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디어 13살난 아들내미가 머리를 잘랐습니다. 마지막 자른지 두달만의 쾌거(?)인 것 같네요. '아니, 아들내미 머리자른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블로그까지 쓰고 그러나?' 하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런분들은 아마도 최근에 저희 아이를 본 적이 없는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 아이를 보면 한마디씩 안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넌 왜 머리 안 자르냐?" 하시는 분, "철수야, 담에는 머리 좀 자르고 와" 하시는 분, "머리 그렇게 기르고 다니면 쿨 해 보이니?" 하는 친구 엄마, "얘, 그렇게 앞머리가 길면 이마에 여드름 더 많이 난다" 하는 엄마 친구, "내가 엄마라면 자고 있는 동안에 몰래 가서 살짝 머리 잘라 버리겠다" 하는 11살짜리 딸내미 친구, ... 심지어는, 온 가족이 다같이 껌을 씹다가 슬쩍 붙여놓고 실수로 껌이 머리에 붙은 척 하며 "어떡하니? 머리를 좀 잘라야 겠다" 하라는 둥 갖가지 아이디어도 제공해 주십니다.
사실 머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겨울부터 올 6월까지 자기 맘에 드는 바지 2개와 검은색 잠바 1개로 났습니다. 섭씨 30도가 넘었던 5월의 어느날, 신호대기 중에 함께 옆차선에서 대기 중이었던 학교 엄마가 차의 창문을 내리고 결국은 한마디 합니다. "언니, 언니는 좋겠어. 철수 옷 값이 하나도 안 들어서..." "아니, 죽겠어. 딴 옷 사다 줘도 입지도 않고 바지 1개 입고 가면 바로 다음 바지 빨아놔야 해서 매일 빨래 해야 돼. 죽겠어. ㅠㅠ" "언니, 잘해 봐, 빠이"... 그나마, 하루에 4계절이 다 나타나는 북가주의 기후와는 달리, 이번 여름은 무더운 한국에서 보낸 탓에 그 바지, 잠바와 씨름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미국에 돌아오자 마자 입기 시작한 그 검은 잠바를 보고 친구 아빠 왈 "드디어 저 검은 잠바가 다시 등장했구만..."
얼마전엔 미사 중 독서대에 올라가 남들 앞에 섰던 적이 있었는데, 미사가 끝나고 어느 자매님이 "아까 그 머리긴 애는 뉘 집 아이래?" "최진사 댁 아이래" "정말??? 그집 엄마 아빠는 멀쩡하던데 애는 왜 그러고 다니게 내버려 둔대???" 하는 얘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ㅠㅠ...
저라고 왜 잔소리를 안 했겠습니까? 저도 걔 머리만 보면 머리속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 이젠 빨래를 하고 났는데도 무릎이 튀어 나와 있는 바지만 입고 다니는데, 학교에 데리러 가긴 하지만 뉘집 아들인지 정말 모른 척 하고 싶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그러고 다니도록 내버려 둔 것이, 자기하고 싶은 머리 모양과 입고 싶은 옷만 고집하는 아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것을 미적지근한 태도로 묵인하는 저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여우같이 살살 꼬셔서 머리 하나 자르게 만들지도 못하는 곰같은 제 성격 탓일 수도 있고, 매달 머리 깎으러 데리고 가는 것도 일거리가 되니 귀챦아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이 아이가 자기 머리 모양 정도는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없지않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이 아이가 머리 자르기를 원하는 것은, 본인보다는 저의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그 아이가 있어주기를 바라는 저의 이기심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어느날 들었기 때문입니다.
부모로서, 자기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당연하겠죠. 제가 그 아이보다 보고 들은 것이 많고, 제가 거쳐왔던 시행착오는 피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는 없더군요. 그러나, 자식을 위한다는 이유로, 혹은 부모인 내가 내 아이를 가장 잘 안다는 핑계로, 제 자신이 이루지 못해 속상했던 것들을 아이를 통해 이루려 하거나, 이상적인 내 아이의 모습을 제 안에 만들어 놓고는 그와 거리가 먼 아이를 보면서 끊임없이 실망하는 제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아이를 위하는 것인지 아직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알고 있는 것은, 아이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하는 많은 것이 제 욕심을 부리는 것일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 덥수룩한 머리와 무릎이 튀어나온 바지를 쳐다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이란 가끔씩은, 제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제 맘에 들지않는 상대방의 방식으로 할 수 있도록 참아주는 것이라고 해도 괜챦을까요?
