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11, 2015

빛과 어둠

"(5:22) 이런때에는, 어둠을 저주하기 보다는 촛불을 밝혀야 합니다. 어둠이 금요일 저녁 파리에 드리웠지만, 빛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중략)

우리는 지금 전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빛의 도시에서 어둠의 세력과의 전쟁을..."
(2015년 11월 16일자 CNN Student News 중에서, CNN 국제부 특파원 BEN WEDEMAN)









































파리 곳곳에 촛불이 켜졌습니다. 현재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세력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것은 바로 빛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지 않은지요?

그들은 분명, 이런식으로 한번 "본때"를 보여주면 세상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아무리 짙은 어둠도 작은 촛불 하나가 밀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 분명 공포와 슬픔과 고통이 휘몰아쳤던 것이 사실이지마는, 그로 인해 우리는 이제, 분열되어 있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촛불을 밝혀들고 함께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더 많은 곳에 테러를 행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해칠수록, 더 많은 곳에 더 많은 수의 촛불이 밝혀지고 세상은 더 밝은 빛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Bataclan 콘서트 홀에서 숨진 Helene Muyal-Leiris(35세)의 남편 Antoine Leiris가 페이스북에 올린, 가슴을 적심과 동시에 어둠의 세력에 대한 도전의 메시지를 번역하여 올립니다. (원문은 불어로 쓰인 듯한데, 불어를 번역할 재주는 없고 영어로 번역된 문장을 우연히 발견하여 여기에 한국말로 다시 옮겼습니다.)

"금요일밤, 너는 아주 특별한 생명 하나를 앗아갔다 - 그것은 나의 생명과도 같은 사랑, 나의 아들의 엄마였다. 그러나 너는 나의 증오심을 차지할 수 없다. 나는 네가 누구인지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너는 죽은 영혼일 뿐이다. 네가 무턱대고 살인하여 섬기고자 하는 그 신이 그의 모상에 따라 우리를 만들었다면, 내 와이프 몸 속의 총탄들이 그의 마음에 또 하나의 상처를 남겼을 것이다.

따라서, 절대로, 나의 증오심이라는 선물을 나는 너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너는 그것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노와 증오로 응답하는 것은, 현재의 너를 만들어낸 바로 그 무지함의 희생물로 전락하는 것일 뿐이다. 너는 내가 두려움에 떨고, 정치인들을 불신하고, 나자신의 안일을 위하여 나의 자유를 희생할 것을 원하겠지만, 너는 패배하였다.


나는 오늘 아침 그녀를 보았다. 몇날 몇일의 기다림 끝에... 그녀는 금요일 밤에 집을 나설 때처럼 똑같이 아름다왔다. 내가 12년 전에 대책없이 사랑에 빠졌을 때와 똑같이... 물론 나는 지금 고통으로 비탄에 빠져있고, 네게는 작은 승리감을 안겨 주었을지 모르겠지만, 이 고통은 길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매일 우리와 함께 할 것이며 네가 근접할 수 없는 자유로운 사랑의 극락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나와 나의 아들, 이렇게 둘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군대보다도 더 강하다. 나는 너에게 할애할 시간이 더 이상은 없다. 나는 방금 낮잠에서 깨어난 Melvil에게 가 보아야 한다. 그는 이제 겨우 17개월이 되었을 뿐이다. 그는 평소처럼 밥을 먹을 것이고, 그리고 나면 우리는 평소처럼 함께 놀이를 할 것이며, 이 작은 아이는 행복함과 자유로움으로써 그의 평생동안 너를 위협할 것이다. 그리고 절대로, 너는 그 아이의 증오심 또한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 Bataclan 콘서트 홀에서 ISIS의 테러로 숨진 Helene Muyal-Leiris(35세)의 남편 Antoine Leiris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



그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작은 촛불이 주는 지혜를 그들이 얻을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CNN의 인터뷰에서 어느 시민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세상을 어둠으로 가득채운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기 때문입니다.

"촛불을 밝히어 어떤 곳에 놓겠느냐?"하고 스승이 물었습니다. 제자가 "어두운 곳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답니다.

이제 가슴을 열어 어둠에 싸인 세상을 밝히십시요.



[2015년 11월 18일]

Monday, November 16, 2015

첫 단추

[2015년 11월 8일 일요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 12,41-44)


'헐... 예수님이 지금 날더러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인건가?'

주일날 복음 말씀을 듣다가 이렇게 뜨끔했던 적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얼마전 저희 큰 아이가, 얼마전에 취직된 저보다도 더 먼저 돈을 벌어 왔습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실시하는 어떤 실험에 실험용 쥐로 참여해서 15불 받아왔네요. 속으로 잘 됐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벌어온 돈이 정식 직장에서의 첫 월급만큼 액수가 커지게 되면, 아무래도 10퍼센트를 떼어내기가 훨씬 힘들어질 것 같아서 였습니다.

