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것저것 벌여진 일들도 많이 정리했고 가능하면 제 개인일에 집중하려고 했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숨통이 막히는 것 같이 답답해졌었지요. 얼마전부터는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는 저를 느낄 수 있었고, 성당에 나가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9시반 영어 미사때 새로이 시작하는 성가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겠노라고 약속도 했지마는, 이걸 '으리'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 그동안 노래와 음악을 통해 연결되어 산전수전(?)을 함께 했던 끈끈한 인연으로 인해,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결국은 다시 뭔가를 새로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최소한만 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주일날 이외에 갖게 되는 별도의 연습에는 아예 참석하기 어렵다고, 여차 저차한 사정이 있는 날들이 많아 한달에 몇번씩이나 그 미사에 참례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처음부터 공표를 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을 하니, 함께 연습을 하지 못할 거면 혼자서 따로 연습이라도 많이 해 가야 하는데 이메일로 악보를 보내줘도 들여다 보게 되지도 않고, 카톡 그룹방에서 이런 저런 대화 내용도 대충 눈팅만 하고 나오기 일수고, 마음만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미루다 미루다, 하루 전날 처음으로 악보를 들여다 보는데 갑자기 더럭 걱정이 되더군요.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거든요... 그날은 마침 저희집에서 반모임까지 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날이라 연습할 시간도 없어서 더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당일날 아침 연습 시각을 물어 그때까지 꼭 가서 같이 연습을 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D-Day, 걱정스런 마음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것저것 다 챙겨 놓고 나갈 준비를 다 마치기는 했는데,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주일날 아침 아이들 깨우는데 치러야 하는 전쟁을 생각하니, 또 다시 이것이 충돌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뭐 딱히 해야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가지도 못하고 서성서성 대다가, 결국 애들 깨워야 할 시간이 되어서야 간신히 깨워놓고는 부리나케 튀어 나갔습니다. 연습이 다 끝나갈 무렵에나 제일 꼴찌로 도착한 저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만 개미 목소리로 우물거리면서 연습장에 들어섰지요.
막상 미사가 시작되자, 입당 성가는 몇번인지도 모르겠고, 노래가 끝난 후 제대를 향해 섰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니 다른 성가대원들은 모두 지휘자를 향해 돌아서서 자비송 악보를 펴고 있는데 저 혼자만 제대 보고 서있고, 이번엔 전례 음악 악보, 다음엔 성가집, 이거 들었다 저거 들었다 여기 폈다 저기 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뿐이었겠습니까? 유니송으로 부르기로 결정된 사항도 모르고 있다가 혼자서 되지도 않는 화음 넣고 있고, 게다가 하필이면 신자들에게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는 바람에 마음놓고 묻어가지도 못한 채 처음 보는 영어 가사조차 그래도 몇번은 들여다 본 척 하며 노래를 부르려니, 정말 미사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았습니다.
불과 몇달전만 해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게 이런 부탁하기는 정말 미안하지만 어떻게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며 성전을 나서는 제게 "언니야, 넘 힘들면 안 해도 돼" 하는 우리 씩씩한 지휘자였지만, 그렇게 되어 제가 비워야 하는 그 자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저도, 그녀도, 그리고 저랑 매한가지 사정의 다른 성가대원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허수아비 밖에는 안 되는 사람일지라도...
'그래, 그냥 립싱크라도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둘째 아이 때문에 다음 주 미사를 위한 연습에조차 참석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져 먹었습니다.