어쨌든 그렇게 제 속을 끓이더니만, 어제 드디어 그 아이가 머리를 잘랐습니다. 저도 오랜만에 마음이 가볍습니다. 그나저나, 이번엔 얼마동안 저를 시험에 들게 하다가 머리를 자르려는지..
Tuesday, September 30, 2014
Saturday, September 27, 2014
인간이 5만년 동안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며칠전은 본당의 날이었습니다. 정말로 많은 분들이 몸소 봉사에 참여해 주시고 손수 음식 준비 및 서빙 하는데 참여해 주신 덕분에, 전 신자가 모여 음식도 나누고 푸짐한 선물도 나누고 즐거운 시간도 함께 나누었지요.
한동안 이렇게 저렇게 아프신 분들이 유난히도 많아 기도 부탁드린다는 메일을 자주 보냈었었고, 어느 모임에 가더라도 아프신 분들의 소식이 주된 이야기 거리가 되기도 했었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어린 아이들부터 나이 지긋한 원로분들까지 한자리에서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며칠전에 이번 행사 준비에 관한 안내 이메일을 드리면서 구역내에 초기 암세포 제거 수술을 앞두신 어느 자매님을 위하여 기도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함께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님께서 수술이 끝나자마자,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신 덕택에 수술이 무사히 잘 끝나서 감사의 인사를 전해오시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행사가 거의 끝나고 뒷정리를 하고 있던 중에, 행사 준비에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다며 그 자매님께서 저희 구역 메뉴였던 비빔밥 위에 얹을 표고버섯 큰것 2봉지를 불리고 볶아서 다른 분을 통해 보내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5만년 동안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에게 봉사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에게 봉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요?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 이야기 - 제2459호)
아프고 힘들때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 주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우리들... 이제는 자기 자녀를 위한 기도를 넘어서 자녀의 미래의 배우자를 위하여, 또 그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를 시작한 주변 친구들...그리고 수술에서 미처 회복이 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위하여 버섯을 볶아 보내신 자매님... 그분들을 보면서, 우리는 번창할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요... 이 글을 혹시라도 지금 읽고 계실런지 모르겠는데...
자매님, 다음에 또 이러시면 절대로 안 받겠습니다. 아셨죠?
한동안 이렇게 저렇게 아프신 분들이 유난히도 많아 기도 부탁드린다는 메일을 자주 보냈었었고, 어느 모임에 가더라도 아프신 분들의 소식이 주된 이야기 거리가 되기도 했었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어린 아이들부터 나이 지긋한 원로분들까지 한자리에서 어울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며칠전에 이번 행사 준비에 관한 안내 이메일을 드리면서 구역내에 초기 암세포 제거 수술을 앞두신 어느 자매님을 위하여 기도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함께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매님께서 수술이 끝나자마자, 많은 분들이 기도해주신 덕택에 수술이 무사히 잘 끝나서 감사의 인사를 전해오시기도 했었지요. 그런데 행사가 거의 끝나고 뒷정리를 하고 있던 중에, 행사 준비에 도움이 못 되어 미안하다며 그 자매님께서 저희 구역 메뉴였던 비빔밥 위에 얹을 표고버섯 큰것 2봉지를 불리고 볶아서 다른 분을 통해 보내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5만년 동안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 자신에게 봉사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타인에게 봉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요?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 이야기 - 제2459호)
아프고 힘들때 서로를 위하여 기도해 주고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우리들... 이제는 자기 자녀를 위한 기도를 넘어서 자녀의 미래의 배우자를 위하여, 또 그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를 시작한 주변 친구들...그리고 수술에서 미처 회복이 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를 위하여 버섯을 볶아 보내신 자매님... 그분들을 보면서, 우리는 번창할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근데요... 이 글을 혹시라도 지금 읽고 계실런지 모르겠는데...
자매님, 다음에 또 이러시면 절대로 안 받겠습니다. 아셨죠?
