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29, 2016

Day #18: Service - "The Hands Are Different Here"

어제는 사인받고나서 아무것도 안 했느냐고요? 그렇진 않고, 너무 피곤해서 거기까지 밖에 못 쓴 것도 한가지 이유이지만, 어제의 주제가 Mercy인지라 그것과 상관없는 얘기만 하게 될 것 같아서 거기서 일단은 마무리하였습니다.

제3강연은 Rob Galea라는 호주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울증과 마약 중독으로 얼룩졌던 10대를 거쳐 사제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솔직하게 나눔해 주셨지요. 눈이 퉁퉁 붓도록 많이 울었답니다. 여러가지 정보로 가득찬 강연은 많지만, 이렇게 한 영혼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는 좀처럼 많지가 않아서 일부러 등록했는데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Rob Galea 신부님 (Credit: http://cdn.tvm.com.mt/)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부터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시는데(이분은 실제로 만나셨더군요). 당신 이야기 중간중간에 섞어서 들려주시 노래가 강연 분위기가 완죤 죽음이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나서는 인도네시아 공동체가 주최하는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하루에 강연은 3개가 이루어 지고 2박 3일동안 8개의 강연이 이루어지는데, 하루 마지막 강연이 끝나고 나면 미사가 6-7대가 동시에 시작됩니다. 각각 색깔이 완전히 다른 미사여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미사를 골라서 가면 되지요. 인도네시아 스타일의 미사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이번에 한번 가 보았는데, 예물 봉헌때 문자 그대로 꽃단장(진짜 꽃으로 단장을 했더군요)을 한 어여쁜 아가씨들이 특이한 제대보와 과일 바구니를 들고 들어오는 것이 아주 색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러고나서 오늘은 LA Congress 둘쨋날입니다. 밤에 골아떨어지는 바람에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어서 아침 찬양하는 자리에 갈 수가 있었습니다.

아레나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
그런데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종교간의 화합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슬람 교도를 초대해서 아침 찬양을 함께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아침 찬양에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이슬람 교도들
아침 찬양이 끝난 후 4,5,6강연을 듣고 흑인 미사에 참례하였습니다. 마치 째즈바에 앉아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음악이 정말 멋진 미사였습니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제 4강연과 5강연에서 배운 것이 오늘의 주제인 Service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다른이들을 섬기는(Service) 데 있어서 필요한 기술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제 직업은 간호사입니다. 하지만, 제게 간호사란 직업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은퇴를 하고 나서도 죽을 때까지 제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게 뼛속까지 새겨진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Doctors cure diseases, but nurses cure people (의사는 질병을 치료하지만, 간호사는 사람을 치료한다)."

제가 간호대학에 들어가서 첫 실습을 나가게 되었을때 제가 속한 그룹을 맡았던 실습 조교가 제일 처음 해 주었던 이야기입니다. 그 말은 듣자마자 가슴속이 아니라 뼛속에 새겨지게 되었고, 그래서 그것은 이미 제 일부가 되었습니다. 간호사는 직업이 아니라 제 일부입니다.

사람을 치료하는 것은 약을 주거나 주사를 놔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입니다. 그것은 육체보다도 영혼의 치유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영혼을 치유하는 일은 제가 돈을 벌든 아니든 병원에서 일하든 친구와 만나 차 한잔을 마시든 은퇴를 하든 안하든 제가 계속 할 수 있는 일이고 계속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어렸을때 부모와의 관계에서 생기는 상처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맺음에 평생동안 영향을 주고, 결국이 그런 상처들이 예수님과의 관계 맺음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더욱 그러한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고 그 방법론을 찾고 있던 와중이었습니다.

제 4강연은 '영혼과 치유의 과학'이란 주제로 과학 기술을 어떻게 영혼의 치유에 이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고 의료계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실제적으로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고, 아주 흥미로운 내용이 많았습니다.

제 5강연은 '삶에 닥치는 역경'을 어떻게 볼 것이며 무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장 입구에 늘어선 대기자들의 수가 심상치 않길래 유명한 분인갑다 하고 들어갔는데 역시나... 단박에 그 내공이 심상치 않은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James Clarke이라는 신부님이셨는데, St. John이라는 신학교의 유명한 교수님이라 하시더군요. 왠지 모르게 그분이 쓴 책을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Fr. James Clarke (Credit: http://stjohnsem.edu/)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이, 그분이 쓰신 두권의 책 중 한권이 영혼의 치유에 관한 방법론에 관한 책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마침 사인회도 같이 하길래 사인을 받으면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제가 왜 영혼의 치유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동안 이런 책을 찾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저보고 악수를 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제 손을 꼭 잡아주시고는 그 책에 있는 내용을 간단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해 보라고 용기를 주시더군요.

그분의 손에서 제게로 전해진 따뜻한 온기가 아직도 제 손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제 4강연을 하였던 Richard Groves가 그런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인도의 어느 가난한 동네에서 환자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하고 있을때에 죽어가는 아내를 데리고 와서 치료비로 멍든 망고 하나를 건네주던 어느 남편에게, 왜 좀 더 가까운 제대로 된 병원으로 가지 않고, 의사 몇명과 수녀님들이 자원봉사는 여기까지 왔느냐고 했더니 그 남편이 했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The hands are different here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의 손은 뭔가 달라요)."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도 치유하는 이들의 손은 아마도 따뜻한 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Sunday, February 28, 2016

Day #17: Mercy - "Boundless Mercy"

LA Religious Education Congress 개회 예식 시작 전부터 아레나를 가득 채운 참석자들

안녕하세요? LA에서 인사드립니다. (꾸벅)

25일은 산넘고 물건너 LA까지 오느라고, 26일은 그날 일정이 끝나자마자 호텔로 돌아와 그냥 잠이 들어 버려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25일과 26일에 준비했던 글들을 마무리하여 올립니다.

드디어 4년만에 LA Congress를 다시 오게 되었습니다. LA Religious Education Congress는 해마다 LA 대교구 주체로 열리는 말 그대로 종교 교육 총회입니다.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디즈니랜드가 있는 Anaheim 컨벤션 센터에서 열리죠. 각 분야의 내노라하는 최고의 전문가들이 와서 한 두가지 주제로 강연을 하고, 아침/점심/저녁으로 여러 가지 형태의 찬양과 기도와 미사가 계속 되고, 영화 상영이나 콘서트도 있고, 각 민족들의 고유한 공동체를 소개하는 코너도 마련되어 있고, 각종 도서 및 성물 박람회도 있는, 4년전 왔을때 마치 촌놈이 서울와서 입이 딱 벌어지는 경험을 했던 그런 곳입니다.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게 남아서 이번에 가면 혹시 실망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걱정도 있었는데, 개회 예식에 저 한명 홀홀단신조차 앉을 자리가 없어 결국 3층까지 올라가야 할 정도로 사람들로 가득찬 아레나(위의 사진 참조)에 들어서는 순간 다시 4년전 처음 그 순간과 똑같은 감흥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2016년 LA Religious Education Congress 로고
개회 예식 시작 모습
올해의 LA Congress 주제는 'Boundless Mercy (무한한 자비)' 입니다. 그런데 마침 오늘의 글의 주제도 Mercy로군요. 우연인가요?

어쨌든 LA Congress의 주제와 글의 주제가 일치함으로, 오늘은 LA Congress에서의 제가 보낸 하루에 대하여 간단히 적어보려고 합니다.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여기도 Mercy, 저기도 Mercy, 사방 어디로 눈을 돌려도 Mercy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습니다.








개회 예식 연사가 이야기했던 '자비의 강', '자비의 바다', '자비의 산'이란 표현이 몸에 와 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정 관념과 두려움과 낯설다는 이유로, 자비를 우리 안에 가둬놓고 있다는 지적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그리고, 자비의 희년을 통해 극기 훈련을 받고 자비의 미션을 수행할 것이라는 표현도 흥미로왔습니다. 

개회 예식이 끝나고 1교시가 열리는 Marriott 호텔로 향했습니다. 두 줄로 늘어선 야자 나무가 더해주는 정취가 참으로 멋진 길입니다. 
Anaheim 컨벤션 센터에서 Marriott 호텔로 가는 길에
1 강연: Life Teen International 대표 Mark Hart의 Magic Bullet
1강연은 돈도 없고 사람도 없고 할일은 산더미 같은 사목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것에 관한 것이여서 늘 관심있는 주제였지만,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그 유명한 Mark Hart의 강연이어서 더더욱 좋았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더더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 강연이 끝나고 더더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 박람회장으로 발길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박람회장으로 가는 길에, 4년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이 새로 생겼더군요. 그건 마사지를 받는 곳이었습니다. 이런데 와서 누가 마사지를 받을까 싶었는데, 줄까지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꽤 있더군요.
맛사지 받는 곳
박람회장은 4년전이나 다름없이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마치 크리스마스 때 디즈니랜드에서 사람들한테 밀려다니던 그때 생각이 났습니다.
박람회장
그리고, 박람회장 끝에 마련되어 있는 테이블에서 자리를 잡고 더더더 좋은 것을 위해서 2 강연은 땡땡이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게 뭐냐구요?

ㅋㅋ 바로 저의 아이돌 Robert Barron 주교님의 책 사인회가 예정되어 있었거든요. 아직도 오빠 부대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2 강연을 땡땡이친 덕분(?)에, 거의 맨 앞에 줄을 설 수 있었습니다. 거의 맨 앞에 줄 서 있느라고 줄이 얼마나 길었는지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게 좀 아쉽네요. 같이 책 사인회 하시는 다른 저자분들께 좀 죄송할 정도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저자 책도 사서 사인 받을 것도 아니고, 뭐 어쩌겠습니까?

요즘 Barron 주교님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박람회장을 다 보아도, 실물 크기의 사진이 걸려 있는 사람은 교황님 외에 이분 한분 밖에 없을 정도니까요.
박람회장에 걸려 있는 Robert Barron 주교님의 실물 크기 전신 사진 (제가 찍은 사진이 잘렸습니다 ㅠㅠ)
그분이 나타나자 마자 박람회장의 기온이 한 5도는 올라간 것 같았습니다. 저도 간신히 입을 틀어막았는데도, 소리가 쪼금 옆으로 새어 나갔습니다. 근데 저같은 소리 내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더군요 ㅋㅋ



LA Congress 등록을 계속 망설이다가 일찍 하지 못하는 바람에 Barron 주교님의 강연이 등록 마감 된 것을 알고 땅을 치며 속상해했었는데, 오늘 아침 프로그램 책자를 받아들고 사인회하신다는 걸 알게 되면서 심쿵했었다지요. 살아생전에 이렇게 책이랑 DVD에 사인도 받고, 얘기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게 될 줄이야...@.@

근데, 맨날 DVD로만 듣던 목소리를 직접 들으니 너무 신기하고, 저한테 직접 말을 걸어오시니 가슴이 너무 떨려서 말을 하면서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알 수 있었다는... ㅠㅠ

이것 하나 만으로도 비행기 수하물 바가지 쓴 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ㅋㅋ (가보로 대대로 물려줘야쥐...) 2016년 LA Congress에서의 최고의 수확은 아마도 Barron 주교님 사인일 듯... ㅋㅋ. 비행기 표가 일요일에 돌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지 않았으면 아마도 그대로 집까지 날아갔을지도 모릅니다. 역시 LA Congress 최고?!

