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November 9, 2014

"8월의 크리스마스" - 4분의 3

[2014년 8월 15일 금요일]

오늘은 성모승천대축일인 관계로 미사를 봐야 했다. 가까운 동네 성당에 가려고 했던 계획은, 아침에 꾸물거리는 아이들로 인해 무산되고 결국은 조금 늦은 시간에도 미사를 볼 수 있는 명동 성당으로 바뀌게 되었다.

여늬때처럼 줄을 서서 기다려 입장했지만, 제대가 통 보이지도 않는 기둥뒤 밖에는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평소에 노래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어느 미사에 가더라도 성가대에 자꾸 눈이 가는 편인데, 예전과는 달리 제대옆의 성가대 자리가 비어있었다. '오늘은 성가대없이 미사를 하나?' 하고 있었는데, 미사가 시작되자 입당 성가가 윗층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른 때에 비해 훨씬 듣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부터 윗층에서 하지...'

그런데, 참회 예식이 끝나고 이어지는 대영광송의 신부님 선창이 심상치가 않다. 이제는 미사 중에 자주 사용되지 않는 라틴 전례 음악인 듯 싶었다. 따라 부를수가 없으니 듣는 수 밖에... 유니송과 화음,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라틴 전례 음악 특유의 무게와 느낌이 잘 살아나면서 코 끝에 마치 분향할 때의 향내음이 풍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독서에 이은 화답송, 알렐루야를 들으며 '아니, 명동 성당 성가대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불렀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주임 신부님의 강론을 들을 수도 있었다. 그동안 몇차례 명동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보긴 했지만, 강론은 항상 보좌 신부님이 하셨고 마지막 공지 시간에나 주임 신부님의 말씀을 몇마디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몇마디 되지도 않는 말씀을 통해서도 그분의 내공이 심상치 않음은 그리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기에, 주임 신부님은 강론을 안 하시나 하고 궁금했던 참이었다.

강론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신앙고백과 성찬의 전례가 이어지면서, 사회자의 멘트가 나왔다. "봉헌 성가는 가톨릭 합창단에서 OOO(노래 제목 기억 안남 ㅠㅠ) 를 하겠습니다". '아... 가톨릭 합창단 이었구나. 프로들이겠네...'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 죽기 전에, 멋진 성당에서 정말 아름다운 음악 속에서 미사를 보고 싶은 바램이 있었다. 그래서 성탄절이 되면, 혹은 부활절이 되면 주교좌 성당에서 자정 미사를 드리고 싶은 생각이 늘 있었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없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쌍투스는 그야 말로 압권이었다.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표현을 접할 때가 있는데, 정말로 천사들이 합창을 한다면 저렇게 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안 그래도 눈물이 많은 나는 또다시 찔끔거리기 시작했다.

"성체 성가는 가톨릭 합창단에서 그레고리안 아베 마리아를 부르겠습니다." 다시 사회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노래만 듣고 있어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성체를 모시고 났는데, 바로 옆자리의 자매님이 미사보 속으로 얼굴을 감추며 훌쩍거리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날 미사의 정점은 천사들의 합창도 그레고리안 아베 마리아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파견 성가였다. 미사를 마치며 사회자의 멘트가 다시 이어졌다. "파견 성가는 애국가 1절과 2절을 부르시겠습니다." '애국가??' 하고 있는 순간, 전주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속이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성가책을 내려놓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하며 노래를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한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옆사람이랑 왠지 손이라도 잡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의 앞 줄에 있던 어느 자매님은 연신 눈가의 눈물을 훔치기 시작하였고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를 노래할 때는 모든 이들이 배에다 있는대로 힘을 주고 목이 터져라 노래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을 나서는데, 마치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명동 성당에서 미사를 본 것이 채 다섯 손가락에도 꼽지 못할 정도이긴 하지만, "30년만에 첨으로 애국가 불러보는 거야" 하시는 어느 자매님 부터해서 그날은 성당문을 나서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다른 때와는 조금 달랐다.

'내가 바티칸에서 교황님과 함께 미사를 드린다해도 이런 미사는 두번 다시 없을거야.'

