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매님의 장성한 아들이 모처럼 어머님을 방문하였습니다. 어머니 좋아하는 음식을 싸들고 말이죠. 그 자매님은 아들이 뭘가지고 왔을까 사뭇 기대가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생선 머리가 잔뜩 들어있더랍니다. 자매님은 어처구니가 없어 아들 얼굴을 쳐다보니, 너무나도 천진한 얼굴로 "어머니가 생선 머리를 제일 좋아한다고 그랬쟎아요" 하더랍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배를 잡고 웃으셨나요? 아니면 슬픈 생각이 드셨습니까?
"사랑은 감성(感性)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다른이들의 선(善)을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뜻합니다"[1]라는 Robert Barron 주교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정의에 따르면 사랑과 희생이 결국 같은 것이 되어 버립니다. 자신의 선(善)과 다른이들의 선(善)이 상충할때 다른이들의 선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희생을 통해 자기애(愛)보다 더 큰 사랑이 실현되어 '너'와 '나'로 시작되는 '우리'라는 관계, 나아가 전 인류를 지탱해 오고 우리 모두가 그것을 통해 번창해 왔다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이들이 '희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모든 이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이에 대해 절대 동의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왜곡된 '희생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집단의 선을 위하여 개인의 선을 포기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 자신이 기꺼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이지, 그것이 당연시된다거나 집단 내의 특정한 사람들만이 계속적으로 포기해서는 그 집단은 건강하고 행복한 집단이 될 수 없습니다.
교리서에도 나와 있듯이[2], 인간은 공동체를 지향하도록 창조되었지만 하느님께는 개인이 공동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일제하에서 나라잃은 설움을 맞보고 6.25 동란을 겪으면서 강대국에 의해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약소국의 슬픔을 겪으면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하여 개인이 오랜기간동안 스스로 희생하여 나라의 권익을 추구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긴 했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히 여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개인이 선과 집단의 선이 상충할때 이제는 개인의 선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할 시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인의 희생이 너무나도 당연시되고 심지어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는 점입니다. 굳이 천주교 교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옛부터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천하치국제가수신(平天下治國齊家修身)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OECD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이 될 정도로 많이 부강한 나라가 되었지만, 개인의 행복지수는 어떻던가요?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그 나라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단적인 예를 대한민국의 어머니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생선 머리 어머니 이야기로 되돌아가 봅시다.
그 어머니는 분명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모범적인 어머니상에 부합하고자 열심히 노력해 온 어머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생선 머리 이야기를 들었을때의 느낌이 어떠하셨는지요? 이 어머니가 정말 자랑스럽기 그지 없었습니까? 그러기엔 분명 뭔지 모를 씁쓸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알 수 없는 씁쓸함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것을 Dr. Carotta가 말한 Complexity라는 개념이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명을 다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 중의 하나로서, 선의 상충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Dr. Carotta는 우리에게, 일과 인간관계, 그리고 신앙, 이렇게 3가지의 소명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중에서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소명을 어렵게 하는 것 중의 한가지가 바로 자아실현이라는 선과 자기희생이라는 선의 상충입니다. 자아실현도 선한 것이고 자기 희생이라는 것도 선한 것입니다. 문제는 어머니는 생선 살을 먹고 싶고 어머니가 생선 살을 먹어버리면 자식들은 먹을 것이 없어져 버리는 것과 같이, 이 자아 실현과 자기 희생이 동시에 충족될 수 없는 경우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부부이건 가족이건 나라건 간에, 그 구성원이 자신에게 선한 것(자아실현)만을 하게 된다면 그 관계는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구성원이 자아실현은 0%, 자기 희생만 100%를 한다면 그 관계가 과연 선하고 건강한 관계일까요?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면 그 구성원이 경우에 따라 자아실현은 얼만큼 하고 자기희생은 얼만큼 할지에 대한 적절한 "비율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전에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가 온 사회를 울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말해주듯이 우리에게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당연히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 생선살이 먹고 싶어 어쩌다 먹어버리고 나면 '이기적'이라든가 '자격없는' 어머니로 몰아가며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어머니 자신부터가 '생선살을 먹는 엄마는 나쁜 엄마'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라는 점입니다.
미국에 와서 여러가지 문화 충격을 받았지만, 그 중의 하나가 '어머니' 문화였습니다. 식당에 가서 아이들 좋아하는 메뉴만 잔뜩 시켜놓고 아이들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한국 엄마들과는 달리, 당당하게 자기 먹고 싶은 메뉴 따로 시키고 아이들이 남긴 것에는 손도 대지 않는 미국 엄마들의 모습은 참 신기하였고,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선생님한테 일러줄거야"하는 한국 문화와는 달리, 학교에서 말 안 듣는 아이에게 여러차례의 경고끝에 "너 계속 그러면 너희 엄마한테 일러줄테야" 하는 미국 문화도 생소했지만, 한달에 한번은 다른 가족들이나 베이비 시터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하룻밤 싱글처럼 산뜻하게 외출해서 신나게 놀고 들어오는 Mom's Night Out은 정말 놀라왔습니다.
미국 엄마들도 한국 엄마들처럼, 똑같이 10달을 뱃속에 아기를 베고 출산할때 고통스럽고 젖을 먹이며 아이와 교감을 하는 생리적으로도 똑같은 사람이고,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애들 양육하는 사회적으로도 똑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어머니 문화'가 다를 수 있을까 신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느님이 분명 똑같이 만드신 여자가 미국과 한국에서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차이에 의한 것일 것입니다.
가족들 사이를 붙여주고 유지시켜주는 접착제는 분명 어머니의 사랑이고 어머니의 많은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어머니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내제된 욕구가 있습니다. 그 욕구가 건강하게 채워지지 못하고 희생만을 요구하게 되면, 어머니는 단순한 가사 노동과 잔소리만으로 가족 관계를 지탱해 나가게 되는, 바짝 말라붙은 접착제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한 접착제로 유지되는 가족 관계가 탄탄할 수 있겠습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런닝맨[4]을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아내가 남편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바로 "이거 꼭 필요해서 산거야"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아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산 것에 대해 왜 거짓말을 해야 합니까? 사고 싶은 것 사면 안됩니까?
어머니도 사람입니다. 먹고 싶은 것도 있고 갖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가 건강하게 채워지지 못하면 욕구불만 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 상태가 오랜기간동안 계속 지속되게 되면 그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나 화병과 같은 정신 질환이나 생리적 불균형이 초래되어 실제 질병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고 싶은 것을 사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감추지 위해 다시 거짓말을 함으로써 이중의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면, 이것은 분명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희생'을 미덕으로 여기고 모두들 그 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그러한 대전제에 대하여 이의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한국의 어머니들께 지나친 희생을 더이상 하지 마시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희생의 결과는 더 큰 사랑과 더 큰 선으로서 나타나야 합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일이 힘들긴 해도 자신의 기쁨이 되어야 하지, 눈물이나 죄책감이나 거짓말로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더이상 희생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착취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생은 본인이 자유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지,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 되고 희생을 당하도록 허락해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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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arron, R. E. (Writer), & Ross, N. (Producer). (2011). Catholicism [Motion picture on DVD]. U.S.A.
[2] YOUCAT #321, #322
[3] Carotta, C. C., & Carotta, M. (2005). Sustaining the spirit: Callings, commitments, & vocational challenges(p. 73). Mystic, CT: Twenty-Third Publications.
[4] 런닝맨 21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