하느님의 자비는 역시 무한하십니다. 저같은 죄인에게도 이런 선물을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하느님!!


Saturday, February 27, 2016

Day #16: Celebrating Sacraments - "Welcome to the Sacrament of Reconciliation"

며칠 동안 글을 못 올렸습니다. LA Congress 참석차 LA가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일들이 있어서 시간이 지체되었네요. 게다가 어제 (사순 Day #17)는 호텔에 들어와 그냥 쓰러져 잠이 들어 버려서 그나마 써 놓은 것도 올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며칠 지났지만, 사순 일기 다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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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LA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공항에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 참... LA Congress에 가고픈 마음만 굴뚝같은데 망설이기만 하다가 우연히 정말 값싼 비행기표를 발견하는 바람에 냅다 지른 거였는데, 결국 싼 게 싼 게 아니었습니다. ㅠㅠ. 지르고 보니 소비자 리뷰가 너무 안 좋아서, 비행기 취소되는 거 아냐 하고 걱정을 시키더니만, 결국 체크인하는데서 딱 걸렸네요.

짐을 부치면 보통은 추가요금을 내기 때문에, 일부러 배낭이랑 기내용 가방 하나만 준비해서 갔더니만, 개인용 가방(배낭) 하나만 공짜고 추가되는 가방 하나당 왕복 비행기표의 절반값을 붙이는군요 ㅠㅠ... 이렇게 치면 나중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시 절반값을 더 내어야 하고, 결국은 제가 처음에 치른 비행기표 가격의 두배를 내고 비행기를 타는 셈이로군요... 눈뜨고 코 베인 듯한 느낌...

게다가 원래 예정 출발 시간보다 35분이 지연되고 있고, 그렇게 되면 LA 공항에 내려서 렌트카 픽업하는데도 문제가 생깁니다. 렌트카 사무실로 가는 셔틀 버스가 그 사이에 끊기거든요... ㅠㅠ 소비자 리뷰가 왜 그리 안 좋았는지 알것 같네요.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해도 장사가 되는 가 보죠? 저같이 어리버리한 사람들이 먹여 살리는 건가요??

사실 한 일주일 쯤 전에 다른 곳에서 또 열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기름통이 비었다고 불이 들어와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는데, 제가 알고 있는 제 차의 용량보다 10퍼센트 이상이 더 들어간 것으로 나오더군요. 18갤런짜리 차인데 20갤런이 좀 넘게 기름을 주유한 것으로 계산이 되었습니다. 기름을 넣을때마다 얼마나 주유를 했는지 숫자를 눈여겨 보지는 않았었는데, 앞자리가 2로 시작하는 숫자는 10년 동안 주유하면서 처음보았기 때문에 기분이 찜찜했습니다.

그냥 갈까 어쩔까 망설이다가, 주유소 점원에게 가서 영수증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일단 기록이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랬더니 그 점원 왈, 이미 주유가 끝나고 나면 영수증을 프린트할 수가 없다는 군요. 그러면서, 주유를 하기 전에 영수증을 인쇄하겠다고 선택을 하지 왜 그때 안하고 이제와서 영수증 내놓으라 하느냐고 궁시렁거렸습니다.

안 그래도 껄쩍지근한 상태였는데, 주유가 끝나고 나면 영수증을 인쇄할 수 없다는 점원의 말은 더 의심쩍게 만들었고, 결정적으로 제게 뭐라뭐라 하는 데에 기분이 팍 상해서 결국은 한바탕 실갱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결국에 영수증은 받아냈지만, 씩씩거리며 집에 돌아왔지요.

그런데 계속 그것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분명 그 주유소에 뭔가 꺼림찍한 게 있는 것 같긴 한데, 증거가 분명치도 않은데도 화가 많이 나는 바람에 사기꾼 취급을 했던 것이 계속해서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고해 성사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문제는 지난 주 수요일에 고해 성사를 볼 수 있었던 기회를 깜빡 하고 놓쳐 버리는 바람에 목요일 연도 때문에 미사에 참례하고도 영성체를 못하고, 토요일도 수업 삼매경에 빠져 정신줄 놓고 있다가 시간을 놓쳐 결국 주일 미사때도 영성체를 못하고, 그 바람에 엊그제 화요일에 아이가 복사 서느라고 성당을 갔는데도 결국 영성체를 못하고, 연달아 3번의 성체 성사를 놓치고 말았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은 취직해서 일을 하는 바람에 평일 미사에 참례하여 영성체를 모실 수 있는 기회가 확 줄어들고 말았는데, 고해 성사를 제때 보지 못하는 바람에 그나마 있었던 기회까지 모두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LA Congress가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고해 성사를 보아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총회가 열리는 내내, 매일 같이 미사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Credit: http://tvc.dsj.org/

작년부터 저희 교구에서는 사순과 대림 기간 동안은 수요일에도 고해 성사를 볼 수 있게 해 주는 "The Light Is On for You (당신을 위해서 고해소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어제 저녁에 어느 성당에서 고해 성사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당입구에 "Welcome to the Sacrament of Reconciliation (고해 성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큰 표지판이 서 있었습니다. "The Light Is On for You (고해소에 불이 켜져 있습니다)"란 표지판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Welcome"이란 표현은 죄인에게는 좀 버거운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해 성사를 부담스럽게 생각합니다. 저 역시 부담스럽습니다. 어떤이들은 고해소 안에서 남의 죄만 고하기도 하고 어떤이들은 왜 나의 죄를 남한테 고해야 하느냐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고해도 고해지만 고해소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은 정말 고역입니다. 마치 도살장에서 줄서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소가 그런 기분일까요?

고해를 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자신의 죄와 대면해야 합니다. 자신의 죄를 똑바로 쳐다보아야 하고 그걸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있습니다. 기대는 부모가 자식한테 자식이 부모한테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그리는 이상형의 자신의 모습이 있습니다. 공부도 1등급 받고 싶고, 운동도 이만큼은 잘 했으면 좋겠고, 코도 쪼금만 더 높았으면 좋겠고, 정직하고 착하고 용감하고 카리스마도 있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똑바로 대면한다는 것은 그것을 스스로 깨뜨리고 자신의 추한 (사실은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직면하며 스스로에게 실망해야 함을 뜻합니다. 그것이 즐거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것뿐이 아니죠. 그것도 어려운 일인데, 자신이 감추고 싶은 가장 은밀한 비밀을 누군가에게 까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남들앞에 발가벗고 나설 수 있는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늘 고해성사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고, 그것이 싫어서 주일 미사 안 빠지고 나오는 사람도 있고, '내가 왜 제 3자에게 내 죄를 밝혀야 해?' 하며 다른 종교를 찾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고해를 하는 순간 그것을 듣고 있는 사람은 사제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제는 예수님으로부터 죄를 듣고 사해줄 수 있는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이고, 사제가 고해소 안에서 하는 모든 일은 바로 예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어 자신에게 실망하고, 게다가 자신이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 세상에 까발리는 용기를 내어 고해소에 들어서고 나면, 예수님께서 마음에 난 상처를 어루만져 주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렵사리 고해를 하고 하면, 맨날 똑같은 죄에 걸려 넘어짐을 반복하고 있을지라도, 다시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고해 성사를 가끔 해 왔지만, 이번 고해 성사는 제게는 좀 특별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고해를 마치고 나서 미국 스타일로 '통회 기도'를 하려고 기도문을 주섬주섬 찾고 있는데, 갑자기 신부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십니까?"

그 순간, 전기가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마치 예수님이 직접 제게 묻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네" 하고 대답하는데 목소리가 떨리고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고해소에서 눈물이 핑 돌았던 적은 몇번 있지만, 예수님과 이야기한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성당을 나서면서, "Welcome"이란 말이 적혀 있던 표지판 사진을 찍었습니다. 고해소 들어가기 전 마음과 나온 다음 마음이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요?

이제는 "Welcome"이란 말이 마치 연회장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인사하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이제는 파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사람처럼 룰루랄라 즐겁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Wednesday, February 24, 2016

Day #15: Call - 정결의 삶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Dr. Carotta에 따르면, 근본적으로 그분을 따르도록 부르심을 받았지만, 임무도 부여받았고 어떤 사람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을 것인지에 대해서도 부르심이 있다고 합니다.[1] 그런데 그런 부르심을 알아듣기가 쉽지가 않죠.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보기에 좋아보이는 일을 하며, 자기 맘에 드는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하느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 태어난 다음 자신이 가던 경로를 급선회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말이죠.

이렇게 원할때 경로를 바꿀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떤 경우는 경로를 바꾼다는 것이 정말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천주교 식으로 얘기하자면, 수도 성소(聖召)와 혼인의 경우라고 보면 될 것 같네요. 수도 성소는 예수님과, 혼인의 경우는 배우자와 일촌의 사랑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대상이 예수님이 되었든 혼인 성사로 맺어진 배우자가 되었든 일단 누군가와 일촌을 맺게 되면 그 관계를 되돌리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두가지의 길 중에서 어느 길로 들어서야할 지 잘 알아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중간에 경로 변경을 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어떻게 미리 알고 선택할 수 있느냐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이 어느 길로 당신을 부르시는지를 잘 알아 들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님의 부르심을 잘 알아들을 수 있느냐구요? 저는 그 정답은 바로 정결(貞潔)의 덕을 실천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결이란 자신의 성(性)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결혼한 배우자와만 자신의 성을 사용한다는 뜻이지요.

신앙 생활을 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뭐냐 하고 묻는다면 바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결만큼이나,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명확히 드러나 있는 것도 많지 않은 듯 싶습니다. 그래서 정결의 덕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느라고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는, 하느님을 향한 지름길이라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욕은 식욕만큼이나 강력한 생리적 욕구입니다. 그래서, 정결의 덕을 실천하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헌데, 성욕이 식욕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식욕이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것이라면, 성욕은 하느님께서 사랑과 생명의 창조를 위하여 저희에게 주신 선물이란 점입니다. 식욕은 채워지지 않으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지만, 성욕은 채우려고 할수록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그리고 분명, 그것이 강력한 생리적 욕구이긴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다스릴 수도 있는 것이 성욕이기도 합니다.

이 정결의 실천을 한차원 쉬운 일로 만들어준 책이 있어서 그 책에 나오는 조언들을 간단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가 약간 보탠 것도 있지만, 현재 미국에서 정결 프로젝트 (Chastity Project)를 이끌고 있는 Jason Evert의 "If You Really Loved Me"[2]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가 주된 골자입니다.