예전에 차동엽 신부님의 "밭에 묻힌 보물"이란 책을 읽으면서 "봉헌" 이란 부분에 나왔던, 록펠러의 이야기가 늘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존 록펠러(1839-1937)는 1900년대 초 미국은 물론 지구촌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로 통하였던 인물입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록펠러에게 물었습니다.
“회장님은 교회에 내는 헌금이 대단할 것 같은데 그게 도대체 얼마나 되지요?”
록펠러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일주일 동안 일을 해서 처음으로 번 돈이 1달러 50센트였습니다. 나는 매우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그 돈을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내 눈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얘야, 이것의 십분의 일인 1센트를 하느님께 바치렴. 그러면 너도 나도 흐뭇해질 거야.' 나는 난생 처음으로 번 돈의 십분의 일을 주님께 드렸고, 그 후 한번도 십분의 일을 봉헌하는 것을 거른 적이 없습니다. 만일 그때 어머니께서 십일조 정신을 새겨 주지 않으셨다면 처음으로 백만 달러를 벌었을 때 십분의 일을 주님께 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도 록펠러의 어머니같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올 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리고, 그 금액이 너무 크지 않기도 바라고 있던 중에, 마침 아이가 15불을 벌어왔습니다.

한사코 저 가지라고 건네주는 15불을 받아넣으면서 이것의 10퍼센트는 하느님께 봉헌하자 하였습니다. 주일 전날, 봉헌 봉투에 1불 50전을 넣어두고 주일날 아침에, 네가 번 돈의 10퍼센트를 봉헌하는 첫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어른이 다 되었구나, 대견하다는 이야기도 함께 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이 아이가 앞으로 돈을 벌때마다 10퍼센트를 기꺼운 마음으로 떼어낼 수 있도록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질 수 있게 자리를 잘 잡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지요.

나도 록펠러의 어머니같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흡족함을 느꼈던 것도 잠깐, 사실상 자기 몸에 줄 긋고 수박행세 하고 싶어하는 호박이 바로 저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한달쯤 전에 헤드 헌터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파트 타임으로 들쭉 날쭉 여기저기 비는 School Nurse의 자리를 메꾸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채용 과정이 진행될 때만 해도 가슴이 잔뜩 부풀어 있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지라 돈에 대한 갈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이제 17년만에 첨으로 제 손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요.

돈을 벌면 뭘할까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십일조말고 이십일조를 할까? 아니 성당에는 10퍼센트만 하고, 10퍼센트는 청년 희망 펀드에 내고, 10퍼센트는 아버지께 부쳐드리고, 지속적으로 펑크나는 가계에도 조금 보태고 나서, 취직하면 한턱 내겠다고 약속했던 친구들에게도 한방 멋지게 쏘고, 통신 공부 과정들의 등록금도 직접 내고, 녹음용 마이크도 사고 책도 사고 먹고 싶던 버블티도 실컷 사먹고, 이제 엄마가 돈버니까 우리 딸이 소원하던 한국 여행 비용도 마련할 수 있게 됐어 하며 '드루와' 하면서 잔뜩 벼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지난 2주 동안 일해서 벌은 돈이 200불 40전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벌어들인 돈을 전부 다 쏟아 붇는다 해도 매달 적자를 내는 살림을 메꾸는 것조차 어려워 보이더군요. RN보다는 LVN들이 주로 하는 School Nurse이다 보니 그에 맞춰 수당이 책정된 데다가 그나마도 헤드 헌터에서 이것저것 비용떼고 남는 것을 받다보니 정말 한숨이 나오는 액수의 수당이었는데, 게다가 일도 고정적이지 않고 갑자기 아파서 출근할 수 없거나 휴가가는 사람을 대체하는 일이어서 일거리 자체도 많지가 않았습니다.

차라리 2000불을 벌었으면 이것저것 떼어내도 가계에 보탬이라도 될 텐데 그것도 아니고, 차라리 20불을 벌었으면 그냥 없는 셈치고 10불은 봉헌하고 10불은 버블티라도 맘 편하게 사먹었을텐데, 뭘 한다하더라도 생색이 나지 않는 참으로 애매한 액수였습니다. 아버지한테 20불만 부쳐드리기도 쫌 그렇고, 친구들한테는 그냥 슬쩍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국행 비행기표조차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딸내미의 실망하는 얼굴이 눈에 보이는 듯 싶더군요. 그러다가 결국엔, 십일조도 다음에 돈 좀 많이 벌면 그때 할까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했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때는 오히려 마음도 편하고 뭐든 생기면 남들에게 다 줄 것만 같던 마음이, 쥐꼬리만큼 뭔가가 생기고 나니 그전보다도 더 목이 마르고 더 부족한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17년만에 처음으로 일해서 번 쥐꼬리만한 첫 월급을 받아든 그 주일날의 복음 말씀이 바로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라니요...