그러자 갑자기 교황님 생각이 다시 들었다. 미사 중간에 '이거 혹시 교황님께서 18일날 명동 성당에서 집전하시는 미사의 예행 연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어쩌면 그냥 대축일이라서 좀 특별하게 할 수도 있겠지 싶어 그냥 넘어 갔었다. 그런데 대축일이라고 해서 파견 성가를 애국가로 할 것 같지는 않았고, 몇십년 만에 처음으로 애국가를 불러본다는 어느 자매님 말씀이 자꾸 생각나면서 교황님 집전 미사 준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다시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니, 오늘의 이 미사가 마치 교황님이 이번 방한을 하면서 내게 주신 선물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성당을 나섰지만, 교황님 방한에 대비해 쫙 깔린 전투 경찰과 각종 시위를 하는 그룹과 온갖 종류의 관광객들이 뒤섞여 명동 한복판은 그야말로 아우성이었다.

며칠 좀 선선하더니만 다시 기온이 올라 후덥지근한 날씨에 친구들 주고 싶다는 선물을 사기 위해 명동에서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콘서트 장으로 출발하기까지 약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게 되자 결국 나는, 아이들을 잠시 패스트푸드 점에 앉혀놓고는 다시 광화문으로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내가 찍어놓은 자리를 직접 한번 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광화문 주변은 차도를 도배하다 시피 한 경찰 버스와 인도에 진을 치고 있는 전투 경찰들, 세월호 유족에 관광객들까지 차도에는 차들이, 인도에는 사람들이 발 디딜 틈없이 말할 수 없이 복잡하였다. 직접가서 보니, 범죄 현장 같은데서 볼 수 있는 노란색 테이프의 폴리스 라인이 아니라, 플라스틱 통에 물을 채워 아예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었다. 바깥 쪽으로는 사람들 몇명이 걸어다닐만한 틈만 주고는 모든 인도의 한 가운데에 바리케이트를 만들고 있었다.

 


바리케이트를 따라 세종 문화 회관 계단 쪽으로 접근하다 보니, 괜챦아 보이는 조그만 골목길 모퉁이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자리를 잡는다고 했을때 누군가 와서 쫓아내지만 않으면 꽤 괜챦아 보이는 지점이었다. '역시 직접 와 보기를 잘 했어 ㅋㅋ'

계속 해서 세종 문화 회관 계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커다란 안내 지도가 눈에 들어왔다. 가서 보니, 폴리스 라인 바깥 쪽에 설치될 이동식 화장실에 대한 안내 지도였다. 적어도 화장실이 급해도 갈 수 있는 데가 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더 놓였다. 시복식 정식 참석자외의 구경꾼들을 위한 배려 또한 감사하게 느껴졌다. 안내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무슨 일급 기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몸으로 저지하는 관계자 때문에 사진은 남길 수가 없었다.

막상 내가 찍어놓았던 세종 문화 회관 계단에 도착하고 보니, 계단의 어느 쪽에 앉아도 시야가 완전히 가려질 위치에 아주 높고 커다란 시설물이 설치되고 있었다. 여기 저기 눈에 보이는 다른 전광판과는 다른 구조물인 것이 느낌에는 중계 카메라가 설치될 것 같이 보이는 그런 구조물이었다. 그쪽 계단은 제대보다 높은 지대여서 어쩌면 저격수를 배치한다든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안전 유지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해서 일부러 그쪽 시야를 막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짜 직접 와 보길 잘 했어. 안 와 봤으면 이런 게 여기 서 있을지 어떻게 알았겠어? ㅋㅋ'

이쯤 되고 보니, 원래 내가 1순위로 찍었었던 대한 민국 역사 박물관 건물 옆의 계단 자리도 직접 가서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치만 30분 남은 시간동안 헐레벌떡 뛰다 시피 하며 급히 돌아보았던 광화문 전경이었던 지라 그쪽까지 가기는 어려워서 바리케이트를 어떻게 치고 있는지 먼 발치에서 볼 수 밖에 없었다. 자세한 건 잘 보기가 어려웠지만, 얼핏 보기에는 계단까지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지는 않은 듯 싶었다. 그래서 내일 그 지점으로 무조건 가 보겠다 마음을 먹었다.

'아차... 이러다 콘서트에 늦겠다'

광화문에서 종로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가 (차가 더 막혀서 뛰는 게 더 빠른 상황이었음) 아이들을 데리고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콘서트 장을 많이 다녀본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안내 표지가 없는 콘서트장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는 출구부터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우왕 좌왕 하며 결국 자리까지 찾아가 앉고 나니, 완전히 기진맥진이었다.