미혼 여성분들께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은 남자 만나고 싶으십니까? 진짜 좋은 남자를 만나고 싶으면 먼저 예수님을 만나십시요. 예수님을 알아가면 알게 될수록 예수님 닮은 남자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이 생깁니다.

사랑받고 보호받기 위하여 자신의 성을 사용하지 마십시요. 정결은 순결이나 동정성(動靜性)과는 다릅니다. 정결은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미 순결을 잃었다고 해서 늦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서 사랑받기를 원하고 편안히 쉴 곳이 필요하다면, 먼저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법을 배우십시요. 예수님은 당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당신을 사랑하고 싶어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법을 배우셨다면, 그다음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하는 법을 배우십시요.

남친이 자꾸 잠자리를 요구합니까? 결혼 전에도 자신의 성욕을 자제하지 못하는 남자는, 결혼 후에도 자제할 수 없는 남자입니다. 잠시 후에 말씀드리겠지만, 정결은 결혼 후에도 적용되는 덕행입니다. 결혼 후에도 성욕을 자제하지 못하는 남자는 아내를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거나 바람을 피우는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미혼 남성분들께 묻겠습니다. 진짜 남자란 어떤 남자라고 생각하십니까? 건장한 사람입니까? 권력이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정력이 좋은 사람입니까? 모두 다 아닙니다. 자신의 여인에게서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섬길 줄 아는 사람이 진짜 남자입니다. 당신이 진짜 남자인지 아닌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당신의 여인입니다.

Jason Evert는 진정한 남자는 자신의 여인이 죽는 날에 "예수님, 당신이 사랑하는 여인을 제가 이 세상에서 목숨을 다해 지켜왔습니다" 하며 자신의 품안에서 예수님께로 그 여인을 고이 넘겨드리는 흑기사라고 하였습니다.
Credit: http://www.worldwidetapestries.com/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하신, 그리고 당신의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하여 발가벗기우고 매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에게서 진정한 남자가 무엇인지 배우십시요.

기혼 남성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정결은 결혼 이후에도 실천해야 하는 덕행입니다. 당신은 아내를 위한 흑기사입니다. 그리고, 결혼했다고 해서 아무때나 아내와 잠자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아내를 자신의 성적 만족을 위해 이용하는 것일 뿐입니다. 여자의 몸은 항상 접근 가능하도록 하느님께서 디자인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자의 몸을 이해해야 합니다.

화끈한 잠자리를 원하십니까? 정답은 보신탕도 아니고 비아그라에 있지도 않습니다. 아내가 잠자리로 당신을 인도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요. 손가락 하나 대지 말고 그윽한 눈빛을 보내지도 말고 담백하게 기다리십시요. 기다리자니 너무 오래 걸린다구요? 그렇다면 아내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십시요. 연애할 때 그랬던 것처럼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사 주시고, 좋아하는 장소에도 가 주시고, 관심없는 이야기도 재미있는 척 하며 들어주십시요. 그렇게 하면, "잠자리가 매번 첫날밤 같아짐"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기혼 여성분들이 많이들 말씀하십니다. 결혼해서 10년도 더 지났는데 연애 감정 같은 건 이제 영원히 끝난 거 아니냐고...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과 합의하에 한동안 잠자리를 하지 않고 지내보십시요. 그리고 육체 관계가 없어도 얼마나 로맨틱해질 수 있는지 한번 보십시요.

몸과 마음과 정신은 생각보다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여자의 몸은 성관계로 인하여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생리적으로, 영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결혼을 했으니 무조건 남편이 원할때 잠자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지 마십시요. 언제가 좋은 때이고 아닌 때인지 자신의 몸이 말하는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을 사랑하기 이전에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에 자신을 사랑하도록 노력하십시요. 그 다음이 가족 사랑입니다.

더 자세한 정보는 다음에 소개해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하도록 하겠습니다. 남들에게 터놓고 얘기하기 어려운 개개인의 고민거리에 대한 금쪽같은 조언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수도자가 되기는 싫으니 결혼하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수도자의 삶이 더 힘들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콩깍지는 2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고 합니다.[3] 그리고 어느 일본 작가가 이야기했듯이 가족이란 '남들이 보지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이고, 정신 질환을 앓는 이들의 80퍼센트 이상이 가족간의 문제 때문이며[4], 지난 성령 기초 세미나 지도를 맡아 주셨던 김명선 사도 요한 신부님의 표현을 빌자면 '상처를 주고 딱지가 앉을만하면 딱지를 떼고 그자리를 다시 긁어서 피가 나게 만들고 긁고 또 긁고 딱지를 떼고 또 떼고 상처가 아물더라도 보기 흉한 흉터를 남기는 존재가 바로 가족'입니다. 결혼의 삶이 절대로 더 쉽지 않습니다.

결혼도 성소(聖召)입니다. 부르심을 들은 다음, 그 길로 가십시요. 결혼 성소가 어쩌면 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위해 마련해주신 배우자를 찾는 일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것은 때가 되어 진정한 배우자를 만날때까지의 인내심과 신중함을 필요로 합니다. 때가 될때까지, 자신의 배우자가 "너, 정말 좋은 사람 만났구나"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정말 좋은 사람, 예수님 닮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십시요.[5]

이 길은 아니니까 저 길이로구나 하고 생각하지 마십시요. 하느님이 어느쪽에서 부르시는지 잘 들어 보십시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섣불리 아무 길이나 선택하지 마십시요.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지금 당신은 하느님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입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정결의 삶은 하느님께로 향한 지름길입니다. 정결의 삶을 실천하며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다보면 하느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면 갈수록 당신을 부르시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가고 싶은 길과는 다른 쪽에서 부르심을 듣게 되더라도 거부하지 마십시요. 그분은 사랑과 행복을 나누기 위해서 당신을 지으신 분입니다. 당신이 어떤 길을 갈때 가장 행복한지 가장 잘 알고 계신 분입니다.

혹시 길을 잘 못 들어서서 되돌아가야 할지 길을 따라 계속 걸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것 같은 분도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요. 그분께로 가는 지름길은 아니지만 우회도로에 들어섰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간도 좀 더 걸리고 좀 더 많이 걸어야 겠지만요. 그럴때일수록 하느님의 부르심에 좀 더 귀를 기울이십시요. 길잃은 어린 양을 찾아 목이 터져라 부르고 계시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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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arotta, C. C., & Carotta, M. (2005). Sustaining the spirit: Callings, commitments, & vocational challenges(p. 73). Mystic, CT: Twenty-Third Publications. - 일에의 부르심, 관계에의 부르심, 신앙에의 부르심
[2] Evert, J. (2003). If you really loved me: 100 questions on dating, relationships, and sexual purity. Ann Arbor, MI: Charis Books/Servant Pub.
[3] 황창연,「사는 맛 사는 멋」(서울: 바오로딸, 2011) , 134-136
[4] 어디서 봤는데, LA 다녀와서 다시 정확한 정보를 찾아 업뎃 하겠습니다. (죄송 ^^;;) 
[5] Evert, J. (2003). 같은 책.



Tuesday, February 23, 2016

Day #14: Sacrifice -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

어디서 전해들은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지, 아니면 풍자를 위해 만들어진 이야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어느 자매님의 장성한 아들이 모처럼 어머님을 방문하였습니다. 어머니 좋아하는 음식을 싸들고 말이죠. 그 자매님은 아들이 뭘가지고 왔을까 사뭇 기대가 되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포장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생선 머리가 잔뜩 들어있더랍니다. 자매님은 어처구니가 없어 아들 얼굴을 쳐다보니, 너무나도 천진한 얼굴로 "어머니가 생선 머리를 제일 좋아한다고 그랬쟎아요" 하더랍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배를 잡고 웃으셨나요? 아니면 슬픈 생각이 드셨습니까?

"사랑은 감성(感性)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다른이들의 선(善)을 능동적으로 추구하는 것을 뜻합니다"[1]라는 Robert Barron 주교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정의에 따르면 사랑과 희생이 결국 같은 것이 되어 버립니다. 자신의 선(善)과 다른이들의 선(善)이 상충할때 다른이들의 선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희생을 통해 자기애(愛)보다 더 큰 사랑이 실현되어 '너'와 '나'로 시작되는 '우리'라는 관계, 나아가 전 인류를 지탱해 오고 우리 모두가 그것을 통해 번창해 왔다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모든 이들이 '희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모든 이들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도 이에 대해 절대 동의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왜곡된 '희생 문화'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집단의 선을 위하여 개인의 선을 포기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 자신이 기꺼운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이지, 그것이 당연시된다거나 집단 내의 특정한 사람들만이 계속적으로 포기해서는 그 집단은 건강하고 행복한 집단이 될 수 없습니다.

교리서에도 나와 있듯이[2], 인간은 공동체를 지향하도록 창조되었지만 하느님께는 개인이 공동체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이 일제하에서 나라잃은 설움을 맞보고 6.25 동란을 겪으면서 강대국에 의해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약소국의 슬픔을 겪으면서,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위하여 개인이 오랜기간동안 스스로 희생하여 나라의 권익을 추구하여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긴 했지만,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히 여겨져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개인이 선과 집단의 선이 상충할때 이제는 개인의 선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는 문화가 조성되어야 할 시기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개인의 희생이 너무나도 당연시되고 심지어는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는 점입니다. 굳이 천주교 교리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옛부터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천하치국제가수신(平天下治國齊家修身)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대한민국은 이제 OECD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이 될 정도로 많이 부강한 나라가 되었지만, 개인의 행복지수는 어떻던가요? 개개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그 나라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단적인 예를 대한민국의 어머니 문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생선 머리 어머니 이야기로 되돌아가 봅시다.

그 어머니는 분명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모범적인 어머니상에 부합하고자 열심히 노력해 온 어머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생선 머리 이야기를 들었을때의 느낌이 어떠하셨는지요? 이 어머니가 정말 자랑스럽기 그지 없었습니까? 그러기엔 분명 뭔지 모를 씁쓸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알 수 없는 씁쓸함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것을 Dr. Carotta가 말한 Complexity라는 개념이 설명해 줄 수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명을 다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 중의 하나로서, 선의 상충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Dr. Carotta는 우리에게, 일과 인간관계, 그리고 신앙, 이렇게 3가지의 소명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중에서 인간 관계에 있어서의 소명을 어렵게 하는 것 중의 한가지가 바로 자아실현이라는 선과 자기희생이라는 선의 상충입니다. 자아실현도 선한 것이고 자기 희생이라는 것도 선한 것입니다. 문제는 어머니는 생선 살을 먹고 싶고 어머니가 생선 살을 먹어버리면 자식들은 먹을 것이 없어져 버리는 것과 같이, 이 자아 실현과 자기 희생이 동시에 충족될 수 없는 경우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부부이건 가족이건 나라건 간에, 그 구성원이 자신에게 선한 것(자아실현)만을 하게 된다면 그 관계는 유지될 수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 구성원이 자아실현은 0%, 자기 희생만 100%를 한다면 그 관계가 과연 선하고 건강한 관계일까요?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싶다면 그 구성원이 경우에 따라 자아실현은 얼만큼 하고 자기희생은 얼만큼 할지에 대한 적절한 "비율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예전에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라는 시가 온 사회를 울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말해주듯이 우리에게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당연히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 생선살이 먹고 싶어 어쩌다 먹어버리고 나면 '이기적'이라든가 '자격없는' 어머니로 몰아가며 희생을 강요하는 문화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어머니 자신부터가 '생선살을 먹는 엄마는 나쁜 엄마'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라는 점입니다.