복음과 강론을 듣는 내내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실망스런 제 자신의 모습도 그렇고 제게 실망하셨을 하느님 아버지께도 죄송했지만, 아이는 부모의 뒤태를 보면서 자란다고 했던가요? 그 무엇보다도, 아이 앞에서는 네 것의 가장 좋은 몫 10 퍼센트를 아버지께 아낌없이 드려라 하고 말해 놓고는, 뒤돌아서서는 아이에게 말한대로 행하지 못하는 엄마 밑에서 크는 아이가 과연 무엇을 배울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동안, 적어도 십일조만큼은 반드시 하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근데, 그럼 세전으로 계산해야 하나? 세후로 계산해야 하나? 내년 4월에 세금 보고를 하게 되면 받은 돈을 토해내야 할 확률도 있는데, 그럼 그것도 감안해서 미리 떼어놓고 나머지로 계산해야 하나??? 주일헌금으로 내야 하나? 교무금으로 내야 하나? 생각할 수록 골치가 아파왔습니다.

그래서, 그냥 무조건 단순하게 가자 결심하였습니다. 내가 가진 돈의 10퍼센트를 하느님께 기쁘게 바치자...

그날 밤, 지갑에서 20불을 꺼내어 별도의 봉투에 넣어 놓았습니다.


[2015년 11월 15일 일요일]

따로 봉투에 담아 놓았던 20불짜리 지폐를 꺼내 봉헌 봉투에 옮겨 담았습니다. 미사가 진행되고 봉헌 순서가 되어 옷 매무새를 다듬으며 일어서 줄을 따라 봉헌 바구니 앞으로 나아갑니다. 무엇보다도 첫 단추가 반듯하게 제자리에 끼워졌는지 제 모습을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 봅니다.

Tuesday, October 20, 2015

결산 보고서

미주평화신문 2015년 9월 30일자



Wednesday, October 7, 2015

빛과 평화

오늘 아침에 기도를 마치고 방의 불을 켜는 순간, 불이 너무 밝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변이 어두우면 제 마음도 어두워지는 것 같아서, 아무리 전깃세가 아까와도 온 집안 구석구석 불을 환하게 켜 놓지 않으면 안 되는 저였는데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제는, 어두우면 어두운대로 밝으면 밝은대로, 시끄러우면 시끄러운대로 시간이 멎은 것처럼 고요하면 고요한대로, 그 안에 머무를 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는 제 마음 속에 빛과 평화가 자리하기 시작했나 봅니다.

오늘은 어둠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지 않아, 전등불을 다시 끕니다.


2015년 10월 5일

Saturday, October 3, 2015

견진반을 시작하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철수에게,


철수가 이제 견진반에 들어갔구나. 그동안 주일학교에 꾸준히 다니면서 여기까지 와 주어서 엄마는 정말로 많이 기쁘단다. 오늘은 견진반을 시작한 철수에게 엄마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편지를 썼어.

세례나 첫 영성체와는 달리, 견진을 받을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사람은 바로 너란 얘기를 하고 싶었단다.

견진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철수도 많이 들었을 거라 생각해. 그건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한 성사이지. 견진은 신앙 생활에 있어서 성인식과 같은 통과 의례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이제는 더 이상 성경이나 교리 공부를 할 필요가 없는 졸업식 같은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그렇지 않아. 오히려 견진이란, 한층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로 결심하는 것이라고 보면 맞다고 생각해.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내심(patience)도 필요하고, 열정(passion)도 필요하고, 또한 연습(practice)도 필요하단다. 쉬운 일이 아니지.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어. 견진 성사를 통해서 그에 필요한 은총을 모두 다 받게 될테니까... 지금은, 진심으로 하느님에 대해서 더 잘 알고 싶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고 싶은지를 네 자신에게 계속해서 질문해 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년 5월 견진 성사가 있을 때쯤 견진을 받고 싶은지 아닌지를 결정하면 돼.

그때까지 확신이 서지 않아도 괜챦아. 때가 아직 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네가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는 용기를 내어주기를 바래. 단순히 네 주변의 친구들이 모두 견진을 받는다고 해서, 확신이 없는데도 덩달아 받지는 않기를 엄마는 바란단다. 견진을 받지 않는 것은 괜챦아. 그치만 용기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견진을 받는다는 것은 진짜 신앙인으로서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보면 돼. 엄마도 2012년에 견진을 받으면서 신앙이 한층 더 깊어졌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단다. 하지만, 그 의식이 그렇게 해 주는 게 아니라, 네가 마음을 열고 부지런히 하느님을 찾아야만 가능한 거지. 그러면, 조만간 너도 그분을 만나게 될 거야.

엄마는 그동안, 철수가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와 그것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하느님께서 철수에게 견진이란 기회를 주신 것 같아. 그 초대에 철수가 "네!"라고 대답하고, 남들이 말하는, 그분만이 줄 수 있는 행복과 기쁨과 평화가 무엇인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되었으면 엄마는 정말 좋겠다. 그건 정말 너무나도 멋진 일이거든!


사랑한다, 철수야!
엄마가



2015년 9월 27일

Monday, September 28, 2015

2015년 한가위날에...

