라 전전긍긍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하느님 것이라는 점을 철저히 인정하면 아파하거나 힘들어 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다. 토저는 이렇게 말한다.
"형제자매들이여, 여러분에게 소중한 것이 있는가? 그러면 그것에 칼을 꽂아서 죽여라. 그것과 함께 죽어라. 그러면 하느님이 그것과 당신을 모두 다시 살리실 것이며, 여러분에게 돌려주실 것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그것은 더 이상 여러분 안에 있지 않고 여러분 밖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여러분 안에 있을때는 여러분의 마음을 짓눌렀겠지만 지금은 여러분 밖에 있기에, 여러분은 그것을 통해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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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악의 희생 (렘브란트) Credit: https://bibleartists.files.wordpress.com/ |
아나킨이 파드메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랑이 이렇게 비극적인 모순으로 치달은 것은, 사랑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사랑하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나킨은 파드메를 사랑했지만, 그녀를 위하여 사랑하는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들께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가족일 수도 있고 특별한 친구들일 수도 있겠지요. 분명 그들을 사랑하고 계실 겁니다. 그런데, 그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계시는지요? 그들이 여러분 곁을 떠나려고 할때, 그냥 가도록 놓아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붙잡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들을 위해서 사랑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들을 사랑하는 당신을 위하여 사랑하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