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주님은 자주 외딴 곳으로 물러나 기도하셨는가? 왜 많은 교부가 사막에서 구도의 삶을 살았는가? 왜 많은 성직자, 수도자가 일 년에 한 번은 대 침묵 속에서 피정하는가? 이들이 일부러 고독을 택하는 것은 고독이 자기 반성과 성장의 시간을 마련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 영혼은 사람들과 격리되어 홀로 있는 만큼 창조주 하느님과 구세주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
(중략)
나는 고독한 날 좋아하네.
그날은 나에게 진정으로
하느님만을 바라볼 기회를 주네.
– 에이미 그란트"
- 송봉모 신부님 "미움이 그친 바로 그 순간"(바오로딸, 2010년) 중에서 -
이 글을 옮기면서 '고독함은 커녕 외로움을 느낄 시간이라도 좀 있으면 좋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무 건방진 생각인가요?).
아침에 눈뜨기가 무섭게 도시락 3개를 싸서 아이를 학교에 떨구어 주고는 아침 식사는 차 안에서, 화장도 차 안에서 (만약 운전하면서 화장하는 게 불법으로 되어 있었으면 딱지 많~이 떼었을 겁니다), 가끔씩은 옷도 차 안에서 갈아입으며 막힌 고속도로를 뚫고 학교에 도착하면, 교실 안의 학생 한명은 울고 불고 있고 다른 한명은 소리를 지르며 뛰어 다니고 있고 도우미 선생님들(특수 지도가 필요한 학생들의 학급인지라 학생 9명에 저를 포함한 어른들이 7명입니다)은 왁자지껄 어젯밤에 뭘 먹었는지 어디서 무슨 세일을 하는지 수다를 떨며 하루종일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퇴근을 해도 계속해서 학생들 징징 대는 소리의 환청이 들릴 정도로 그렇게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할때도, 학교 도서관이 문닫기 전에 도착하려면 화장실 가고 싶은 날도 꾹 참고 아침보다 더 막히는 길을 뚫고 열심히 달려가야 하지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간식(말이 간식이지 아이들이 크니까 제대로 한끼를 차려내야 하는군요) 챙겨주고 아침에 도시락 싸느라고 폭탄이 되어 있는 부엌을 정리하고 도시락 설겆이 하고 나면 다시 저녁 준비... 부랴부랴 저녁 먹고 태권도다, 성당 복사다, 발표회다, 아이들 각종 액티비티 하는데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나면 보통 9시... 그 시간에 서로 샤워하겠다고 줄이라도 서게되면 차례를 기다리다 잠들어버리는 일이 허다하네요.
이런 삶 속에서 사실상 고독이란 사치에 가깝고, 2주전에 LA Congress에 혼자서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솔직히 꿈만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송봉모 신부님의 글을 옮겨오면서 한숨이 푹~ 나오면서 남 얘기로구나 하며 '고독할 시간이라도 좀 있으면 좋겠다' 라는 대목을 쓰는 순간에 참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두운 방안으로 조그만 구멍을 통해 한줄기 빛이 들어와, 제 생각이 미치지 못하던 곳으로 와 제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비춰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이 바로 제가 고독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물론 몇줄 되지도 않는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수도 없이 중단하고 다른 일을 먼저 해야하긴 했지만, 글을 쓰고 있는 동안만큼은 저를 둘러싼 모든 것에서 잠시 떨어져 나와 제 자신안에 머물며 정신적으로는 혼자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며 고독을 즐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