사진 출처: http://www.canterburytimes.co.uk/Solar-eclipse-2015-Skies-tobear-witness-supermoon/story-26184184-detail/story.html



오늘은 추석입니다. 개 보름 쇠듯, 송편 한 조각 먹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루가 갔네요. 어쩌다보니 오랜만에 뜬다는 Supermoon도 보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전 어려서부터 명절을 싫어했습니다. 명절만 되면 엄마 아빠가 크게 말다툼을 하시곤 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명절 같은 것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엄마 아빠 밑을 떠났어도 여전히 명절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미국에 나와 있었던 관계로 차례나 제사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되었었지만, 때맞춰 전화를 드리고 명절 선물 드리는 것도 제게는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나이 탓일까요? 아니면 명절 기분 하나나지 않는 이 이국땅에 맞는 고향의 명절이라 그럴까요? 이번 추석엔 Supermoon만한 구멍이 하나 뻥 뚤린 것처럼 가슴이 그냥 휑하네요. 이것이 이제 저의 명절 증후군이라도 된 걸까요?

어제, 1분이 채 안되는 통화중에도 유난히도 저를 반기시던 아빠의 목소리에서. 아빠의 가슴 속에 자리한 Supermoon도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인간에게 있어서 혼자라는 것은 그 얼마나 커다란 두려움인지...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이 하나 없다는 것이 그 얼마나 슬프게 다가오는지...

그러나, 이 철저한 외로움의 과정을 통해... 그 외로움을 이겨내고 홀로 서고자 노력하는 이 시간을 통해... 보다 큰 사랑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겠죠. 참된 사랑이란,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순간 제가 이렇게 찾을 수 있는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로움타는 제 자신을 존재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를 사랑하시려고 제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심을...



2015년 9월 27일

Thursday, September 24, 2015

딸아, 네 희망이 너를 구원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드디어 미국에 오셨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이 넒디넓은 미국땅을 가로질러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서쪽 끝에 살고 있다는 핑계로 동쪽 끝에 계시는 교황님 뵙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기도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참례했던 동네 성당의 미사 중에 신자들의 기도때에도 그분이 안전하게 방미 일정을 마치시길 바란다는 기도가 3번이나 각기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애정어린 관심을 가지고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사를 다녀와서 KBS 9시 뉴스를 보다가, 교황님의 방미 첫날의 행보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교황님의 방미가 단지 미국만의 관심사는 아닌 것 같군요. 교황님의 방미에 대한 한국의 관심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의 미국 방문 첫날 일정 중에, 오바마 대통령도 만나고 백악관에서 방문 소감을 발표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아마도 다른 분들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삼엄한 경비를 뚫고 교황님 사절의 행진 대열을 향해 뛰어나온 5살짜리 소녀와의 만남의 장면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New York Post. http://nypost.com/2015/09/24/pope-francis-beckons-5-year-old-girl-who-slipped-past-barricade/)

도대체 그 경비를 어떻게 뚫고 길 한복판으로 나왔는지, 어쩄든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소녀를 저지하는 경찰관 너머로 그 소녀를 부르는 교황님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군요. 물론, 교황님의 이런 모습을 한두번 보아온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그 모습에서, 병든 자, 가진 것 없는 자, 힘 없는 자들에게 먼저 다가가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작고 보잘것 없는 소녀에게 제 자신이 투사되면서, 덩치도 크고 힘센 무장 경찰관에게 쫓겨 들어가는 소녀를 부르며 손 내미시는 그 모습이 마치 저를 부르시는 예수님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제 영혼이 이미 나은 것 같이 느낌이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교황님의 그런 모습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한동안 묻어두고 지냈던 가슴속의 어떤 것이 깨어나 꿈틀거리게 만드는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교황이 되신지 채 일년도 되지 않아 TIME지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 소녀는 불법 이민자인 자신의 부모가 추방되지 않도록 대통령께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이 담긴 편지와 노란색 티셔츠를 교황님께 전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것은, 지난해 광화문 광장 사열 중에 몸소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가족들을 안아 주시던 것이나 성 베드로 광장에서의 일반 알현때 어린 아이를 안아 이마에 입을 맞춰 주시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아이는 어마어마한 용기를 내어 수많은 군중과 삼엄한 경비를 뚫고 자신의 바램을 전하기 위해 뛰어 나간 것이니까요.