미국에 와서 여러가지 문화 충격을 받았지만, 그 중의 하나가 '어머니' 문화였습니다. 식당에 가서 아이들 좋아하는 메뉴만 잔뜩 시켜놓고 아이들이 먹다 남긴 음식으로 외식을 하고 돌아오는 한국 엄마들과는 달리, 당당하게 자기 먹고 싶은 메뉴 따로 시키고 아이들이 남긴 것에는 손도 대지 않는 미국 엄마들의 모습은 참 신기하였고,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선생님한테 일러줄거야"하는 한국 문화와는 달리, 학교에서 말 안 듣는 아이에게 여러차례의 경고끝에 "너 계속 그러면 너희 엄마한테 일러줄테야" 하는 미국 문화도 생소했지만, 한달에 한번은 다른 가족들이나 베이비 시터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하룻밤 싱글처럼 산뜻하게 외출해서 신나게 놀고 들어오는 Mom's Night Out은 정말 놀라왔습니다.

미국 엄마들도 한국 엄마들처럼, 똑같이 10달을 뱃속에 아기를 베고 출산할때 고통스럽고 젖을 먹이며 아이와 교감을 하는 생리적으로도 똑같은 사람이고,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애들 양육하는 사회적으로도 똑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어머니 문화'가 다를 수 있을까 신기하기까지 하였습니다. 하느님이 분명 똑같이 만드신 여자가 미국과 한국에서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 사람들이 만들어낸 문화의 차이에 의한 것일 것입니다.

가족들 사이를 붙여주고 유지시켜주는 접착제는 분명 어머니의 사랑이고 어머니의 많은 희생을 통하여 이루어 집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어머니이기 이전에 인간이기 때문에 그 안에는 내제된 욕구가 있습니다. 그 욕구가 건강하게 채워지지 못하고 희생만을 요구하게 되면, 어머니는 단순한 가사 노동과 잔소리만으로 가족 관계를 지탱해 나가게 되는, 바짝 말라붙은 접착제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한 접착제로 유지되는 가족 관계가 탄탄할 수 있겠습니까?

아내가 남편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런닝맨[4]을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아내가 남편에게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은 바로 "이거 꼭 필요해서 산거야"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아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산 것에 대해 왜 거짓말을 해야 합니까? 사고 싶은 것 사면 안됩니까?

어머니도 사람입니다. 먹고 싶은 것도 있고 갖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이러한 욕구가 건강하게 채워지지 못하면 욕구불만 상태에 빠지게 되고 이 상태가 오랜기간동안 계속 지속되게 되면 그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증이나 화병과 같은 정신 질환이나 생리적 불균형이 초래되어 실제 질병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고 싶은 것을 사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그것을 감추지 위해 다시 거짓말을 함으로써 이중의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면, 이것은 분명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희생'을 미덕으로 여기고 모두들 그 덕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그러한 대전제에 대하여 이의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감히, 한국의 어머니들께 지나친 희생을 더이상 하지 마시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희생의 결과는 더 큰 사랑과 더 큰 선으로서 나타나야 합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일이 힘들긴 해도 자신의 기쁨이 되어야 하지, 눈물이나 죄책감이나 거짓말로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더이상 희생이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착취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생은 본인이 자유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지, 희생을 강요해서도 안 되고 희생을 당하도록 허락해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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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arron, R. E. (Writer), & Ross, N. (Producer). (2011). Catholicism [Motion picture on DVD]. U.S.A.
[2] YOUCAT #321, #322
[3] Carotta, C. C., & Carotta, M. (2005). Sustaining the spirit: Callings, commitments, & vocational challenges(p. 73). Mystic, CT: Twenty-Third Publications.
[4] 런닝맨 217화

Monday, February 22, 2016

Day #13: Motivation - 동기

이제 고등학교 1학년인 큰 아이는 다음 학년에 무슨 과목을 수강할 것인지 고민이 많습니다 (미국은 고등학교때부터 한국의 대학교와 비슷하게 학위 취득에 필요한 학점을 참고하여 자기가 듣고 싶은 과목을 정해서 수강 신청을 합니다). 고4(senior year)에 듣도록 권장되는 과목 하나를 고2(sophomore)때 듣고 싶어서 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카운셀러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까 저와 머리를 맞대고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짜냈습니다(학교 카운셀러가 동의하지 않으면 신청을 아예할 수 없게 되어있더군요). 만만한 과목은 아니지만, 그래도 잘 해 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카운셀러도 만나 이야기 해보고, 담당 과목 선생님도 직접 만나 상담을 해 보았지만 두사람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더군요. 그래서, 좀 더 다양한 각도에서 이 과목을 지금 듣는 것이 왜 좋은지에 대해서 아이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이 아이가 그 과목을 듣고 싶어하는 것은 다른 이유들도 있긴 하지만, 보통들 고4에나 듣는 과목을 고2에 들음으로써 자신이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이란 것을 과시하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바닥에 깔려있음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저희의 대화는, 어떻게하면 카운셀러와 담당 선생님을 설득해서 허락을 받을까 하는 쪽에서, 지금 그 과목을 수강하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쪽으로 급선회하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사람들에게서 인정받는 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큰 동기 부여가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고, 현재로서는 일단 그 과목 말고 다른(자기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과목에 좀 더 집중하는 것으로 결론을 짓긴 했습니다. 그치만 정작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 이제는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외부로부터의 동기가 아니라 자신안의 내부에서 우러나오는 동기에 의해 움직여야 할 때가 되었다는 그 이야기는 하지 못하고 넘어갔었네요.

오늘의 주제가 마침 Motivation (동기)인지라, 그때 큰 아이에게 하고 싶었던 '동기'에 관한 이야기를 편지로 적어 보았습니다. 내일은 영어로 바꿔서 그 아이에게 보내주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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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철수에게

철수야, 이제 수강 신청 마감일이 얼마남지 않았구나. 그 과목을 듣지 말고 다른 걸 하는 게 낫겠다고 해서 많이 속상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 아빠 이야기에 잘 따라주어서 정말 대견하구나.

그날 엄마가 우리 철수에게 꼭 하고 싶었는데, 그날은 좋은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어서 못했던 이야기가 있었어.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편지를 쓴다.

철수 생각에는, 철수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 시간동안 달성해야 할 목표가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전과목 만점? 아니면 명문대 입학?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똑똑하다고 인정받는 것?

이것들은 물론 다 좋은 일들이야. 철수가 이 중의 한가지만이라도 할 수 있다면 엄마는 정말 기쁠거야. 그렇지만, 철수가 고등학생 시기에 성취해야 하는 것들이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쉽겠지만 그건 아니란다. 네가 이 시기에 정말 해야할 일이 있다면, 그건 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란다.

네가 성인이 되고 많은 일을 할 것이고 많은 것들을 이루어내겠지만, 네 자신을 안다는 것은 그 모든것의 반석이 되고 그 위에 그 모든 것을 쌓지 않는다면 결국에 네가 이룬 모든 것들으 사상누각이 되고 마는 것이란다.

자기 자신을 알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야. 가장 먼저, 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야 하지. 그래서 네가 잘하는 것 vs. 못하는 것, 네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 vs. 목에 칼이 들어와도 못 하겠는 것, 네게 참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 vs. 너를 정말 비참하게 만드는 것, 그런 것들을 알아가야 한단다.

이 일이 이제 남은 고등학교 3년여의 시간동안 완전히 끝낼 수 있는 일도 아니지.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훨씬 더 많이 남은 네가, 지금 네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할 것이고, 아무리 바꾸고 싶어도 바뀌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될거야. 하지만, 굳이 에릭 에릭슨의 사회성 발달 이론을 꺼내지 않더라도 이제 3년 남짓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성인으로서 독립해서 네 인생을 혼자서 알아서 살아야 하는 이 시점이야 말로, 네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작업을 시작해야할 때란다.

스스로 자신을 탐험하기에는 어려운 어린 나이에는 주변 사람들의 칭찬과 사랑이 네가 누구인지를 찾아가는데 도움을 주지. 하지만, 이제 너는 많이 성장했고, 스스로 네 자신을 알아갈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사람의 도움만으로는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 네 자신을 찾아갈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단다. 마치 어린 아이가 젖을 떼고 이유식을 하다가 어른과 똑같은 밥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네 몸 뿐만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 이제는 많이 성장했단다.

네게 주어진 은사(네가 자연스럽게 잘 할 수 있는 것)는 무엇인지, 네 안 깊숙한 곳에는 어떠한 갈망이 숨어있는지, 네게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것은 무엇인지 잘 찾아보아라. 네가 진정한 네 자신을 찾았다면, 네 갈망을 추구하는 데 있어 네 은사가 아주 유용하게 사용됨을 볼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참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됨을 알게 될 거야.

특히나 이 갈망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아서, 네가 물꼬를 잘 트기만 하면 네 안에서 계속해서 새록새록 솟아나 삶의 원동력, 즉 동기를 부여해 줄 거야. 사람들은 이것을 여러가지 다른 이름으로 불렀지. 어떤 이들은 "마음"이라 부르기도 하고, 레이건 대통령은 "inner man", 디즈니는 "꿈"이라고 불렀어. 하지만 이름은 서로 다르더라도 그것은 결국 같은 것이고, 그 진짜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이 스스로의 안에서부터 우러나와 자신의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수만 있다면, 이야말로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비결이라고 엄마는 생각해.

근데 자신을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그거 알고 있니? 바로 그 정답을 알려주는 이가 있다는 것을...

그건 바로 네 안에 계시는 성령이란다.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네가 이 세상을 떠나고 싶을때 떠나고 싶은 방법으로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네가 네 은사를 고른 것도 아니고, 네 안에 숨어있는 갈망을 네가 원해서 갖게 된 것도 아니지. 그것은 모두 다 하느님의 계획에 의해 생긴 일이기 때문이야.

네가 알게 된 네 자신의 실제 모습이 네가 원하는 모습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어. 네가 너를 위해 세운 최고의 계획이 하느님께서 너를 위해 마련해 놓은 계획보다 더 나아보일 수도 있지. 그 둘에서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순전히 너에게 달렸다. 네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엄마는 네 선택을 존중해.