Tuesday, September 16, 2014
어린양의 노래
한동안 슬럼프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동안 이것저것 벌여진 일들도 많이 정리했고 가능하면 제 개인일에 집중하려고 했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숨통이 막히는 것 같이 답답해졌었지요. 얼마전부터는 사람들의 눈길을 피하는 저를 느낄 수 있었고, 성당에 나가는 것조차 힘들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9시반 영어 미사때 새로이 시작하는 성가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겠노라고 약속도 했지마는, 이걸 '으리'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 그동안 노래와 음악을 통해 연결되어 산전수전(?)을 함께 했던 끈끈한 인연으로 인해,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결국은 다시 뭔가를 새로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최소한만 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주일날 이외에 갖게 되는 별도의 연습에는 아예 참석하기 어렵다고, 여차 저차한 사정이 있는 날들이 많아 한달에 몇번씩이나 그 미사에 참례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처음부터 공표를 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을 하니, 함께 연습을 하지 못할 거면 혼자서 따로 연습이라도 많이 해 가야 하는데 이메일로 악보를 보내줘도 들여다 보게 되지도 않고, 카톡 그룹방에서 이런 저런 대화 내용도 대충 눈팅만 하고 나오기 일수고, 마음만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미루다 미루다, 하루 전날 처음으로 악보를 들여다 보는데 갑자기 더럭 걱정이 되더군요.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거든요... 그날은 마침 저희집에서 반모임까지 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날이라 연습할 시간도 없어서 더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당일날 아침 연습 시각을 물어 그때까지 꼭 가서 같이 연습을 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D-Day, 걱정스런 마음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것저것 다 챙겨 놓고 나갈 준비를 다 마치기는 했는데,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주일날 아침 아이들 깨우는데 치러야 하는 전쟁을 생각하니, 또 다시 이것이 충돌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뭐 딱히 해야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가지도 못하고 서성서성 대다가, 결국 애들 깨워야 할 시간이 되어서야 간신히 깨워놓고는 부리나케 튀어 나갔습니다. 연습이 다 끝나갈 무렵에나 제일 꼴찌로 도착한 저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만 개미 목소리로 우물거리면서 연습장에 들어섰지요.
막상 미사가 시작되자, 입당 성가는 몇번인지도 모르겠고, 노래가 끝난 후 제대를 향해 섰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니 다른 성가대원들은 모두 지휘자를 향해 돌아서서 자비송 악보를 펴고 있는데 저 혼자만 제대 보고 서있고, 이번엔 전례 음악 악보, 다음엔 성가집, 이거 들었다 저거 들었다 여기 폈다 저기 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뿐이었겠습니까? 유니송으로 부르기로 결정된 사항도 모르고 있다가 혼자서 되지도 않는 화음 넣고 있고, 게다가 하필이면 신자들에게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는 바람에 마음놓고 묻어가지도 못한 채 처음 보는 영어 가사조차 그래도 몇번은 들여다 본 척 하며 노래를 부르려니, 정말 미사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았습니다.
불과 몇달전만 해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게 이런 부탁하기는 정말 미안하지만 어떻게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며 성전을 나서는 제게 "언니야, 넘 힘들면 안 해도 돼" 하는 우리 씩씩한 지휘자였지만, 그렇게 되어 제가 비워야 하는 그 자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저도, 그녀도, 그리고 저랑 매한가지 사정의 다른 성가대원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허수아비 밖에는 안 되는 사람일지라도...
'그래, 그냥 립싱크라도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둘째 아이 때문에 다음 주 미사를 위한 연습에조차 참석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져 먹었습니다.