   
      
(사진 출처: abc NEWS. http://abcnews.go.com/US/meet-young-girl-blessed-pope-francis/story?id=33981305)

우리 아이들이 5살때는 과연 무엇을 했었던가 하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무엇이 그 작은 아이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아이가 전달했다는 편지에도 언급되었듯이, 미국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차별에 대한 슬픔과 가족이 흩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겠죠. 그 슬픔과 두려움이 얼마나 컸으면 바리케이드를 뚫고 무장 경찰들을 사이를 비집고, 뉴스거리가 되었을 정도로 삼엄했던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대 테러 보안 태세를 뚫고, 한마디로 "목숨을 걸고" 뛰쳐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숨쉬고 먹고 움직이고 있지만,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상태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 소녀 (아니면 그 부모님)도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 있어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유학생 와이프로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 불법 취업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적발되었을때 추방의 위험 때문에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때도 많이 힘들었지만 일하지 않아도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었던 걸 보면, 어쩌면 그 소녀 보다는 훨씬 배부른 상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하지 않으면 가족이 굶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소녀의 부모처럼 추방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해야 했을 겁니다. 그렇게 약점이 있다 보니, 불법 체류자들은 당연히 노동법에 정해진 기준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일을 해도 불평조차 할 수가 없고, 그들을 고용하는 고용주들이 그 점을 악용하여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학대를 하는 경우도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 당하며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추방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부모님을 보고 있는 소녀도 두렵고 많이 슬펐을 것이고, 그 두려움과 슬픔이,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러한 부모에 대한 사랑이 그 작은 아이로 하여금 "목숨을 걸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그 소녀의 용기로 인하여 그 부모님은 이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이민국에서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 추방시킬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대통령 특사를 통해 지금 당장이라도 혹은 다음번 불법 체류자 구제시에 구제 대상이 되어 합법적인 미국 시민으로 살 수 있게 되겠지요. 지금 분위기 같아서는 후자의 확률이 더 높아보이긴 하지마는, 전자가 되더라도 저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본국을 떠나 남의 나라에 와서 숨어지내며 살아온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음지에 숨어서 두려움에 떨며 인간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 과연 더 나은 것인가 역시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며, "내가 이 나라와서 고생한 것 만큼 고국에서 일했더라면 정말 크게 성공했을 것"임을 주장하는 이민 1세대들도 그리 드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되든지, 그 부모님과 자신의 사정을 음지에서 양지로 바꾼 그 작은 소녀의 용기에 기립 박수를 보냅니다.

그 소녀가 쓴 편지의 결론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러한 아픔이 평화가 되리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 소녀보다는 치유의 힘을 가진 교황님의 손짓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블로그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블로그에 삽입하고 싶은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다가 우연히 그 소녀가 썼다는 그 편지의 내용을 접하게 되면서 더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차동엽 신부님이 말씀하시던 소위 "절망의 학습"이 채 이루어지기 전인 어린 나이여서 그랬을까요? 저는 그 소녀가, 미국 수도의 대 테러 대비 태세를 뚫고 뛰쳐나온 것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절망이 아닌,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음에서였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가 품었던 희망이 곧 현실이 되지 않을까하는 또 다른 희망으로, 마치 바이러스처럼 제 가슴 속으로 번져오는 것 같군요.

그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자락을 잡고는 열두해 동안 하혈하던 병이 나은 어느 여인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르 5,34ㄴ). 그 여인이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혹시 그 소녀에게 이런 말씀을 하고 싶진 않으실까요?

“딸아, 네 희망이 너를 구원하였다"

Monday, September 21, 2015

나무

옛날 옛날에 커다란 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배고플땐 가끔씩 그 열매를 따 먹기도 하였고,
비가 올땐 펼쳐진 가지 밑에서 비를 긋기도 하였고,
지칠때는 그 나무에 기대어 한참을 앉아 있곤 하였지요.

그렇게 나무는
제가 필요할 때 언제고 찾아올 수 있도록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말없이 서 있기만 하는 나무도
다리가 아프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땅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쉬고 싶진 않을까?
나무도 가끔씩은 무언가 내게 말을 하고 싶진 않을까?
나무도 가끔씩은 가지를 접고 새처럼 훨훨 날갯짓하여 날아오르고 싶진 않을까?

나무야...
오늘은 내가 등 빌려줄께. 내 등에 기대고 앉아 잠시 쉬어 보지 않으련?

Saturday, September 12, 2015

친구에게...

"대학 선후배 분들께서 위로해 주신 덕분에
희경이의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희경이는 13년의 긴 투병생활을 한 끝에 고통없는 세상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용기와 의지, 사랑과 신앙심을 보여 주고 떠났습니다.

모두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기를 희망하는데,
너무 짧게 살았고, 너무 길게 투병생활을 하였습니다.

긴 투병생활 동안 옆에서 지켜보는게 힘들었지만,
인연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희경이를 위해서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많은 친구분들,
자신의 일인 듯 찾아와 봉사해 주시는 분들,
가족보다 더 집사람을 잘 돌봐 주었던 간병인 분들...
세상에는 좋은 인연과 사람들이 많다는걸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여러분과의 인연을 앞으로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희경이 대신 참석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대소사도 꼭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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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쯤 전이었을까요? 저와 동갑나기 대학 동창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위의 이 글은, 그 남편분이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제 친구의 대학 동창,선후배들께 드린 감사의 편지를 허락을 받아 옮겨 온 것입니다.