하지만 엄마가 철수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는, 그분의 계획에 따르기로 선택한다면 네 생각과 경험으로는 미치지 못했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정말 멋진 삶을 살 수 있게 되리라는 거야. 왜냐하면 그분은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할 이유와 도구를 주신 분이고, 네가 뭘할때 가장 행복한지, 심지어 네 머리카락 갯수까지도 다 알고 계시고, 네 갈망을, 네 꿈을 네 가슴속 깊은 곳에 직접 새겨넣어주신, 네가 알고자 하는 네 자신을 직접 만드신 분이거든.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고 잘 하고자 하는 동기가 세상 사람들에게서 인정받기 위함 때문이라면 너는 곧 지치고 궁극적으로는 좌절할 수 밖에 없단다. 네 삶을 움직이는 동기는 네 안에서 찾아야 하고, 성령께서 네게 하고자 하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려무나. 그분의 말씀을 알아듣고 그에 따라 살 수 있다면 진정한 네 자신을 찾게되고 그분만의 오묘한 방법으로 너를 참행복의 삶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사랑하는 엄마가...



Credit: http://www.quotesvalley.com/

Day #12: Gathering

오늘의 주제는 Gathering이로군요. 주일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느님 찬미 찬송한다는 것이 너무 기쁩니다!

.. 라고 쓰고 싶긴 한데, 그래도... 솔직하게 써야 하겠죠?

주일이 되면 서울시의 5배보다도 더 큰 지역에 걸쳐 사는 한인 천주교 신자들이 성당으로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모입니다. 최근 1-2년 사이에 이 지역 회사들에 채용된 한국 사람들이 급증하면서 특히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의 수가 눈에 띄게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늦잠자고 게으름 좀 부리고 싶은 일요일 아침에 아이들을 끌고 한참을 달려 성당에 온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렇게 성당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며 봉헌과 영성체를 위해 늘어선 긴 줄을 보면 대견스럽기까지 합니다.

미사볼때까지는 그렇게 흐뭇한 기분으로 미사를 보는데, 문제는 미사가 끝난 이후로군요. 한주일동안 원거리에서 이메일 등으로 소통하다가, 주일날만 되면 마치 "장"이 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일주일만에 뵙는 분들 인사해야지, 얼굴 뵈었을때 상의해야 할 것 빨리 해야지, 어떤 날은 10미터 남짓 걸어가는데 15분 이상 걸릴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같이 수업때문에 부담으로 마음이 짓눌려 있고, 복사하고 구멍뚫어 바인딩하고 교실 셋업하고 준비해야할 일도 많고, 본 수업과 보강 수업 두번이 연달아 있는 이런 날은 정말 사람들 없는 어디론가 도망가버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사람들이 말걸까봐 얼굴 표정도 무표정, 말시켜도 '지금 좀 바빠서...' 하고 살짝 내빼고 ... 한국말로도 설명하기 쉽지 않은 교리 내용을 안 되는 영어로 가르친다는 것이 가장 큰 스트레스 원인인데, 거기서 튄 불똥이 괜시리 다른 사람들한테로 튀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오늘은 수업이 끝나고 나서 예전만큼 그렇게 기분이 우울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일주일 봄방학 동안 제가 쓸 수 있었던 모든 개인 시간을 사순 일기를 쓰는 것외에는 수업 준비하느라고 다 썼거든요. 그 바람에 어제는 잠도 많이 못자고, 교리책은 제본이 튿어지고, 2시간을 연달아 떠들고 나니 끝나고 나서는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지만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네요.

사실 수업 준비에 그렇게 시간을 많이 쓴 이유는 이번주도 이번주지만, 2주후에 있을 다음번 수업까지 해야 해서 그랬답니다. 다음 수업은 2주나 남았는데 뭘 그리 급하게 준비하느냐구요? 이제 돌아오는 주말은 제가 좀 바쁘거든요.

2박 3일동안 LA에서 열리는 Religious Education Congress에 참석하려고 이번 목요일밤에 LA로 출발합니다. 2012년에 처음으로 가 보고난 뒤 이번이 두번째이네요. 2박 3일 동안 열리는 금쪽 같은 워크샵들에서 정말 좋은 것 많이 배우고, 흥겨운 음악과 여러 문화권의 전례에 대한 새로운 경험들로부터 생명력을 느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깊게 남았던 것은 그 어마어마한 규모였습니다.

주일날 아침, 서울시의 5배가 아닌, 여러나라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엄청 큰 규모의 아레나를 가득 채우고, 언어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지만 음악과 춤으로 한데 어우러져 한마음으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사람이 들어가 누워도 될만한 커다란 광주리에 담긴 빵을 나누던 그 기억과 감흥이 아직도 그대로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이제 정확히 일주일 남은 LA Congress의 주일 미사의 Gathering이 많이 기다려집니다. 그때의 좋은 기억때문에 기대 수준이 높아져 이번에 실망하면 어쩌나 우려도 없진 않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다른 말을 쓰고 그렇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도 우리는 하나의 교회, 가톨릭 교회임을 다시금 느끼고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Saturday, February 20, 2016

Day #11: Quiet - "Listen to the Silence"

사진: http://quotesgram.com/


Listen to the Silence (침묵을 들어보세요)

You know I think it's a funny thing (있쟎아요, 전 정말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People talk without listening (사람들은 듣지도 않고 대화를 해요)
People listen without hearing(사람들은 귀에 담는 것도 없이 귀를 기울이지요)
I do it all the time (사실은 저도 항상 그래요)

You know it's a funny phenomenon (있쟎아요, 이건 정말 웃기는 현상인데요)
People on their constant run (사람들은 항상 끊임없이 뛰어다니고 있어요)
So obvious to me and yet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긴 하지만)
I never stop to get set (사실은 저도 뛰기전에 준비 자세를 제대로 취하려고 멈춰 본 적은 없어요)

Listen to the silence (침묵을 들어보세요)
You might hear what you're looking for (어쩌면 당신이 그동안 찾고 있던 것을 들을지도 몰라요)
Hearing nothing but the sound of your mind (당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Listen to the silence (침묵을 들어보세요)
A little quiet time (조용한 시간 아주 조금만...)
You just might find what you're after (어쩌면 당신이 그동안 좇고 있던 것을 찾을지도 몰라요)
If you close your eyes (당신이 눈을 지긋이 감아본다면...)

There's a jackhammer here and a speechmaker there (여기는 공사하는 소리, 저기는 연설하는 사람)
Here a gun, there a gun, everywhere (여기도 총, 저기도 총, 사방에 여기저기)
See my man go tearing his hair (친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가는 모습이 보이네요)
When everything's fine (모든 것이 괜챦을 때의 얘기죠)

I don't pretend to know a lot (저는 많은 것을 아는 체하지 않아요)
I'll do the best with what I've got (저는 제가 가진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거예요)
Clear my head and give it a shot (머리속을 비우고 한번 시도해 볼 거예요)
Till the stars line up right (별들이 제대로 정렬될 때까지)

Listen to the silence (침묵을 들어보세요)
You might hear what you're looking for (어쩌면 당신이 그동안 찾고 있던 것을 들을지도 몰라요)
Hearing nothing but the sound of your mind (당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Listen to the silence (침묵을 들어보세요)
A little quiet time (조용한 시간 아주 조금만...)
You just might find what you're after (어쩌면 당신이 그동안 좇고 있던 것을 찾을지도 몰라요)
If you close your eyes (당신이 눈을 지긋이 감아본다면...)

This isn't deep, it's not profound (이것은 깊이있는 것도 아니고 심오한 것도 아니예요)
It's just something that I think about now (단지 현재에 대해서 제가 생각하는 것일 뿐이죠)
Had to find a new way around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만 했어요)
The old way's not right (옛날식은 맞지 않네요)

Self-help books and the latest moves (각종 자습서와 새로운 움직임들)
Who knows what will get you through (당신이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그 누가 알겠어요?)
Don't know about me, less about you (전 제자신도 몰라요, 당신은 더 모르죠)
I don't know but I'll try (전 잘 몰라요, 그렇지만 한번 시도해 볼 거예요)

Listen to the silence (침묵을 들어보세요)
You might hear what you're looking for (어쩌면 당신이 그동안 찾고 있던 것을 들을지도 몰라요)
Hearing nothing but the sound of your mind (당신의 마음이 내는 소리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Listen to the silence (침묵을 들어보세요)
A little quiet time (조용한 시간 아주 조금만...)
You just might find what you're after (어쩌면 당신이 그동안 좇고 있던 것을 찾을지도 몰라요)
If you close your eyes (당신이 눈을 지긋이 감아본다면...)

It's a noisy life I'm living right now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은 잡음가득한 삶이예요)
Believe I've done my time in the loud (소음 속에서 징역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Noisy life I'm living right now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잡음속의 삶...)
I've played my joyful song with a loud sound (소음으로 제 환희의 노래를 연주해 왔어요)

Songwriters
HORNSBY, BRUCE
(http://www.metrolyrics.com/listen-to-the-silence-lyrics-bruce-hornsby.html)



오늘의 주제 Quiet을 보는 순간, "Listen to the Silence"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네요. 그래서 구글을 찾아 보았더니, 대학의 어느 클럽 이름부터 해서 책 제목, 앨범 이름, 명상 자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들이 나오더군요. 아무래도 스탠포드에서 참례했던 재의 수요일 미사였던 것 같은데, 어쨌든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고, 우연히 눈에 들어온 노래 가사를 위에 옮겨왔습니다. 노래를 직접 들어보고 싶었는데 노래는 인터넷으로 찾을 수가 없군요.

노랫말을 읽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너무나도 정확히 표현해 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음으로 가득한 삶... 저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있지요. 이제는 소음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것이 소음인지 조차도 모르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전에 비바람이 몹시 쳤었죠. 그 바람에 이 동네 한인 상점 거리 일대가 정전이 되었었습니다. 파마를 하고 싶어하던 작은 아이와 미용실에 다녀오면서 모처럼 식사하러 갔던 식당도 정전으로 인해, 면종류는 아예 주문을 받지 않아 그냥 되돌아 와야 했었습니다.

그러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집의 전기가 나갔다 들어왔다 하더군요. 그래서 정말로 오랜만에 촛불에 불을 붙여, 거실과 화장실에 놓았습니다.

거실에서 초에 불을 붙여 화장실로 불이 꺼질까 조심조심 걸어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깜빡 하고 전기가 나갔습니다. 누군가 PC 방 같다고 하였던 거실 안의 모든 컴퓨터가 다 꺼지고 냉장고도 꺼지고 어항안의 물을 끌어올려 정화시키던 필터도 꺼졌습니다.

