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아나: "영희는 내일 마감인 프로젝트 다 했어?"
영희: "웅"
지아나: "영희가 맡은 성인은 마더 데레사야?"
오다가다 어깨 너머로 컴퓨터 스크린에 떠 있는 마더 데레사의 사진을 여러번 보았거든요.
영희: "웅"
지아나: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성인이 마더 데레사야. 엄마는 마더 데레사처럼 되고 싶어."
작은 아이가 가톨릭 사립 학교로 옮기고 나니, 교리 시험이라든지 이런 숙제 하는 모습도 보게 되고 이런 이야기도 하게 되는 군요.
영희: "그럼 엄마는 수녀님이 되어야지."
지아나: "엄마는 이미 아기도 낳았고 수녀님이 될 수는 없어. 그치만 마더 데레사 같이 수녀님이 '될' 수는 없어도 마더 데레사 같이 '할' 수는 있지."
영희: "그럼 엄마도 기적을 일으켜야지."
지아나: "글쎄... 엄마가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기적을 체험한 적은 있어."
영희: "진짜? 얘기해 줘."
그동안 성의없이 대꾸하던 아이의 눈빛이 갑자기 달라졌습니다.
순간, 괜히 얘기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게는 기적과 같이 느껴졌던 일들을 남들에게 얘기하면서, 별거아닌 거 갖고 흥분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마는 경험이 몇번 있었기에, 언젠가부터는 그런 얘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아나: "그냥... 지난 주일날 앤드류 신부님이 해 주신 얘기같은... 그냥 그런 거야.... 별거 아니야..."
지난 주일날은 성소 주일이었는데, 그때 미사를 집전해 주기 위해 오셨던 베트남 신부님이 당신이 성소 받았을 때의 경험을 얘기해 주셨거든요. 그냥 들으면 참 싱겁게도 신부님 되셨네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하느님이 자신의 기도에 응답된 표징을 보게 되는 그 순간의 놀라움은 기적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마틴 루터 킹이 자신의 기도에 대한 표징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미국은 아직도 백인과 흑인이 같은 자리에 앉아 식사하지 않는 나라였을지도 모릅니다.
영희: "얘기해 줘."
막상 하려니 별로 생각나는 것도 없고, 생각을 해 보니 두서없이 이것저것 생각 나기도 하고...
지아나: "글쎄... 그러고보니 몇번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영희: "하나만 해 줘."
눈치를 보아하니, 뭐라도 하나 건지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을 기세더군요. 그래서 고민 끝에, 지난 2012년 성가 경연 대회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지아나: "성가 대회 시작 전에 우리 구역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운 되었었어. 그전날 총연습 할때 너무 형편없어서 다들 아주 많이 실망했었거든. 그래서, 대회하던 날, 우리 차례가 되어 백 스테이지에서 대기하고 있는 중에 기도를 했지. 잘 부르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냥 한마음으로 노래하게 해 달라고... 한 목소리로 주님을 찬양하는 자리가 되게 해 달라고... 그러고 나서, 우리가 무대에 서게 되었을때, 일년전 지휘자 님이 했던 것처럼, 입장하는 문 앞에 서서 한 사람 한 사람 순서대로 굳게 악수를 하고, 내가 맨 마지막으로 입장을 했어.
반주가 나오고 노래가 시작되는데, 그동안 그렇게 많은 연습을 해 왔었지만 단 한번도 들어보지 못 했던 우렁차고 커다란 목소리가 나오는 거야. 첫소절이 시작되는데 너무 깜짝 놀랐어. 노래를 귀기울여 들으면서 지휘를 하는데, 아무리 들어도 우리가 부르는 것 같지가 않은 거야. 누군가 우리랑 같이 부르는 것 같았어.
그런데, 그때 눈앞이 약간 흐려지면서 사람들이 약간 뿌옇게 보이고 사람들이 마치 오리발의 물갈퀴처럼 붙어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거야. 마치 하나로 다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그때 알았어. 하느님이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기도했던 대로 우리가 한마음 한 목소리로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고 나니 갑자기 가슴이 벅차서 터질 것 같았고 얼굴이 벌개져서 마치 팔이 빠질 것처럼 휘둘러댔었지."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니, 다시 그때의 상황이 떠오르면서 다시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날 것 같았습니다.
지아나: "그런데, 진짜 신기한 게 뭔 줄 아니? 그때 그 신기한 경험을 나만 한 게 아니었어. 어떤 아저씨는 연습도 별로 안하고 노래도 잘 몰라서 그냥 립싱크나 해야 겠다하고 나왔는데, 입을 벌리니까 갑자기 큰소리로 노래가 나오더라는 거야. 그 아저씨도 그때 알았대. 하느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그때부터 그 아저씨는 엉엉 울면서 노래를 했다고 그래. 또 다른 사람들은 자신의 노래 소리를 들으면서 소름이 끼쳤다고 그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우리가 1등할 거라는 걸 알았다고 그랬지. 반주자는 내 얼굴을 보면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았다고 하고, 별다른 느낌이 없던 사람들도 그때 목소리가 평소에 비해서 아주 크게 잘 나왔다고들 했었어. 그때 각자 경험했던 걸 갖고 이메일이 한참동안 오고 갔었지."
영희: "그래?"
딸내미 눈치를 보니, 자기도 그 날 관중석에서 다 보고 있었던 일이었는데,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어차피 '우와~~' 하는 반응은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눈알을 굴리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며 이 말이 나왔습니다.
지아나: "God is great. God is good."
그랬더니, 딸아이도 눈알을 굴리던 것을 멈추고는 시익 웃더군요.
지아나: "어? 늦었다. 빨리 테니스 하러 가야지!"
시간이 많이 지난줄도 모르고 그러고 있었습니다. 서둘러 차에 올라타서 열심히 가고 있는데 제목도 모르는 영어 성가를 흥얼거리고 있길래, 저도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라서 함께 소리 높여 부르며 테니스 장까지 갔습니다. 아마도 오늘 학교 미사중에 들었던 노래였지 싶네요.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에 자꾸 웃음이 나더군요. 글쎄요... 딸아이와 이런 대화를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식탁앞에 앉았는데, 눈 앞에 엎어져 있는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에 들어온 것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책의 맨 뒷면에 실려있던 기도문이었습니다. 아까 낮까지만 해도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기도문인데, 갑자기 '마더 데레사'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오더군요.
차근차근 읽어보니, '마더 데레사가 매일 바친 뉴만 추기경이 쓴 기도'라고 되어 있네요. 글쎄... '뉴만 추기경이 쓴 기도'면 충분할텐데, 왜 여기에 '마더 데레사가 매일 바친' 이란 문구를 넣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원채 유명하신 분이니 그랬겠지마는, 그순간 제게는 '너 아까 마더 데레사처럼 '할' 수는 있다고 했지? 마더 데레사가 이 기도를 매일 바쳤던 것처럼 너도 한번 해 봐' 하고 누군가 찔러주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결국 오늘 자기전에 이 기도를 바쳤습니다. 아무리 봐도 이제부터는 저도 마더 데레사처럼 이 기도를 매일같이 바치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그런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아이 숙제 챙겨주다가 우연히 흘러간 대화에 이어 결국, 매일 같이 해야 할 기도가 생기게 되었네요.
제가 이걸 기적이라고 부른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웃겠죠?
2015년 4월 3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