또 다시 바쁜 한 주가 지나갔고, 이번에는 미리 열심히 연습해서 가리라 했던 다짐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결국 악보 한번 펴보지도 못한채 다시 주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번만큼은 시간 맞춰 연습장에 도착하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남편이 그날은 아주 일찍 성당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아이들을 제가 데리고 가야 한다는 뜻인데, 미사 시작 한 시간전인 연습 시간에 맞추어 성당에 도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꾸물거리는 아이들을 다그치며 간신히 성당에 도착하긴 했는데 이미 연습은 끝난 후였고, 벌써 다음번 팀이 연습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성전으로 들어가, 이미 자리잡고 앉은 성가대원들 자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고 보니 성가책도 챙기지 않고 덜렁 전례 악보만 가지고 있더군요. '아... 내가 도대체 이 자리에 왜 앉아 있어야 하는 건가...' 싶은 회의가 밀려왔지만 마냥 그러고만 있을 수도 없어, 영성체 후 불러야 할 특송 멜로디를 옆자리의 친구로부터 급히 쪽집게 과외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중에, 앞좌석 의자 밑에 놓여 있는 임자없는 성가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지난주에 미사를 마치면서 학생 성가대원들이 의자 밑에 놓고 간 것이 아닌가 싶었지요. 그래도, 그 성가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같이 느껴졌습니다.
선물을 받고나서 감사의 기도를 시작하기도 전에 미사는 시작되었고 옆사람 성가책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입당 성가를 펴 들었습니다. 다행히 지난주에 불렀던 노래였더군요. 급조된 성가대가 계속 새 노래를 배워가는 대신, 먼저 전체 흐름에 익숙해질 때까지 몇개의 노래들을 반복하도록 한 지휘자의 배려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좀전에 급하게 배운 특송도 그렇고 그래도 예전에 한번은 불러 보았던 노래라는 생각이 들자 무겁기만 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니 소리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고, 마치 온 몸이 위로 들려올려질 것처럼 거센 바람을 몰아치듯 힘차게 노래를 부르는 다른 성가대원들에 힘입어, 대영광송의 마지막 소절인 "with the Holy Spirit, in the Glory of the Father. A-men, a-men"을 소리높여 부를때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잠시 후, 알렐루야를 큰 소리로 부르며 '내가 이렇게 큰소리로 알렐루야를 외쳤던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슴을 꿰뚫는 듯한 신부님의 강론에 이어, 성가책 앞부분의 영어로 된 니케아 신경을 따라 읽으며 신앙 고백을 하는 중에 결국은 눈물이 떨어져 책 위에 그만 자국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거룩하시도다'와 '아멘'을 목놓아 부르며 알았습니다. 이것이, 그동안 아버지 하느님과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써 고개를 돌려왔던 저를 다시 불러주신 초대라는 것을... 길잃은 어린 양이 애타게 어미를 부르듯이 저는 오히려 거꾸로 목이 터지게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와중에, 제가 아버지에게서 애써 멀어져 가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성체 특송 중에 '아베 마리아'를 부를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눈물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지만, 영성체 후 묵상을 유도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결국은 눈물이 흐르도록 온 몸의 힘을 빼었습니다.
한때, 노래를 좀 더 잘 해 보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근처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발성 수업을 듣기도 하고, 집에서 5-6시간씩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죠. 그런 와중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도 노래 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착각이란 것도 깨닫게 되었고, 온 몸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가게 되는 때일수록 오히려 힘을 빼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고, 다른 악기와는 달리 의식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교감-부교감 신경계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근육과 몸통이 악기인지라 자신과의 심리전에서 이기지 않으면 악기의 모양 자체가 뒤틀려 버릴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제가 알게 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노래를 잘 하고 못 하고는 고운 목소리나 기교에 따른 게 아니라, 어떠한 마음으로 부르느냐이다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뜻과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부르면 제가 정말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누군가 별로 좋지 않게 평을 하더라도 별로 속상하거나 하지는 않더군요. 그리고 한가지 신기한 것은, 듣고 있던 누군가에게는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더라는 것이었지요. 제가 노래부르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그런 날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노래 너무 좋았어요"하는 분이 꼭 계셨던 것 같습니다. 마치 소리굽쇠의 공명(共鳴) 현상같다고나 할까요?
사람들은 귀에 들리는 노래 소리를 가지고 잘한다 못한다 이야기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이 들리는 노래 속에 담긴 마음을 보아 주시겠지요.
아버지 하느님께 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바치고 싶습니다. 노래를 통해 아버지를 부르고,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보잘 것 없는 저의 전부를 담아 아버지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쓰여지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