순간, '세상이 이렇게 조용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안을 가득채우고 있던 온갖 기계음이 다 꺼지고 난 뒤, 그 고요하고 어두운 적막 속에서 촛불을 하나 바라보고 있노라니, 왠지 몸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러자, 촛불이 몸을 팔락팔락 움직이며 마치 제게 뭔가 말을 걸어오고 있는 듯이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나 하고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그때 다시 전기가 들어오고 집안이 온통 기계소음으로 가득차고 주변이 환해졌습니다. 그러니 촛불은 다시 입을 다무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길어봐야 10초나 되었을까요?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온 세상이 조용해지자, 그동안은 제가 들어보지 못했던 작은 소리들이 들리는 것 같은 생명넘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성령을, "우리 영혼의 조용한 손님[1]"이라 불렀습니다. 성령을 느끼려면 고요해져야 한다고 되어 있지요.[2]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알아듣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우리의 삶이 온통 세상의 소음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예수님도 기도하실때 자주 조용한 외딴 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고 하지요. 엊그제 주제도 "비움"에 관한 것이었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을 위한 조용한 시간을 단 15분만이라도 마련하고, 세상 소음을 조금씩 비워내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세상은 제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때에 조용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가 일을 시작하기 전만해도 가족들이 직장으로 학교로 모두 가고 난 뒤, 집안이 좀 한가해졌을때 혼자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그런 시간이 전혀 없어졌습니다. 엄마 기도할테니 다들 숨도 쉬지 말고 조용히 있거라 하기도 어렵고, 음악 소리, 게임 소리, TV 소리는 기본, 그나마 "엄마 밥 줘"하지만 않아도 감지덕지 해야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고요함을 외부의 조건이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고요함을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랬을까요? "Listen to the Silence"란 말을 들었을때 제게 꼭 필요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상의 소음 한 가운데에서 고요함을 만들어 가는 법, 언제 어디에서건 제 안의 고요함을 이끌어내어 침묵에 열심히 귀기울여 듣는 것, 그것이 제게 남겨진 큰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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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OUCAT 한국어판에는 "우리 영혼 속의 조용한 영"으로 되어 있습니다.
[2] YOUCAT #120 

Friday, February 19, 2016

Day #10: Fish Friday - Food Challenge 2017(?)


오늘은 금육하는 금요일입니다. 오늘의 주제가 Fish Friday인지라 어제부터 오늘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어 데리야키 구이로 정해서 저녁 식사를 준비했습니다(굉장히 단촐하죠?). 이번 주는 프레지던트 데이 연휴를 끼고 일주일간 봄방학이 있는 주라서, 아침은 항상 똑같은 메뉴 베이글, 점심은 전날 저녁 먹다 남은 것으로 떼우고 저녁 한끼만 준비하는 것 같네요.

미리 메뉴를 정해놓으니, 재료도 미리 냉동실에서 꺼내서 해동도 시켜놓고, 어디 나갔다가 집에 늦게 돌아와 급하게 식사 준비를 하는데도 뭘 먹나 고민하느라고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되고, 저녁 식사 준비 시간도 평소보다 덜 걸린 듯 합니다.

내년에는 사순기간동안 매일같이 주제에 맞는 사진찍어서 SNS에 올리는 Photo Challenge 대신, 매일같이 주제에 맞는 음식을 해서 사진찍어 SNS에 올리는 Food Challenge를 해달라고 할까 봅니다.





Day #9: Empty - 500원짜리 동전

지난 10월에 성령 기초 세미나에 참석했을때, 세미나를 시작하면서 지도 신부님께서 가장 처음 해 주신 이야기였습니다.

"어느 요양원에 치매 증상이 있는 어떤 할머니가 계셨습니다. 실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이 할머니는 뭔가를 손에 꼭 쥐고 절대로 주먹을 펴지 않았습니다. 다른 환자들이나 보호자, 의료진들은 할머니가 뭘 쥐고 있는지 궁금했지만, 절대로 손을 열어 보여주지 않으니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치매가 점점 심해지면서, 할머니는 주먹을 쥔 손으로 사람들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참고 넘어갔지만, 증상이 점차 심해지자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할머니를 붙잡고 도대체 무얼 손에 쥐고 있는건지 강제로 손을 펼쳐 열었습니다.

할머니의 손 안에는 500원짜리 동전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500원짜리 동전을 할머니가 왜 그렇게 손에 꼭 쥐고 다녔는지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은 500원짜리 동전만큼은 절대로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손에 꼭 쥐고 절대로 아무한테도 보여주지도 않고 그것에 대해서는 이야기조차 꺼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 꼭 쥐고 놓치지 않고 싶어하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꼭 쥐고 있는 500원짜리 동전은 무엇입니까?"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Catholicism의 저자 Robert Barron 신부님 (작년에 드디어 주교님이 되셨죠)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의 처음 4구절에 대해 이야기 하기전에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무한한 갈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갈망을 하느님보다 못한 것들로 채우려는 노력을 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하느님을 대체하는 고전적인 4가지에 부, 쾌락, 권력, 그리고 명예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중략) 이렇게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하느님보다 못한 대체물로 채우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아로부터 사랑을 비워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굶주려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굶주림을 하느님보다 못한 것들로 채우려 합니다. 그러다보니 욕구불만 상태에 빠집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더 많이 가짐으로서 그 욕구불만을 해결하려 합니다. 노력에 노력을 더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해서 그것들을 결국 차지하고 맙니다. 그러나 아직도 만족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영적인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되지요. 그래서 원론적으로, 하느님의 자리를 다른 것들로 채워서는 우리가 행복해질 수가 없습니다."
- Catholicism (2012), Episode 2 - Teachings of Jesus 중에서

모든 것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이루어지길 원하는 것도 권력의 한 형태이고, 남한테서 인정받거나 포용되기를 바라는 것도 명예의 한 형태라는 설명도 뒤에 나옵니다.

조금전의 Barron 주교님의 설명을 다시 역설적으로 이용한다면, 부, 쾌락, 권력, 명예와 같은 대체물들을 자신에게서 비워내고 나면 하느님의 사랑을 채울 수 있다고 봐도 괜챦겠지요?

그런데, 부와 쾌락과 권력과 명예... 그 어느 것 하나 만만하게 비워낼 수 있는 것이 없군요.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손에 꼭 쥐고 있는 500원짜리 동전이 있습니까? 있다면 그것은, 부입니까? 쾌락입니까? 아니면 권력입니까? 명예입니까? 아니면 전부 다 입니까? 

사진: http://image.auction.co.kr

Wednesday, February 17, 2016

Day #8: Prayer - "기도는 기도함으로써 압니다"




동영상: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 (http://ucc.catholic.or.kr/Ucc/View.aspx?cc=CAT019004001&ano=2542/)


2013년 여름, 새성전 이전가 한창이었을때 저희 구역분들과 함께 9일 기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도'와 '새성전'을 주제로 이메일을 적어 54일(피정갔던 기간을 제외하면 정확히는 51일)동안 보내드리며 함께 기도해 주십사 독려했었죠.

50일이 넘게 같은 주제에 대해서 이메일을 쓰다보니 얼마되지도 않는 밑천이 금새 떨어져, '기도'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 인터넷 여기저기를 찾아다니야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지도 못한 좋은 자료들을 많이 발견했지요. 매일 이메일을 써서 보내는 일이 정말 녹녹치 않았었는데, 그런 와중에 많은 은총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여기 올려드리는 동영상은 그때 발견했던 자료 중의 하나였습니다. 내용이 너무 좋아서 꼭 공유하고 싶은 자료였지만, 그 당시는 영어로 자막 준비 하기가 힘들어서 다음으로 미뤄뒀던 자료였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도 한번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평신도가 추기경님께 말씀하셨다는 "기도는 기도함으로써 압니다"는 대목과, 느낌이 있든 없든 기도를 하며 보낸 한주일은 뭔지 모르게 아침이슬처럼 마음이 젖어있다는 대목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전례없는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캘리포니아에도 오늘은 비 소식이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단비가 대지를 적셔주듯이, 오늘 하루도 기도로써 마음을 촉촉히 적시며 시작하렵니다.


Tuesday, February 16, 2016

Day #7: Practice - 다리에서 머리까지

Credit: http://www.ihatepresentations.com

'Practice' 라는 영어 단어를 보면 한국 사람들은 '연습'이란 말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실제로 미국 사람들이 이 말을 사용할 때 보면 '연습'도 있지만, '실천' 혹은 '관습' 이런 뜻으로도 많이 사용합니다. 실제로 사전을 찾아봐도, '실천'이나 "관습'이란 뜻이 '연습'보다도 먼저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네요. 영영사전에는 'Action Not Ideas'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이 'Practice'를 '연습' 대신에 '실천'이란 뜻으로 이해하고 글을 시작하겠습니다.

예전에 성당에서 하는 성경 공부 시간이었던 것 같네요. 큰 수녀님이 이런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정말 멀리 떨어진 두 지점이 어딘 줄 아세요?"

"..."

"머리에서 가슴까지예요."

머리에 있는 것이 가슴으로 내려오기까지, 즉 머리로 알고 있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참 어렵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다들 머리로 끄덕끄덕 했지요.

"그런데 그것보다도 훨씬 더 멀리 떨어진 두 지점은 어딘 줄 아세요?"

".... ...."

"바로 가슴에서 다리까지입니다."

가슴으로 느꼈다하더라도 그것을 실제로 다리를 움직이는 것, 즉 마음이 있더라도 실제로 몸을 움직여 실천하는 것은, 머리로 알던 것을 가슴으로 느끼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렵더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도 그랬지만, 그 말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더 크게 고개를 끄덕끄덕 하였습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그것을 실제로 몸을 움직여 실천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은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렇게 머리로 아는 것은 많아도 다리까지 내려오기가 힘들다면, 자꾸 다리를 움직여 보는 연습을 하면 어떨까요?

"신앙을 키우기 위해서는,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행위, 봉사를 먼저 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예전에 어느 신부님께서 강론 중에 하셨던 말씀입니다.

우리 몸이 빈껍데기같이 느껴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과 정신은 생각보다 아주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기분이 좋아지고 싶으면, 기분좋은 얼굴 표정을 짓는 것이 행복한 기분이 들때 분비되는 엔돌핀을 분비한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요 [1]. 저 역시도 봉사 활동을 하면서 신앙심이 많이 자랐음을 느낍니다.

머리에서 다리까지 내려오는 것이 힘들다면, 머리와 가슴을 비우고 다리를 먼저 움직여 봅시다. 억지로라도 미소를 짓다보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듯이, 열심히 다리를 움직이다 보면 신앙의 엔돌핀이 나와 발끝부터 조금씩 채워져 언젠가 머리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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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Kleiman, K., MSW, LCSW. (2012, July 31). Try Some Smile Therapy. Retrieved February 16, 2016, from https://www.psychologytoday.com/blog/isnt-what-i-expected/201207/try-some-smile-therapy

Monday, February 15, 2016

Day #6: Bible - "It is written: ..."