또 다시 바쁜 한 주가 지나갔고, 이번에는 미리 열심히 연습해서 가리라 했던 다짐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결국 악보 한번 펴보지도 못한채 다시 주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번만큼은 시간 맞춰 연습장에 도착하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남편이 그날은 아주 일찍 성당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아이들을 제가 데리고 가야 한다는 뜻인데, 미사 시작 한 시간전인 연습 시간에 맞추어 성당에 도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꾸물거리는 아이들을 다그치며 간신히 성당에 도착하긴 했는데 이미 연습은 끝난 후였고, 벌써 다음번 팀이 연습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성전으로 들어가, 이미 자리잡고 앉은 성가대원들 자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고 보니 성가책도 챙기지 않고 덜렁 전례 악보만 가지고 있더군요. '아... 내가 도대체 이 자리에 왜 앉아 있어야 하는 건가...' 싶은 회의가 밀려왔지만 마냥 그러고만 있을 수도 없어, 영성체 후 불러야 할 특송 멜로디를 옆자리의 친구로부터 급히 쪽집게 과외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중에, 앞좌석 의자 밑에 놓여 있는 임자없는 성가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지난주에 미사를 마치면서 학생 성가대원들이 의자 밑에 놓고 간 것이 아닌가 싶었지요. 그래도, 그 성가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같이 느껴졌습니다.
선물을 받고나서 감사의 기도를 시작하기도 전에 미사는 시작되었고 옆사람 성가책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입당 성가를 펴 들었습니다. 다행히 지난주에 불렀던 노래였더군요. 급조된 성가대가 계속 새 노래를 배워가는 대신, 먼저 전체 흐름에 익숙해질 때까지 몇개의 노래들을 반복하도록 한 지휘자의 배려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좀전에 급하게 배운 특송도 그렇고 그래도 예전에 한번은 불러 보았던 노래라는 생각이 들자 무겁기만 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니 소리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고, 마치 온 몸이 위로 들려올려질 것처럼 거센 바람을 몰아치듯 힘차게 노래를 부르는 다른 성가대원들에 힘입어, 대영광송의 마지막 소절인 "with the Holy Spirit, in the Glory of the Father. A-men, a-men"을 소리높여 부를때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잠시 후, 알렐루야를 큰 소리로 부르며 '내가 이렇게 큰소리로 알렐루야를 외쳤던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슴을 꿰뚫는 듯한 신부님의 강론에 이어, 성가책 앞부분의 영어로 된 니케아 신경을 따라 읽으며 신앙 고백을 하는 중에 결국은 눈물이 떨어져 책 위에 그만 자국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거룩하시도다'와 '아멘'을 목놓아 부르며 알았습니다. 이것이, 그동안 아버지 하느님과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써 고개를 돌려왔던 저를 다시 불러주신 초대라는 것을... 길잃은 어린 양이 애타게 어미를 부르듯이 저는 오히려 거꾸로 목이 터지게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와중에, 제가 아버지에게서 애써 멀어져 가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성체 특송 중에 '아베 마리아'를 부를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눈물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지만, 영성체 후 묵상을 유도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결국은 눈물이 흐르도록 온 몸의 힘을 빼었습니다.
한때, 노래를 좀 더 잘 해 보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근처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발성 수업을 듣기도 하고, 집에서 5-6시간씩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죠. 그런 와중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도 노래 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착각이란 것도 깨닫게 되었고, 온 몸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가게 되는 때일수록 오히려 힘을 빼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고, 다른 악기와는 달리 의식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교감-부교감 신경계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근육과 몸통이 악기인지라 자신과의 심리전에서 이기지 않으면 악기의 모양 자체가 뒤틀려 버릴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제가 알게 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노래를 잘 하고 못 하고는 고운 목소리나 기교에 따른 게 아니라, 어떠한 마음으로 부르느냐이다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뜻과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부르면 제가 정말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누군가 별로 좋지 않게 평을 하더라도 별로 속상하거나 하지는 않더군요. 그리고 한가지 신기한 것은, 듣고 있던 누군가에게는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더라는 것이었지요. 제가 노래부르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그런 날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노래 너무 좋았어요"하는 분이 꼭 계셨던 것 같습니다. 마치 소리굽쇠의 공명(共鳴) 현상같다고나 할까요?
사람들은 귀에 들리는 노래 소리를 가지고 잘한다 못한다 이야기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이 들리는 노래 속에 담긴 마음을 보아 주시겠지요.
아버지 하느님께 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바치고 싶습니다. 노래를 통해 아버지를 부르고,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보잘 것 없는 저의 전부를 담아 아버지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쓰여지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아멘...
