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디어 13살난 아들내미가 머리를 잘랐습니다. 마지막 자른지 두달만의 쾌거(?)인 것 같네요. '아니, 아들내미 머리자른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블로그까지 쓰고 그러나?' 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런분들은 아마도 최근에 저희 아이를 본 적이 없는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 아이를 보면 한마디씩 안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넌 왜 머리 안 자르냐?" 하시는 분, "철수야, 담에는 머리 좀 자르고 와" 하시는 분, "머리 그렇게 기르고 다니면 쿨 해 보이니?" 하는 친구 엄마, "얘, 그렇게 앞머리가 길면 이마에 여드름 더 많이 난다" 하는 엄마 친구, "내가 엄마라면 자고 있는 동안에 몰래 가서 살짝 머리 잘라 버리겠다" 하는 11살짜리 딸내미 친구, ... 심지어는, 온 가족이 다같이 껌을 씹다가 슬쩍 붙여놓고 실수로 껌이 머리에 붙은 척 하며 "어떡하니? 머리를 좀 잘라야 겠다" 하라는 둥 갖가지 아이디어도 제공해 주십니다.
사실 머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겨울부터 올 6월까지 자기 맘에 드는 바지 2개와 검은색 잠바 1개로 났습니다. 섭씨 30도가 넘었던 5월의 어느날, 신호대기 중에 함께 옆차선에서 대기 중이었던 학교 엄마가 차의 창문을 내리고 결국은 한마디 합니다. "언니, 언니는 좋겠어. 철수 옷 값이 하나도 안 들어서..." "아니, 죽겠어. 딴 옷 사다 줘도 입지도 않고 바지 1개 입고 가면 바로 다음 바지 빨아놔야 해서 매일 빨래 해야 돼. 죽겠어. ㅠㅠ" "언니, 잘해 봐, 빠이"... 그나마, 하루에 4계절이 다 나타나는 북가주의 기후와는 달리, 이번 여름은 무더운 한국에서 보낸 탓에 그 바지, 잠바와 씨름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미국에 돌아오자 마자 입기 시작한 그 검은 잠바를 보고 친구 아빠 왈 "드디어 저 검은 잠바가 다시 등장했구만..."
얼마전엔 미사 중 독서대에 올라가 남들 앞에 섰던 적이 있었는데, 미사가 끝나고 어느 자매님이 "아까 그 머리긴 애는 뉘 집 아이래?" "최진사 댁 아이래" "정말??? 그집 엄마 아빠는 멀쩡하던데 애는 왜 그러고 다니게 내버려 둔대???" 하는 얘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ㅠㅠ...
저라고 왜 잔소리를 안 했겠습니까? 저도 걔 머리만 보면 머리속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 이젠 빨래를 하고 났는데도 무릎이 튀어 나와 있는 바지만 입고 다니는데, 학교에 데리러 가긴 하지만 뉘집 아들인지 정말 모른 척 하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그러고 다니도록 내버려 둔 것이, 자기하고 싶은 머리 모양과 입고 싶은 옷만 고집하는 아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을 미적지근한 태도로 묵인하는 저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우같이 살살 꼬셔서 머리 하나 자르게 만들지도 못하는 곰같은 제 성격 탓일 수도 있고, 매달 머리 깎으러 데리고 가는 것도 일거리가 되니 귀챦아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이 아이가 자기 머리 모양 정도는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지않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이 아이가 머리 자르기를 원하는 것은, 본인보다는 저의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그 아이가 있어주기를 바라는 저의 이기심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느날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자기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당연하겠죠. 제가 그 아이보다 보고 들은 것이 많고, 제가 거쳐왔던 시행착오는 피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는 없더군요. 그러나, 자식을 위한다는 이유로, 혹은 부모인 내가 내 아이를 가장 잘 안다는 핑계로, 제 자신이 이루지 못해 속상했던 것들을 아이를 통해 이루려 하거나, 이상적인 내 아이의 모습을 제 안에 만들어 놓고는 그와 거리가 먼 아이를 보면서 끊임없이 실망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알고 있는 것은, 아이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하는 많은 것이 제 욕심을 부리는 것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 덥수룩한 머리와 무릎이 튀어나온 바지를 쳐다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란 가끔씩은,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 맘에 들지않는 상대방의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참아주는 것이라고 해도 괜챦을까요?
어쨌든 그렇게 제 속을 끓이더니만, 어제 드디어 그 아이가 머리를 잘랐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마음이 가볍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엔 얼마동안 저를 시험에 들게 하다가 머리를 자르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