사진 출처: http://www.catholicweb.tistory.com/

"It is written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 

이게 뜬금없이 무슨 말이냐구요? 이것은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게 해 주는 묘약(妙藥)입니다. 어제 주일 미사 강론 시간에 신부님께서 너무나도 단순한 진리를 깨우쳐 주셨습니다. 

어제 주일의 복음 말씀은 루카 4,1-13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시어, 유혹을 받으셨다> 부분이지요. 사순이 되면 거르지않고 듣게 되는 복음 말씀인 것 같습니다. 사순만도 벌써 10번을 넘게 보냈고 그렇다면 그 말씀을 10번도 넘게 들어오면서, 그동안은 사탄의 다양한 유혹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내용에 주로 촛점을 맞춰 보아왔었는데, 이번에는 사탄의 유혹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더도말고 덜도말고 성경 구절 하나 뿐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라는 문구가 예수님의 답변 끝에 따라오는 한글 성경 구절과는 달리, 영어 성경 구절에는 예수님이 답변이 매번 "It is written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로 시작되어 있어 두 언어의 성경 번역 차이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 왜냐하면 사탄은 인간보다 더 영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 없이는 사탄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 하느님의 말씀은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 묘약이다'라고 신부님이 강론 중에 말씀하셨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로 하기 대신,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루카 4,4)는 구절을 계속 암송한다면 성공할 확률이 훨씬 더 클것이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이 저희에게 '처방전'을 하나 써 주셨습니다. 이번 사순 동안, 자신의 약점에 대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성경 구절 한가지를 암송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멋들어진 성경 구절 하나를 보란듯이 읊어보고 싶었는데, 성경을 여기 찔끔 저기 찔끔 읽어본 게 전부인 저로서는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하고 통 떠오르는 구절이 없군요. 그래서 어차피 3월초에는 답안을 작성해 보내야 하는 통신 성서 공부를 오늘부터 시작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사순동안 성경 읽기'도 하면 좋겠지만, 제 자신과 너무 많은 약속을 하다 보면 한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은 '사순 일기'라도 잘 마무리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It is written:" 뒤에 어떤 구절을 넣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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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혹시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는 분이 계실지 몰라서 "컨닝 페이퍼"를 준비했습니다. 제 자신이 직접 만들기에는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해서, 예전에 큰 아이가 제가 좋아할 것 같다며 보내준 자료를 이용해 보았습니다.

Credit: http://www.pinterest.com/



  • 슬플때는, 요한 14
  • 사람들에게 실망스러울때는, 시편 27
  • 죄를 지었을때는, 시편 51
  • 걱정스러울때는, 마태 6,19-34
  • 위험에 처했을때는, 시편 91
  • 하느님이 멀리 계시는 것 같이 느껴질때는, 시편 139
  • 외롭고 두려울때는, 시편 23
  • 점점 미움이 생기고 남들을 비난하게 될때는, 1코린 13
  • 무력하게 느껴질때는, 로마 8,31-39
  • 평화와 안식을 찾고 있을때는, 마태 11,28-30
  • 하느님보다 세상이 더 중요하게 느껴질때는, 시편 90
  • 크리스천으로서의 확신을 갖고 싶을때는, 로마 8,1-30
  • 집을 떠나 일이나 여행을 가게될때는, 시편 121
  • 기도가 점점 편협해지고 이기적이 될 때는, 시편 67
  •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용기가 필요할 때는, 여호 1
  • 투자와 이윤이 생각날 때는, 마르 10
  • 동료들과 잘 어울리고 싶을 때는, 로마 12
  • 기회를 찾고 있을때는, 이사 55
  • 사도 바오로가 전하는 행복의 비결을 알고 싶으면, 콜로 3,12-17
  • 열매를 맺고 싶으면, 요한 15
  • 가진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때면, 시편 37
  • 하는 일에 대해서 낙담하게 되었을때는, 시편 126

(제가 번역한 내용이 사진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Sunday, February 14, 2016

Day #5: Love - "사랑 참 어렵다"



Credit: http://www.cnn.com/

오늘의 주제가 왜 Love인지 알 것 같네요. 달콤한 쵸콜렛과 향기로운 장미, 연인들의 뜨거운 키스가 떠오르는 날, 오늘이 바로 그 발렌타인 데이로군요. 먼저 발렌타인 인사드립니다. Happy Valentine's Day!! 

밑에 보이는 사진은 제가 일하고 있는 학급의 친구들이 제게 준 발렌타인 선물들입니다. 발렌타인 데이가 올해에는 학교가 노는 일요일인 관계로, 지난 금요일날 발렌타인 데이 파티를 하였거든요. 교실 뒷쪽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서 하루를 보내는 저까지(제가 맡은 학생의 상태를 살피고 혹시 발작을 하게 되면 응급처치를 하는 것이 저의 하루 일과이거든요) 챙겨주어서 많이 고마왔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학교에서는 영화도 보고 쿠키 데코레이션도 하고 각자 만든 발렌타인 카드와 쵸콜렛/캔디도 서로 교환하면서 학교가 파하기 전 마지막 한시간을 보냈습니다. 학생들은 영화보다는 책상에 잔뜩 쌓인 쵸콜렛이랑 캔디랑 쿠키를 먹느라고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발렌타인 데이에 1억 5천만개의 카드와 선물이 오가고 190억원이 쓰여진다고 합니다. 선물이라함은 수백만개의 하트 모양의 쵸콜렛 상자와 수억개의 장미꽃을 말한다고 하네요. 꽃집 주인들에게는 일년 중 가장 큰 대목이라 합니다.[1]

그러나, 일년 중 이 발렌타인 데이를 통해 가장 기념하고 싶은 "사랑"의 의미를 변질시킨 것은 바로 이 상술(商術)이 아닌가 싶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말합니다.

"참된 사랑은 아픕니다. 늘 아파야만 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 사람을 떠나느니 차라리 그 사람을 위해서 죽고 싶을 만큼 그렇게 고통스럽습니다. 사람들이 결혼할 때는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아이에게 생명을 건네주는 어머니는 커다란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다. '사랑'이란 단어는 너무나도 잘못 이해되고 잘못 사용되고 있습니다." (필자 의역) [2]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바로 어머니의 그 자식에 대한 사랑이란 것에 크게 이의가 있는 분은 아마도 없으실 겁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먹어도 먹어도 또 먹고 싶은 그런 달콤한 쵸콜렛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식구들이 남긴 밥으로 한끼를 떼우고,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꾹 참고는 "엄마는 그거 안 좋아한다" 아니면 "엄마는 지금 배가 부르다"하며 돌아서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향기로운 장미꽃 같은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이의 똥 기저귀와, 쓰레기 봉지와, 땀냄새/발냄세가 풀풀 나는 빨래더미와 씨름해야 하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뜨겁게 불타오르는 연인들과 같은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오히려, 자식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는 그런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도 예수님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자신을 조롱하고 매질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원수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는 그런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면, 우리는 사랑 전문가 예수님에게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갑자기 어느 유행가 제목이 생각나는 군요. 

"사랑 참 어렵다..."









[1] CNN Student News - February 12, 2016 - CNN.com. (2016, February 11). Retrieved February 14, 2016, from http://www.cnn.com/2016/02/11/studentnews/sn-content-fri/#
[2] Youcat English: Youth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p. 33). (2011). San Francisco, CA: Ignatius Press. (한글판 YOUCAT의 번역문은 다음 사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Saturday, February 13, 2016

Day #4: Walk - 봄길 산책



"Walk"라는 주제가 주어지지 않았으면 아마도 절대 문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을, 주어진 주제에 대해서 딱히 생각나는 것도 없고 해서, 오후 3시가 되기 조금 전에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모자까지 쓰고 문밖을 나섰습니다.

평소에는 대문 밖을 나서면 자동차가 서 있는 자리까지 열 걸음 남짓밖에 걷게 되지 않지만, 오늘은 모처럼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만 했던 동네 어귀를 걸어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길을 걸어본 것은, 집까지 다 와서 기름이 떨어지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차를 길 한가운데에 세워두고 집까지 걸어올 수 밖에 없었던 3년 반전쯤의 가을이었었던 것 같네요. 차문을 열고 길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낙엽이 밟히는 소리에 '아, 가을이구나...' 했던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화창한 봄 날씨" 하면 연상되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말 그대로 화창한 봄이로군요. 따스한 봄볕, 맑은 하늘, 아름다운 들꽃, 파란 새싹, 새들의 노랫소리, ... 시냇물 졸졸 흐르는 소리만 빠진 것 같네요.

사순 일기를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이 화창한 봄 날씨를 이렇게 누릴 수 있었을까 모르겠습니다. 화창한 봄 날씨가, 아름다운 꽃들이, 향긋한 꽃 냄새가, 즐거운 새들의 노랫소리가, 그냥 오늘 하루가, 모두가 하느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Day #3: Simplicity - "It's not easy, but it's simple"

"Simple"이란 말을 들으면, 몇개월 전에 보았던 God's Not Dead라는 영화 속에 나왔던, 듣자마자 가슴 속에 콱 박혔던 "It's not easy,... but it's simple"이란 대사가 생각납니다.

Credit: http://www.pinterest.com/

God's Not Dead란 영화 (2014년 개봉, Harold Cronk 감독)에서, 독실한 크리스쳔 대학생인 주인공 Josh는 시간이 맞지 않아 무신론자인 철학 교수 Radisson의 수업을 들을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수업 첫시간에 Radisson 교수는 앞으로 진행되는 수업의 대전제가 되는 "God is dead"라는 문구를 모든 학생이 적어서 사인하여 제출하도록 하는데, Josh는 고민 끝에 결국 거부하고 맙니다. 그에 대해 Radisson 교수는 자신의 수업 방식에 따르지 않으려면 자신에게 "God is NOT dead"라는 명제에 대해 증명하도록 Josh에게 요구하고 그러지 못하면 그 과목에서 낙제를 하게 될 거라고 경고합니다. 함께 수업을 듣는 다른 학생들은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게 만드는 Josh에게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고, 여자 친구 또한 그냥 순순히 교수가 시키는 대로 하라며 괜한 고집부리지 말라며 종용하는 데다가, 많은 학생들 앞에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Josh를 Radisson 교수는 기회가 있을 적마다 괴롭힙니다. Josh가 학교 캠퍼스의 교회에 앉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을때, 사목자 Dave가 Josh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지요.

"자네 안의 작은 목소리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자네에게서 원하는 그 선택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기 때문에 자네가 지금 여기에 와 있는 걸세. 자네가 할 일은, 그 목소리가 하는 말을 들을 것인지 아닌지를 정하는 거라네. ... 그것은 쉽지 않지만, 단순한 일이지(It's not easy, but it's simple)."