그동안 대학 동창들과는 거의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고 있어서, 그 친구가 그렇게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었습니다. 아주 최근 들어서야 그 친구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아서 부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저보다 열살 많은, 아직도 아이가 저희 큰아이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대로 떠나보내기엔 아직 너무 많은 미련이 남는 어느 형제님의 장례 미사에 다녀온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날, 장례 미사는 온통 눈물 바다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도 안 걸린다는 지독한 여름 콧물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거릴 수 있음이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눈물이 아주 많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죽음이 그렇게 슬프게만 느껴지지는 않네요. 단지, 잠시 동안의 이별의 아쉬움이 있을 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10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50년 후가 될지(솔직히 이렇게 오래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니면 내일이 될지 한시간 후가 될지, 아니면 이글을 마무리도 짓기 전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저도 어차피 죽을 목숨이고, 이 세상보다 훨씬 더 좋은 곳에서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임을 믿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그렇게 많이 슬프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죽음이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죽더라도 제 가족이나 친구들 또한 너무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삶 속에서 늘 죽음을 대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왔지만, 자칫 섣부르게 했다가는 그들에게 괜한 충격을 주거나 걱정거리를 심어주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동갑내기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해야 겠다는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지아나: "영희야, 한국에 있는 엄마 친구가 죽었대. 엄마랑 나이가 똑같은 친구야. 요즘 많이들 오래 사는데, 그 친구는 정말 일찍 간 것 같아. 영희는 엄마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아?"

영희: "슬플거야."

(이 아이는 '죽음'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너무 아파서 오히려 무감각해지려는 노력이었을까요? 아니면 정말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고 있는 걸까요?

솔직히 저는, 생각보다 덤덤한 아이의 반응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 아이에게 있어서는 제가 너무나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었었기 때문에, 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아이가 펄펄 뛰며 울고 불고 할까봐서 내심 걱정이 많았거든요. 아이가 많이 자란 걸까요?)

지아나: "맞아, 죽음은 슬픈거지. 엄마도 옛날에는 누가 죽으면 많이 슬퍼했었어. 근데 있쟎아, 인제 엄마는... 예전만큼 그렇게 슬프진 않아. 보고 싶을때 볼 수 없어서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우리는 천국에서 만날 거라는 걸 믿게 됐거든.

어차피 우리는 언젠가 다 죽을 거야. 엄마도 죽고 영희도 죽고 모든 사람은 다 죽을 거야. 단지 언제 죽을지를 모를 뿐이지. 그러니까 엄마가 죽더라도 영희가 너무 많이 슬퍼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내일이라도 죽을 수도 있는거야. 그래도 너무 많이 슬퍼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내일 죽는다면 쪼금 슬프겠지만 아주 많이 슬프지는 않을거야, 우리는 천국에서 곧 만날 거니까...

영희가 엄마보다는 오래 살았으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엄마보다 일찍 죽는다고 하더라도 엄마는 쪼금만 슬퍼하고, 그대신 영희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줄께. 영희가 얼른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이 말을 하다가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괜한 소리를 했나 싶기도 하고...)

"영희야, 연옥이란 거 들어봤지? 사람이 죽으면 연옥 상태에 있게 되고, 그 영혼이 천국에 가려면 기도가 많이 필요한데, 연옥 상태의 영혼은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할 수가 없대. 살아있는 사람들과 이미 천국에 있는 성인들이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한대. 엄마가 죽으면, 영희가 엄마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줄래?"

(그리고, 대사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저를 위해 한번만 전대사를 해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영희: "그래"

지아나: (혼자 속으로) '달밤에 왠 유언장???'

(이미 깜깜해진 늦은 저녁 시간에 차를 타고 가면서 나누었던 이야기였던지라, 아이의 반응을 목소리로 밖에는 짐작할 방법이 없었지만, 의외로, 아이가 거부감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지아나: "영희야, 엄마가 이런 얘기해서 혹시 무섭거나 그렇진 않아?"

영희: "아니"

지아나: (속으로) '휴우~~ '


그런 대화가 있고나서 열흘 쯤 지났을때, 그러니까 바로 어제, 그 친구의 남편이 감사 인사를 글로 전해왔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이틀전에 보았던 미주판 평화 신문 8월 30일자에 실린 <묵상시와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남편분이 보내오신 글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13년이란 세월 동안에 겪었을 "슬픔과 괴로움과 아픔"이 배어 있었고, 그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이 저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선물"인 "인생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마운 날들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 줍니다.



하루하루가 이 얼마나 고마운 날들입니까? 하루하루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날들입니까? 하루하루 이렇게 숨쉬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행복한 날들입니까?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따라, 대학 다닐때의 그 친구 모습이 생각납니다. 사순 동안 금식 한다고 "나 배고파..." 하던 그 목소리, 그 당시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던 제게는 마냥 신비롭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던 손가락의 그 묵주 반지...



친구야,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니? 
그동안 연락도 통 못하고 그렇게 아픈 줄도 전혀 모르고,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너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해.

우리 그동안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꼭 보자.
행복한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때까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께.


P.S.) 근데, 너 남편 하나는 참 잘 만난 것 같다, 얘!


2015년 9월 11일

Saturday, August 29, 2015

오랜만에...

