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September 12, 2015

친구에게...

"대학 선후배 분들께서 위로해 주신 덕분에
희경이의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희경이는 13년의 긴 투병생활을 한 끝에 고통없는 세상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용기와 의지, 사랑과 신앙심을 보여 주고 떠났습니다.

모두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기를 희망하는데,
너무 짧게 살았고, 너무 길게 투병생활을 하였습니다.

긴 투병생활 동안 옆에서 지켜보는게 힘들었지만,
인연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희경이를 위해서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많은 친구분들,
자신의 일인 듯 찾아와 봉사해 주시는 분들,
가족보다 더 집사람을 잘 돌봐 주었던 간병인 분들...
세상에는 좋은 인연과 사람들이 많다는걸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여러분과의 인연을 앞으로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희경이 대신 참석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대소사도 꼭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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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쯤 전이었을까요? 저와 동갑나기 대학 동창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위의 이 글은, 그 남편분이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제 친구의 대학 동창,선후배들께 드린 감사의 편지를 허락을 받아 옮겨 온 것입니다.

그동안 대학 동창들과는 거의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고 있어서, 그 친구가 그렇게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었습니다. 아주 최근 들어서야 그 친구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아서 부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저보다 열살 많은, 아직도 아이가 저희 큰아이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대로 떠나보내기엔 아직 너무 많은 미련이 남는 어느 형제님의 장례 미사에 다녀온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날, 장례 미사는 온통 눈물 바다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도 안 걸린다는 지독한 여름 콧물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거릴 수 있음이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눈물이 아주 많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죽음이 그렇게 슬프게만 느껴지지는 않네요. 단지, 잠시 동안의 이별의 아쉬움이 있을 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10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50년 후가 될지(솔직히 이렇게 오래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니면 내일이 될지 한시간 후가 될지, 아니면 이글을 마무리도 짓기 전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저도 어차피 죽을 목숨이고, 이 세상보다 훨씬 더 좋은 곳에서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임을 믿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그렇게 많이 슬프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죽음이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죽더라도 제 가족이나 친구들 또한 너무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삶 속에서 늘 죽음을 대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왔지만, 자칫 섣부르게 했다가는 그들에게 괜한 충격을 주거나 걱정거리를 심어주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동갑내기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해야 겠다는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지아나: "영희야, 한국에 있는 엄마 친구가 죽었대. 엄마랑 나이가 똑같은 친구야. 요즘 많이들 오래 사는데, 그 친구는 정말 일찍 간 것 같아. 영희는 엄마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아?"

영희: "슬플거야."

(이 아이는 '죽음'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너무 아파서 오히려 무감각해지려는 노력이었을까요? 아니면 정말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고 있는 걸까요?

솔직히 저는, 생각보다 덤덤한 아이의 반응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 아이에게 있어서는 제가 너무나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었었기 때문에, 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아이가 펄펄 뛰며 울고 불고 할까봐서 내심 걱정이 많았거든요. 아이가 많이 자란 걸까요?)

지아나: "맞아, 죽음은 슬픈거지. 엄마도 옛날에는 누가 죽으면 많이 슬퍼했었어. 근데 있쟎아, 인제 엄마는... 예전만큼 그렇게 슬프진 않아. 보고 싶을때 볼 수 없어서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우리는 천국에서 만날 거라는 걸 믿게 됐거든.

어차피 우리는 언젠가 다 죽을 거야. 엄마도 죽고 영희도 죽고 모든 사람은 다 죽을 거야. 단지 언제 죽을지를 모를 뿐이지. 그러니까 엄마가 죽더라도 영희가 너무 많이 슬퍼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내일이라도 죽을 수도 있는거야. 그래도 너무 많이 슬퍼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내일 죽는다면 쪼금 슬프겠지만 아주 많이 슬프지는 않을거야, 우리는 천국에서 곧 만날 거니까...

영희가 엄마보다는 오래 살았으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엄마보다 일찍 죽는다고 하더라도 엄마는 쪼금만 슬퍼하고, 그대신 영희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줄께. 영희가 얼른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이 말을 하다가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괜한 소리를 했나 싶기도 하고...)

"영희야, 연옥이란 거 들어봤지? 사람이 죽으면 연옥 상태에 있게 되고, 그 영혼이 천국에 가려면 기도가 많이 필요한데, 연옥 상태의 영혼은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할 수가 없대. 살아있는 사람들과 이미 천국에 있는 성인들이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한대. 엄마가 죽으면, 영희가 엄마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줄래?"

(그리고, 대사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저를 위해 한번만 전대사를 해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영희: "그래"

지아나: (혼자 속으로) '달밤에 왠 유언장???'

(이미 깜깜해진 늦은 저녁 시간에 차를 타고 가면서 나누었던 이야기였던지라, 아이의 반응을 목소리로 밖에는 짐작할 방법이 없었지만, 의외로, 아이가 거부감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지아나: "영희야, 엄마가 이런 얘기해서 혹시 무섭거나 그렇진 않아?"

영희: "아니"

지아나: (속으로) '휴우~~ '


그런 대화가 있고나서 열흘 쯤 지났을때, 그러니까 바로 어제, 그 친구의 남편이 감사 인사를 글로 전해왔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이틀전에 보았던 미주판 평화 신문 8월 30일자에 실린 <묵상시와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남편분이 보내오신 글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13년이란 세월 동안에 겪었을 "슬픔과 괴로움과 아픔"이 배어 있었고, 그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이 저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선물"인 "인생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마운 날들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 줍니다.



하루하루가 이 얼마나 고마운 날들입니까? 하루하루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날들입니까? 하루하루 이렇게 숨쉬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행복한 날들입니까?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따라, 대학 다닐때의 그 친구 모습이 생각납니다. 사순 동안 금식 한다고 "나 배고파..." 하던 그 목소리, 그 당시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던 제게는 마냥 신비롭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던 손가락의 그 묵주 반지...



친구야,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니? 
그동안 연락도 통 못하고 그렇게 아픈 줄도 전혀 모르고,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너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해.

우리 그동안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꼭 보자.
행복한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때까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께.


P.S.) 근데, 너 남편 하나는 참 잘 만난 것 같다, 얘!


2015년 9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