가슴에 박힌 그 문구는, 이후 제 안에서 혹은 저를 둘러싼 환경 속에서 갈등이 생길 때마다 그 상황을 혹은 제 안의 내면을 좀 더 단순하게 보고 "교통 정리"할 수 있도록 커다란 가르침이 되어주었습니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이 원칙을 적용하면서 느낀 것은, 갈등의 해답은 이미 제가 알고 있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미 알고 있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 역시나 쉽지 않더라는 것이죠. Everett Fritz (http://chastityproject.com/2013/12/5-secrets-to-successful-dating/)가 이야기한대로 우리의 부족함, 상처, 불합리한 기대들이 일을 필요이상으로 복잡하게 만들어 가는 듯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한국 사람의 경우는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둔 사회 문화적 고정 관념 또한 이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요즘은, 알고 있는 대로 느낌이 오는 대로, 마치 어린아이처럼 있는 그래도 저의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학급에서, 사람들이 기쁘면 웃고 슬픈 소식에 함께 마음 아파하고 불만이 있으면 거침없이 그자리에서 솔직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것의 가치를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언어의 장벽으로 인해 그것도 처음엔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영어로 옮기다가 타이밍을 놓치거나 번역이 잘 안 되어서 포기하는 경우도 많았었지요. 그러나 가장 어려웠던 것은 '그래, 나 영어 못 한다, 그래'하며 있는 그대로의 제 자신을 받아들이고 부족한 제 모습을 남들에게 그대로 드러내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쉽지는 않지만 하면 할수록 조금씩 쉬워지네요.

어린아이처럼 살 수 있기를 갈구합니다. 기쁘면 큰 소리로 웃고 슬프면 울고 화가 나면 화도 내고, 있는 그대로를 보고 받아들이며 있는 그대로를 살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르 10,14ㄷ) 라고 하셨지요. 어린이의 가장 큰 특징은 그 단순함이 아닐까요? 물론, 낼모레 50살을 바라보는 제가 어린이 같은 삶을 살기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골치아픈 문제 또한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It's not easy,... but it's simple.

Day #2: Rice Bowl - 공기밥(?)


재의 수요일 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에 스탠포드 가톨릭 커뮤니티에서 Rice Bowl (직역하면 공기밥!)상자를 나누어주고 있길래 8개를 가져왔습니다. Rice Bowl은 가톨릭 구호단체인 (Catholic Relief Services)에서 해마다 사순이면 진행하는 대대적인 모금 운동입니다. 그 기금으로 전세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는데 사용됩니다.

그런데, 왜 8개냐구요? 1개는 저를 위한 것이고, 7개는 제가 현재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것입니다. 아직 세례를 받지는 않은 친구들이고, 다음 수업때까지는 아직 열흘이나 남아서 사순의 4분의 1만큼 날짜를 보낸 다음에야 나누어줄 수 있을 것 같아 아쉽고, 과연 얼만큼의 참여가 있을지도 잘 모르겠지만 한번 시도해 볼까 합니다.

재의 수요일에 금식을 함으로써 아낀 베이글과 에너지 바 값을 Rice Bowl 상자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하루에 $1이라는 문구를 보고 일단 사순절 40일 분의 $40도 넣어 두었습니다. 절제와 금식/금육을 통해 아껴지게 되는 돈도 계속해서 넣을 계획입니다. 사순절이 끝나면 과연 얼마다 모여질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네요. 얼마되진 않더라도 이럴때 제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도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이글을 읽고 계신 분들도 굳이 Rice Bowl이 아니더라도 여러 방법으로 불우 이웃을 돕는 활동에 동참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Day #1: Ashes - 2016년 재의 수요일에...


2016년 2월 10일 Stanford Memorial Church의 재의 수요일 미사

재의 수요일은 사순절이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2013년 재의 수요일 미사에 처음으로 참례한 이후로 이번이 4번째 참례하는 재의 수요일 미사이지만, 이번만큼 재의 수요일 미사가 기대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일반 성당이 아닌 스탠포드 대학 안에 위치한 Memorial Church에서 하는 미사에 큰 아이와 함께 참석하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날 스탠포드 대학에서 볼일이 있었는데 마침 적당한 시간에 재의 수요일 미사가 있더군요).

학교만 보내놓으면 다 알아서 미사에도 참례하고 이마에 재까지 얹고 오는 둘째와는 달리, 큰 아이는 공립학교에 다니는 덕에 신앙 교육은 온전히 제게 맡겨져 있어, 바쁜 일과중에 의무 축일도 아닌 재의 수요일 미사에 데려가려면 항상 밀당을 하여야 했었습니다. '올해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재의 수요일 미사를 볼거야' 말해놓고는 '안 간다고 하면 뭐라고 하면서 꼬시지?'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웬걸?? 너무나도 흔쾌히 "오케이"하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저를 깜짝 놀라게 할 일들이 여럿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두번째 "서프라이즈"는 그 교회의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순간 숨이 턱 멎는 것 같았습니다. 아름다운 벽화와 스테인드 글래스, 정교한 조각, 눈부신 황금빛 장식들이 마치 옛날에 워싱턴 DC에 있던 주교좌 성당에 들어서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였습니다.

타지에서 손님이 오실 적마다 스탠포드 대학을 투어하며 교회 안에 들어가 멋진 내부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 찍은 것도 한두번이 아닌데, 금장식을 화려하게 비춘 조명 때문이었을까요? 그 안을 가득채운 사람들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제대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커다란 향로 때문이었을까요? 그림과 조각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저를 놀라게 한 것은 성가대였습니다. 사실 그 성가대는 여러번 저를 놀래켰답니다.

처음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열대여섯명 정도되어 보였는데, 아무리 잘 보아 주더라도 60대로 밖에는 볼 수 없는 사람들이 3분의 2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대학 캠퍼스 커뮤니티에 저렇게 나이많은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왔습니다.

그 다음은 그들의 놀라운 불협화음이었습니다. 그날은 미사에 비교적 집중이 잘 되는 편이었는데도, 그들이 노래를 부를 때마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음정이 맞지가 않았습니다. 음정이 그렇게 정확하지 않으면 차라리 화음을 넣지 말든지... ㅠㅠ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저를 더욱 놀라게 했습니다. 음정이 그렇게 맞지 않는데 (신기하게도 박자는 잘 맞추더군요) 그렇게도 큰 소리로, 그렇게도 당당하게 노래를 끝까지 부르더라는 겁니다. 어이가 없어 멍하니 그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문자 그대로 열과 성을 다해 노래하는 그들의 모습이 차츰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제 자신, 저렇게 입을 동그랗고 크게 벌리며 열심히 노래해 본 것이 언제였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나니, 한 사람 한 사람 소리가 튀는 그 와중에, 각각의 목소리가 참 좋은 사람들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계속 들어보니 개개인의 목소리는 참 좋은데 전혀 훈련받지 못한 아마추어들이란 것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제대로 배울 기회는 없었지만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로 주님을 찬미하는 것이 기쁨인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쉬지않고 튀어나오는 그들 한사람 한사람의 목소리 속에서 마치 그들의 마음이 외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교황님이 한국을 방문하셨던 2014년 명동 성당에서 마치 천사들이 합창을 한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까 싶었던 가톨릭 합창단과는 또 다른 면에서, 이들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가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의 미사는 여러가지로 참 특별한 느낌의 미사였습니다. 제대에서 몇계단 올라선 곳에 설치된 강론대와 그 강론대를 떠받치고 있는 듯한 천사의 조각은, 마치 독서와 복음이 천상에서 울려퍼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였고,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으로 보이는 신부님의 강론도 인상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제가 시작한 사순 일기도 신부님의 강론 중에 말씀하신 Flannery O'Connor의 Prayer Journal (기도 일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답니다),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듯한 샤방샤방한 선남 선녀들이 이렇게나 많이 재의 수요일 미사에 참례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도 정말 흐뭇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깜짝쇼의 하이라이트는 제가 아니라, 아마도 저희 큰 아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아이에게는 대학 캠퍼스 안에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왔는가 봅니다. 미사를 보러가기 전에 아이가 묻더군요.

철수: "학교 안에 교회가 있다고?"

지아나: "그럼. 왠만한 학교에는 다 교회가 있어."

철수: "고뤠???"

제가 2004년에 세례를 받은 뒤로 2번의 이사를 하게 되면서 새로운 성당을 찾아가야 했습니다만, 전혀 연고가 없는 성당을 찾아 나간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내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하자마자 그 첫 주일날 성당을 나가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었지요. 일단 한번 나가고 나면 아무래도 그 다음부터는 훨씬 쉬워지기 때문입니다.

집을 떠나 대학을 가게 되면서 성당을 나가지 않는 청년들이 정말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자녀가 대학 기숙사로 이주한 그 주일의 미사를 일부러 캠퍼스의 교회를 찾아가 함께 참례했다 하시더군요.

이제 제 큰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고 집을 떠나 혼자 살게 되기까지 3년여의 시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비록 아직은 이 아이가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미사의 경험이 이 아이로 하여금 대학에 가서도 가톨릭 공동체에 속하고 미사를 거르지 않도록 하는 연결 고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순을 시작하면서, 단 한번의 미사를 통하여 이렇게 많은 놀라움과 기쁨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2016년 사순절을 시작하며

이제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사순은 어떻게 보내실지 계획은 세우셨는지요?

저는 작년에는 주일 복음과 관련한 묵상 내용 동영상을 SNS상에 매일 공유하는 #ShareJesus 프로젝트에 동참했었습니다. 그동안은 흔히들 하듯 자신이 애착하고 있는 무언가를 포기하는 식으로, 그러니까 뭔가를 하지 않는 식으로 사순을 보냈었지만, 뭔가를 더 하는 식으로 보내었던 사순은 처음이었었는데, 저는 예수님께 다가갈 수 있는 뭔가를 더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드는군요.

그래서 이번에도 뭘 더 해볼까 하고 찾고 있었는데, 주일학교 수업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몇년전에 사용했던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다가, 바오로회에서 운영하는 Busted Halo라는 웹사이트에서 진행했던 '사순 달력'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도 같은 것을 하는지 그 웹사이트를 방문했더니 이번에는 매일 주어지는 주제에 대해서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BHLENT2016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사순엔 이걸 한번 시도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첫째날, 둘쨋날 주제는 사물인지라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3일째부터는 추상적인 주제들이어서 무엇을 사진찍어야 하나 고민이 되더군요. 그래서 사진을 찍는 대신 주어진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그날그날 일기를 써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40일간의 사순 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동안 제가 쓰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서 쓰고 싶을때 쓸 수 있었지만, 이번엔 제가 정하지 않은 주제들에 대해서 매일 써야 하기 때문에 그리 만만치 않으리란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지만 이번 기회에 그동안 제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곳으로 생각을 넓히고 깊이를 더해가며 예수님께로 한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