그동안 블로그에 글을 한참이나 올리지 못했었네요. 굉장히 오랜만이죠.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여러분들의 기도와 사랑 덕분에, 지난 3월에 드디어 간호사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어영부영하다보니 시간이 벌써 이렇게 훌쩍 지나가 버렸네요.

사실 그동안, 글을 몇개 쓰긴 했는데 왜 그런지 모르게 블로그에 올리게 되지는 않더라구요. 너무 오랜만이어서 그랬을까요?

막상 블로그라는 것을 써보니 그렇게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와서 볼 수도 있는데 모든 속내를 드러내기도 어렵고, 가까이 있는 친구들이 보기에 글과 행동이 다르다고 생각지 않을까 하는 걱정아닌 걱정도 들고... 이런 얘기를 여기다 이렇게 해도 될까 싶은 생각에, "Publish" 버튼을 누를때마다 사실상 눈을 질끈 감고 누르곤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 버튼을 누르게 되는 것은 어쩐 이유였는지...

한동안 글을 올리지 않다가 갑자기 다시 글을 올리려니 그것도 쉽게 되지가 않더군요. 그래서 글을 몇개 쓰긴 했어도 그냥 저장만 해 두었었는데, 이렇게 글을 다시 올리게 된데에는 글을 쓰도록 용기를 얻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며칠전에 우연한 기회에, 글을 쓰고 싶어하는 친구를 하나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글쓰는 것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글을 쓰고 싶어하면서도, 여러가지 이유로 마음을 접으려 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그냥 쉽게 생각하고, 쓰고 싶을때 쓰고, 쓰고 싶은걸 부담없이 쓰면 되지...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친구에게 제 이 블로그 사이트를 알려주었습니다.

뭐 제가 여기에 끄적거리는 글이 대단히 좋은 글이어서 알려준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냥... 그 친구에게, 나같은 사람이 이렇게 허접한 글도 블로그에 올리고 있으니, 부담갖지 말고 글쓰고 싶을때 써보라는 용기가 되어 주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였지요.

그렇게 해서 블로그 사이트를 알려주고 나니, 스쳐지나가고 나면 사라져버릴 순간들을 모아 다시 글을 써봐야 겠다는 용기가 생기는 것 같더군요. 그 친구가 저를 알게 되어서 축복이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저 역시 그 친구를 통해 많은 축복을 받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용기를 얻어, 정말 오랜만에 몇자 적어 블로그에 올려봅니다. 그리고 저장만 해 두었던 글 하나도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올립니다. 앞으로는 좀 더 자주 글로 만나뵙도록 노력할께요.

이렇게 또다시 용기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Friday, May 8, 2015

기적

오늘은 작은 아이가 학교에 다녀오더니, 숙제가 없다며 좋아라 하고 춤을 추고 있더군요. 그동안 해 왔던 프로젝트, 자기 맡은 성인(聖人)에 대한 연구/발표가 내일인 줄 알고 있었기에 물었습니다.

지아나: "영희는 내일 마감인 프로젝트 다 했어?"

영희: "웅"

지아나: "영희가 맡은 성인은 마더 데레사야?"

오다가다 어깨 너머로 컴퓨터 스크린에 떠 있는 마더 데레사의 사진을 여러번 보았거든요.

영희: "웅"

지아나: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성인이 마더 데레사야. 엄마는 마더 데레사처럼 되고 싶어."

작은 아이가 가톨릭 사립 학교로 옮기고 나니, 교리 시험이라든지 이런 숙제 하는 모습도 보게 되고 이런 이야기도 하게 되는 군요.

영희: "그럼 엄마는 수녀님이 되어야지."

지아나: "엄마는 이미 아기도 낳았고 수녀님이 될 수는 없어. 그치만 마더 데레사 같이 수녀님이 '될' 수는 없어도 마더 데레사 같이 '할' 수는 있지."

영희: "그럼 엄마도 기적을 일으켜야지."

지아나: "글쎄... 엄마가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기적을 체험한 적은 있어."

영희: "진짜? 얘기해 줘."

그동안 성의없이 대꾸하던 아이의 눈빛이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순간, 괜히 얘기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게는 기적과 같이 느껴졌던 일들을 남들에게 얘기하면서, 별거아닌 거 갖고 흥분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마는 경험이 몇번 있었기에, 언젠가부터는 그런 얘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아나: "그냥... 지난 주일날 앤드류 신부님이 해 주신 얘기같은... 그냥 그런 거야.... 별거 아니야..."

지난 주일날은 성소 주일이었는데, 그때 미사를 집전해 주기 위해 오셨던 베트남 신부님이 당신이 성소 받았을 때의 경험을 얘기해 주셨거든요. 그냥 들으면 참 싱겁게도 신부님 되셨네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하느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된 표징을 보게 되는 그 순간의 놀라움은 기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틴 루터 킹이 자신의 기도에 대한 표징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미국은 아직도 백인과 흑인이 같은 자리에 앉아 식사하지 않는 나라였을지도 모릅니다.