그러던 와중에, 9시반 영어 미사때 새로이 시작하는 성가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겠노라고 약속도 했지마는, 이걸 '으리'라고 불러야 하는 건지... 그동안 노래와 음악을 통해 연결되어 산전수전(?)을 함께 했던 끈끈한 인연으로 인해,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결국은 다시 뭔가를 새로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을 수 없는 최소한만 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주일날 이외에 갖게 되는 별도의 연습에는 아예 참석하기 어렵다고, 여차 저차한 사정이 있는 날들이 많아 한달에 몇번씩이나 그 미사에 참례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처음부터 공표를 하고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을 하니, 함께 연습을 하지 못할 거면 혼자서 따로 연습이라도 많이 해 가야 하는데 이메일로 악보를 보내줘도 들여다 보게 되지도 않고, 카톡 그룹방에서 이런 저런 대화 내용도 대충 눈팅만 하고 나오기 일수고, 마음만 무거웠습니다.
그렇게 미루다 미루다, 하루 전날 처음으로 악보를 들여다 보는데 갑자기 더럭 걱정이 되더군요.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거든요... 그날은 마침 저희집에서 반모임까지 하기로 계획되어 있던 날이라 연습할 시간도 없어서 더더욱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당일날 아침 연습 시각을 물어 그때까지 꼭 가서 같이 연습을 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드디어 D-Day, 걱정스런 마음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이것저것 다 챙겨 놓고 나갈 준비를 다 마치기는 했는데,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주일날 아침 아이들 깨우는데 치러야 하는 전쟁을 생각하니, 또 다시 이것이 충돌의 빌미를 제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뭐 딱히 해야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가지도 못하고 서성서성 대다가, 결국 애들 깨워야 할 시간이 되어서야 간신히 깨워놓고는 부리나케 튀어 나갔습니다. 연습이 다 끝나갈 무렵에나 제일 꼴찌로 도착한 저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연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만 개미 목소리로 우물거리면서 연습장에 들어섰지요.
막상 미사가 시작되자, 입당 성가는 몇번인지도 모르겠고, 노래가 끝난 후 제대를 향해 섰다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떠보니 다른 성가대원들은 모두 지휘자를 향해 돌아서서 자비송 악보를 펴고 있는데 저 혼자만 제대 보고 서있고, 이번엔 전례 음악 악보, 다음엔 성가집, 이거 들었다 저거 들었다 여기 폈다 저기 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뿐이었겠습니까? 유니송으로 부르기로 결정된 사항도 모르고 있다가 혼자서 되지도 않는 화음 넣고 있고, 게다가 하필이면 신자들에게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앉는 바람에 마음놓고 묻어가지도 못한 채 처음 보는 영어 가사조차 그래도 몇번은 들여다 본 척 하며 노래를 부르려니, 정말 미사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이 잘 나지도 않았습니다.
불과 몇달전만 해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제게 이런 부탁하기는 정말 미안하지만 어떻게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며 성전을 나서는 제게 "언니야, 넘 힘들면 안 해도 돼" 하는 우리 씩씩한 지휘자였지만, 그렇게 되어 제가 비워야 하는 그 자리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저도, 그녀도, 그리고 저랑 매한가지 사정의 다른 성가대원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허수아비 밖에는 안 되는 사람일지라도...
'그래, 그냥 립싱크라도 한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둘째 아이 때문에 다음 주 미사를 위한 연습에조차 참석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번 마음을 다져 먹었습니다.
또 다시 바쁜 한 주가 지나갔고, 이번에는 미리 열심히 연습해서 가리라 했던 다짐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핑계로 결국 악보 한번 펴보지도 못한채 다시 주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번만큼은 시간 맞춰 연습장에 도착하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이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남편이 그날은 아주 일찍 성당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아이들을 제가 데리고 가야 한다는 뜻인데, 미사 시작 한 시간전인 연습 시간에 맞추어 성당에 도착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는 이야기입니다.
