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8일 일요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 12,41-44)
'헐... 예수님이 지금 날더러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인건가?'
주일날 복음 말씀을 듣다가 이렇게 뜨끔했던 적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얼마전 저희 큰 아이가, 얼마전에 취직된 저보다도 더 먼저 돈을 벌어 왔습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콜로라도 주립대학에서 실시하는 어떤 실험에 실험용 쥐로 참여해서 15불 받아왔네요. 속으로 잘 됐다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벌어온 돈이 정식 직장에서의 첫 월급만큼 액수가 커지게 되면, 아무래도 10퍼센트를 떼어내기가 훨씬 힘들어질 것 같아서 였습니다.
예전에 차동엽 신부님의 "밭에 묻힌 보물"이란 책을 읽으면서 "봉헌" 이란 부분에 나왔던, 록펠러의 이야기가 늘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존 록펠러(1839-1937)는 1900년대 초 미국은 물론 지구촌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자로 통하였던 인물입니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록펠러에게 물었습니다.
“회장님은 교회에 내는 헌금이 대단할 것 같은데 그게 도대체 얼마나 되지요?”
록펠러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 일주일 동안 일을 해서 처음으로 번 돈이 1달러 50센트였습니다. 나는 매우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그 돈을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그 때 어머니는 내 눈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얘야, 이것의 십분의 일인 1센트를 하느님께 바치렴. 그러면 너도 나도 흐뭇해질 거야.' 나는 난생 처음으로 번 돈의 십분의 일을 주님께 드렸고, 그 후 한번도 십분의 일을 봉헌하는 것을 거른 적이 없습니다. 만일 그때 어머니께서 십일조 정신을 새겨 주지 않으셨다면 처음으로 백만 달러를 벌었을 때 십분의 일을 주님께 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저도 록펠러의 어머니같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처음으로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올 날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리고, 그 금액이 너무 크지 않기도 바라고 있던 중에, 마침 아이가 15불을 벌어왔습니다.
한사코 저 가지라고 건네주는 15불을 받아넣으면서 이것의 10퍼센트는 하느님께 봉헌하자 하였습니다. 주일 전날, 봉헌 봉투에 1불 50전을 넣어두고 주일날 아침에, 네가 번 돈의 10퍼센트를 봉헌하는 첫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어른이 다 되었구나, 대견하다는 이야기도 함께 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이 아이가 앞으로 돈을 벌때마다 10퍼센트를 기꺼운 마음으로 떼어낼 수 있도록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질 수 있게 자리를 잘 잡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지요.
나도 록펠러의 어머니같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흡족함을 느꼈던 것도 잠깐, 사실상 자기 몸에 줄 긋고 수박행세 하고 싶어하는 호박이 바로 저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한달쯤 전에 헤드 헌터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파트 타임으로 들쭉 날쭉 여기저기 비는 School Nurse의 자리를 메꾸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채용 과정이 진행될 때만 해도 가슴이 잔뜩 부풀어 있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경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지라 돈에 대한 갈증이 이루 말할 수 없었는데, 이제 17년만에 첨으로 제 손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는 거지요.
돈을 벌면 뭘할까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십일조말고 이십일조를 할까? 아니 성당에는 10퍼센트만 하고, 10퍼센트는 청년 희망 펀드에 내고, 10퍼센트는 아버지께 부쳐드리고, 지속적으로 펑크나는 가계에도 조금 보태고 나서, 취직하면 한턱 내겠다고 약속했던 친구들에게도 한방 멋지게 쏘고, 통신 공부 과정들의 등록금도 직접 내고, 녹음용 마이크도 사고 책도 사고 먹고 싶던 버블티도 실컷 사먹고, 이제 엄마가 돈버니까 우리 딸이 소원하던 한국 여행 비용도 마련할 수 있게 됐어 하며 '드루와' 하면서 잔뜩 벼르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지난 2주 동안 일해서 벌은 돈이 200불 40전이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벌어들인 돈을 전부 다 쏟아 붇는다 해도 매달 적자를 내는 살림을 메꾸는 것조차 어려워 보이더군요. RN보다는 LVN들이 주로 하는 School Nurse이다 보니 그에 맞춰 수당이 책정된 데다가 그나마도 헤드 헌터에서 이것저것 비용떼고 남는 것을 받다보니 정말 한숨이 나오는 액수의 수당이었는데, 게다가 일도 고정적이지 않고 갑자기 아파서 출근할 수 없거나 휴가가는 사람을 대체하는 일이어서 일거리 자체도 많지가 않았습니다.
차라리 2000불을 벌었으면 이것저것 떼어내도 가계에 보탬이라도 될 텐데 그것도 아니고, 차라리 20불을 벌었으면 그냥 없는 셈치고 10불은 봉헌하고 10불은 버블티라도 맘 편하게 사먹었을텐데, 뭘 한다하더라도 생색이 나지 않는 참으로 애매한 액수였습니다. 아버지한테 20불만 부쳐드리기도 쫌 그렇고, 친구들한테는 그냥 슬쩍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국행 비행기표조차 살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딸내미의 실망하는 얼굴이 눈에 보이는 듯 싶더군요. 그러다가 결국엔, 십일조도 다음에 돈 좀 많이 벌면 그때 할까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했습니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을때는 오히려 마음도 편하고 뭐든 생기면 남들에게 다 줄 것만 같던 마음이, 쥐꼬리만큼 뭔가가 생기고 나니 그전보다도 더 목이 마르고 더 부족한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17년만에 처음으로 일해서 번 쥐꼬리만한 첫 월급을 받아든 그 주일날의 복음 말씀이 바로 "가난한 과부"의 이야기라니요...
복음과 강론을 듣는 내내 생각이 참 많았습니다. 실망스런 제 자신의 모습도 그렇고 제게 실망하셨을 하느님 아버지께도 죄송했지만, 아이는 부모의 뒤태를 보면서 자란다고 했던가요? 그 무엇보다도, 아이 앞에서는 네 것의 가장 좋은 몫 10 퍼센트를 아버지께 아낌없이 드려라 하고 말해 놓고는, 뒤돌아서서는 아이에게 말한대로 행하지 못하는 엄마 밑에서 크는 아이가 과연 무엇을 배울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동안, 적어도 십일조만큼은 반드시 하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근데, 그럼 세전으로 계산해야 하나? 세후로 계산해야 하나? 내년 4월에 세금 보고를 하게 되면 받은 돈을 토해내야 할 확률도 있는데, 그럼 그것도 감안해서 미리 떼어놓고 나머지로 계산해야 하나??? 주일헌금으로 내야 하나? 교무금으로 내야 하나? 생각할 수록 골치가 아파왔습니다.
그래서, 그냥 무조건 단순하게 가자 결심하였습니다. 내가 가진 돈의 10퍼센트를 하느님께 기쁘게 바치자...
그날 밤, 지갑에서 20불을 꺼내어 별도의 봉투에 넣어 놓았습니다.
[2015년 11월 15일 일요일]
따로 봉투에 담아 놓았던 20불짜리 지폐를 꺼내 봉헌 봉투에 옮겨 담았습니다. 미사가 진행되고 봉헌 순서가 되어 옷 매무새를 다듬으며 일어서 줄을 따라 봉헌 바구니 앞으로 나아갑니다. 무엇보다도 첫 단추가 반듯하게 제자리에 끼워졌는지 제 모습을 마음의 거울에 비추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