영희: "얘기해 줘."

막상 하려니 별로 생각나는 것도 없고, 생각을 해 보니 두서없이 이것저것 생각 나기도 하고...

지아나: "글쎄... 그러고보니 몇번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영희: "하나만 해 줘."

눈치를 보아하니, 뭐라도 하나 건지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을 기세더군요. 그래서 고민 끝에, 지난 2012년 성가 경연 대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지아나: "성가 대회 시작 전에 우리 구역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운 되었었어. 그전날 총연습 할때 너무 형편없어서 다들 아주 많이 실망했었거든. 그래서, 대회하던 날, 우리 차례가 되어 백 스테이지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에 기도를 했지. 잘 부르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냥 한마음으로 노래하게 해 달라고... 한 목소리로 주님을 찬양하는 자리가 되게 해 달라고... 그러고 나서, 우리가 무대에 서게 되었을때, 일년전 지휘자 님이 했던 것처럼, 입장하는 문 앞에 서서 한 사람 한 사람 순서대로 굳게 악수를 하고, 내가 맨 마지막으로 입장을 했어.

반주가 나오고 노래가 시작되는데, 그동안 그렇게 많은 연습을 해 왔었지만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 했던 우렁차고 커다란 목소리가 나오는 거야. 첫소절이 시작되는데 너무 깜짝 놀랐어. 노래를 귀기울여 들으면서 지휘를 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우리가 부르는 것 같지가 않은 거야. 누군가 우리랑 같이 부르는 것 같았어.

그런데, 그때 눈앞이 약간 흐려지면서 사람들이 약간 뿌옇게 보이고 사람들이 마치 오리발의 물갈퀴처럼 붙어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거야. 마치 하나로 다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때 알았어. 하느님이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기도했던 대로 우리가 한마음 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고 나니 갑자기 가슴이 벅차서 터질 것 같았고 얼굴이 벌개져서 마치 팔이 빠질 것처럼 휘둘러댔었지."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니, 다시 그때의 상황이 떠오르면서 다시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지아나: "그런데, 진짜 신기한 게 뭔 줄 아니? 그때 그 신기한 경험을 나만 한 게 아니었어. 어떤 아저씨는 연습도 별로 안하고 노래도 잘 몰라서 그냥 립싱크나 해야 겠다하고 나왔는데, 입을 벌리니까 갑자기 큰소리로 노래가 나오더라는 거야. 그 아저씨도 그때 알았대. 하느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그 아저씨는 엉엉 울면서 노래를 했다고 그래. 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노래 소리를 들으면서 소름이 끼쳤다고 그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우리가 1등할 거라는 걸 알았다고 그랬지. 반주자는 내 얼굴을 보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고 하고, 별다른 느낌이 없던 사람들도 그때 목소리가 평소에 비해서 아주 크게 잘 나왔다고들 했었어. 그때 각자 경험했던 걸 갖고 이메일이 한참동안 오고 갔었지."

영희: "그래?"

딸내미 눈치를 보니, 자기도 그 날 관중석에서 다 보고 있었던 일이었는데,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어차피 '우와~~' 하는 반응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눈알을 굴리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며 이 말이 나왔습니다.

지아나: "God is great. God is good."

그랬더니, 딸아이도 눈알을 굴리던 것을 멈추고는 시익 웃더군요.

지아나: "어? 늦었다. 빨리 테니스 하러 가야지!"

시간이 많이 지난줄도 모르고 그러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차에 올라타서 열심히 가고 있는데 제목도 모르는 영어 성가를 흥얼거리고 있길래, 저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라서 함께 소리 높여 부르며 테니스 장까지 갔습니다. 아마도 오늘 학교 미사중에 들었던 노래였지 싶네요.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자꾸 웃음이 나더군요. 글쎄요... 딸아이와 이런 대화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식탁앞에 앉았는데, 눈 앞에 엎어져 있는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에 들어온 것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책의 맨 뒷면에 실려있던 기도문이었습니다. 아까 낮까지만 해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기도문인데, 갑자기 '마더 데레사'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차근차근 읽어보니, '마더 데레사가 매일 바친 뉴만 추기경이 쓴 기도'라고 되어 있네요. 글쎄... '뉴만 추기경이 쓴 기도'면 충분할텐데, 왜 여기에 '마더 데레사가 매일 바친' 이란 문구를 넣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원채 유명하신 분이니 그랬겠지마는, 그순간 제게는 '너 아까 마더 데레사처럼 '할' 수는 있다고 했지? 마더 데레사가 이 기도를 매일 바쳤던 것처럼 너도 한번 해 봐' 하고 누군가 찔러주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오늘 자기전에 이 기도를 바쳤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제부터는 저도 마더 데레사처럼 이 기도를 매일같이 바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그런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아이 숙제 챙겨주다가 우연히 흘러간 대화에 이어 결국, 매일 같이 해야 할 기도가 생기게 되었네요.

제가 이걸 기적이라고 부른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웃겠죠?





2015년 4월 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