그래도 처음엔 좀 앉아있으니 나아지는 듯 싶어서, 한동안 노래도 따라 부르고 사진도 찍고 소리도 지르고 하다가, 인제는 나이를 속일 수가 없는건지 어느 순간부터 몸이 늘어지기 시작하더니 하품이 계속 나오고 언제 집에 갈 수 있을까 시계만 보게 되었다.

5시에 시작한 콘서트... 늦어봐야 9시면 끝나지 않을까 싶었던 콘서트는 이게 왠 걸? 10시 30분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너무 늦어진 것 같아 출연진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뛰어 나왔지만, 출구도 제대로 열어 놓질 않아서 우리집 현관문 만한 게이트 사이로 콘서트장 구경꾼의 절반이 빠져나가야 했고, 각종 우여곡절 끝에 전철역 승강장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핫도그 한개로 저녁을 떼운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투덜댔지만 전철이 끊길까봐 뭘 사 먹으러 갈 수도 없었고, 그 야심한 시각에 콘서트 관중들로 콩나물 시루같이 빡빡해진 전철에 몸을 싣고는 막차에 막차를 거듭 타서 결국 집 근처 전철역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밤 12시는 훌쩍 넘어 있었다. 전철역 출입구의 셔터가 반쯤 내려와 있는 건 예전에 가끔씩 막차를 타 본 적이 있는 나조차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8월 16일 토요일, 드디어 시복식 카운트 다운]

* 새벽 12시 30분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손만 씻고 애들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 새벽 1시
  샤워라도 하면 좀 나을 것 같은데, 두놈들 샤워 끝나려면 어느 세월에... 힘겹게 몸을 움직여 이불을 편 다음 바닥에 드러눕고 나니 마치 마비라도 된 것 같이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 새벽 2시
  방금 전에 시계를 본 게 1시였던 것 같은데, 눈 떠 보니 벌써 2시가 되어 있다. 아직도 한 놈은 샤워를 하고 있고, 잊기전에 9일 기도 해야지 싶어 기어가다시피 묵주를 가지고 와 손에 들긴 했지만 몇단까지 했을까?

* 새벽 2시 30분
  드디어 애들이 샤워를 다 마친 것 같은데, 도저히 몸이 일어나지지가 않는다. 아뿔싸... 손가락에는 힘이 다 풀리고 묵주는 방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몇단까지 한걸까? 첨부터 다시 해야 하나??? ㅠㅠ

* 새벽 4시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벌써 4시다. 인제는 지하철이 다니기 시작할텐데... 원래 계획대로 한다면 30분 전에 일어나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나갔어야 하는데, 지금은 엎드린 채로 베개에 파묻은 얼굴을 반대로 돌려 돌아눕는 것조차 할 수가 없다.

* 새벽 6시
  불도 안 끈 채로 잠이 들어버리기는 했지만, 바깥에 하늘이 점점 밝아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6시면 꽤 늦은 시간이 되어 버렸는데, 내가 찜해 놨던 자리는 과연 아직도 비어 있을까?

* 아침 7시 30분
   시계가 6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직도 그 자리가 비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은 기억이 나는데, 누군가 시간을 훔쳐 간 것처럼 시계는 이미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엎어진채로 시체처럼 있었는지, 목도 아프고 팔도 저리고 얼굴도 퉁퉁 부었다. 딱딱하게 굳어진 몸을 간신히 돌려 똑바로 누웠다.
   지금 바로 나가더라도 도착하면 8시 30분... 이제는 전광판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할 텐데... 시복식에 가 보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할 것 같았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9일 기도를 처음부터 해서 마치고 난 뒤 불을 끈 다음, 다시 자리에 누워 버렸다.

* 아침 10시 10분
  화들짝 놀라 TV를 틀어보니 시복식 미사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어느 채널은 무슨 재난 현장을 생중계 하듯 급박한 목소리로 특파원을 불러가며 생중계를 하고 있었고, 어느 채널은 뉴스 진행하듯 중계를 하고 있었고, 그냥 조용히 미사드리는 기분으로 시복식을 보고 싶었지만 맘에 드는 채널을 찾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여기저기 계속 돌리다가 어느 좀 조용한 채널에 고정하고 함께 미사를 드렸다.
  광화문 광장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기에 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속상해하는 나자신에게 다시 묻게 되었다.

  '내가 저기 저자리에 가서 있기 위해서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