꾸물거리는 아이들을 다그치며 간신히 성당에 도착하긴 했는데 이미 연습은 끝난 후였고, 벌써 다음번 팀이 연습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황급히 성전으로 들어가, 이미 자리잡고 앉은 성가대원들 자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고 보니 성가책도 챙기지 않고 덜렁 전례 악보만 가지고 있더군요. '아... 내가 도대체 이 자리에 왜 앉아 있어야 하는 건가...' 싶은 회의가 밀려왔지만 마냥 그러고만 있을 수도 없어, 영성체 후 불러야 할 특송 멜로디를 옆자리의 친구로부터 급히 쪽집게 과외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 중에, 앞좌석 의자 밑에 놓여 있는 임자없는 성가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마도 지난주에 미사를 마치면서 학생 성가대원들이 의자 밑에 놓고 간 것이 아닌가 싶었지요. 그래도, 그 성가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같이 느껴졌습니다.
선물을 받고나서 감사의 기도를 시작하기도 전에 미사는 시작되었고 옆사람 성가책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입당 성가를 펴 들었습니다. 다행히 지난주에 불렀던 노래였더군요. 급조된 성가대가 계속 새 노래를 배워가는 대신, 먼저 전체 흐름에 익숙해질 때까지 몇개의 노래들을 반복하도록 한 지휘자의 배려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좀전에 급하게 배운 특송도 그렇고 그래도 예전에 한번은 불러 보았던 노래라는 생각이 들자 무겁기만 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니 소리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하고, 마치 온 몸이 위로 들려올려질 것처럼 거센 바람을 몰아치듯 힘차게 노래를 부르는 다른 성가대원들에 힘입어, 대영광송의 마지막 소절인 "with the Holy Spirit, in the Glory of the Father. A-men, a-men"을 소리높여 부를때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잠시 후, 알렐루야를 큰 소리로 부르며 '내가 이렇게 큰소리로 알렐루야를 외쳤던 것이 언제가 마지막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슴을 꿰뚫는 듯한 신부님의 강론에 이어, 성가책 앞부분의 영어로 된 니케아 신경을 따라 읽으며 신앙 고백을 하는 중에 결국은 눈물이 떨어져 책 위에 그만 자국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거룩하시도다'와 '아멘'을 목놓아 부르며 알았습니다. 이것이, 그동안 아버지 하느님과 눈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써 고개를 돌려왔던 저를 다시 불러주신 초대라는 것을... 길잃은 어린 양이 애타게 어미를 부르듯이 저는 오히려 거꾸로 목이 터지게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와중에, 제가 아버지에게서 애써 멀어져 가려고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영성체 특송 중에 '아베 마리아'를 부를때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고 눈물이 나는 것을 억지로 참았지만, 영성체 후 묵상을 유도하시는 신부님의 말씀을 들으며 결국은 눈물이 흐르도록 온 몸의 힘을 빼었습니다.
한때, 노래를 좀 더 잘 해 보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었습니다. 근처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발성 수업을 듣기도 하고, 집에서 5-6시간씩 노래를 부르기도 했었죠. 그런 와중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나도 노래 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착각이란 것도 깨닫게 되었고, 온 몸에 자연스레 힘이 들어가게 되는 때일수록 오히려 힘을 빼지 않으면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배우게 되었고, 다른 악기와는 달리 의식적으로 통제되지 않는 교감-부교감 신경계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근육과 몸통이 악기인지라 자신과의 심리전에서 이기지 않으면 악기의 모양 자체가 뒤틀려 버릴 수도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제가 알게 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노래를 잘 하고 못 하고는 고운 목소리나 기교에 따른 게 아니라, 어떠한 마음으로 부르느냐이다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좋은 뜻과 마음을 가지고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부르면 제가 정말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누군가 별로 좋지 않게 평을 하더라도 별로 속상하거나 하지는 않더군요. 그리고 한가지 신기한 것은, 듣고 있던 누군가에게는 그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더라는 것이었지요. 제가 노래부르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그런 날에는, 떨리는 목소리로 "오늘 노래 너무 좋았어요"하는 분이 꼭 계셨던 것 같습니다. 마치 소리굽쇠의 공명(共鳴) 현상같다고나 할까요?
사람들은 귀에 들리는 노래 소리를 가지고 잘한다 못한다 이야기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보잘것없이 들리는 노래 속에 담긴 마음을 보아 주시겠지요.
아버지 하느님께 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바치고 싶습니다. 노래를 통해 아버지를 부르고,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보잘 것 없는 저의 전부를 담아 아버지께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쓰여지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아멘...
Monday, September 8, 2014
둥글게 둥글게...
달빛기도 - 한가위에
이해인 수녀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추석이 다가오면서 어느 분이 이 시를 제게 보내주셨습니다. 읽으면서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더 둥글어지기를" 이라는 구절이 머릿속에 들어와 떠나지를 않더군요. 아마도 요즘 제 마음이 "미움과 편견"으로 울퉁불퉁 찌그러져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오늘은 작은 아이가 눈 두덩이에 두드러기가 나는 바람에 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약 먹고 계속 자다가, 한국에 머물던 기간 내내 먹고 싶어하던 베트남 포 국수를 먹으러 나갔지요. 너무 기뻐하며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가 이런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이 순간에 이 아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을 아이 아빠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요즘 들어서 남편과 많이 다투긴 했지만 동전에는 양면이 있듯이, 원망과 불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순간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만만을 늘어놓으며 제 자신이 제 마음을 내리찍어 자꾸 울퉁불퉁하게 만들어갔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처음에 한두군데 찍었을 땐 별로 티가 나지 않는 듯 하더니, 이제는 하도 많이 내리찍혀 울퉁불퉁하게 변해버린 제 모습에 오히려 제가 다칠 것만 같이 느껴지는군요.
그래서 오늘은 용기를 내어 "미움과 편견으로 모난" 부분을 내리찍었습니다.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의 사진과 함께, '아이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네요.
저는 아이들에게 처음이 가장 힘들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저역시 이번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제게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고 채워주시는 하느님이 계셔서 가장 힘든 순간을 넘길 수 있었으니, 앞으로는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듭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한가위 보름달처럼 둥글어져 있겠지요?
오늘은 한가위로군요. 추석 미사 참례 준비를 다 해 놓고는 깜빡하는 순간에 시간을 놓치면서 결국은 집에 털썩 주저 앉아 있다가 그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데, 잠깐 밖에 나간길에 휘영청 둥근달을 보는 순간에사 오늘이 한가위로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읽으며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뜨기"를 기도해 봅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여러분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둥글게...
이해인 수녀
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추석이 다가오면서 어느 분이 이 시를 제게 보내주셨습니다. 읽으면서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더 둥글어지기를" 이라는 구절이 머릿속에 들어와 떠나지를 않더군요. 아마도 요즘 제 마음이 "미움과 편견"으로 울퉁불퉁 찌그러져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닌가 싶었습니다.
오늘은 작은 아이가 눈 두덩이에 두드러기가 나는 바람에 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약 먹고 계속 자다가, 한국에 머물던 기간 내내 먹고 싶어하던 베트남 포 국수를 먹으러 나갔지요. 너무 기뻐하며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이 아이가 이런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이 순간에 이 아이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을 아이 아빠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특히나 요즘 들어서 남편과 많이 다투긴 했지만 동전에는 양면이 있듯이, 원망과 불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감사의 순간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원망과 불만만을 늘어놓으며 제 자신이 제 마음을 내리찍어 자꾸 울퉁불퉁하게 만들어갔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처음에 한두군데 찍었을 땐 별로 티가 나지 않는 듯 하더니, 이제는 하도 많이 내리찍혀 울퉁불퉁하게 변해버린 제 모습에 오히려 제가 다칠 것만 같이 느껴지는군요.
그래서 오늘은 용기를 내어 "미움과 편견으로 모난" 부분을 내리찍었습니다. 맛있게 먹고 있는 아이의 사진과 함께, '아이가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났다, 감사한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한, 남편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싶네요.
저는 아이들에게 처음이 가장 힘들다는 말을 종종 합니다. 저역시 이번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제게 필요한 것을 미리 아시고 채워주시는 하느님이 계셔서 가장 힘든 순간을 넘길 수 있었으니, 앞으로는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듭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한가위 보름달처럼 둥글어져 있겠지요?
오늘은 한가위로군요. 추석 미사 참례 준비를 다 해 놓고는 깜빡하는 순간에 시간을 놓치면서 결국은 집에 털썩 주저 앉아 있다가 그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데, 잠깐 밖에 나간길에 휘영청 둥근달을 보는 순간에사 오늘이 한가위로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읽으며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뜨기"를 기도해 봅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여러분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둥글게...
Subscribe to:
Comments (A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