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November 1, 2014

"8월의 크리스마스" - 4분의 2

[2014년 6월 25일 수요일 ~ 8월 2일 토요일]

여기저기... 미국에서 세례받고 신앙 생활을 시작한 탓에 한국에는 별로 아는 사람도 없지만, 그나마 성당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한번쯤은 시복식에 참석할 방법이 없을런지 물어 본 것 같다.

"예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본인 확인 절차가 철저해서 다른 사람 티켓을 이용해서 입장을 할 수 없다는 것 같아요. 사정상 못 가는 분이 생겨도 그 티켓은 본인 외에는 쓸 수가 없다고 하네요."
(ㅠㅠ)

"아가, 내 아는 신부님께 여쭤봤는데, 그쪽 성당에서는 신청자가 많아서 아예 40대, 50대 신자들 중에서만 신청받고 다른 사람들은 아예 신청도 안 받았다고 그러네. 좀 어려울 것 같아."
(ㅠㅠ)

"저희 성당에서는 각 반별로 2-3명만 신청을 받았대요. 저희도 신청 못 했어요."
(ㅠㅠ)

"이미 신청하신 분 중에서 캔슬하신 분들이 많이 생겼는데요, 추가로 접수를 받지 않아서 빈 자리가 많은데도 새로이 접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마도 전국의 신청자들 신원 조회 하고 개인 정보를 담은 티켓을 날짜에 맞춰 발행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ㅠㅠ)

그러고보니, 명동 성당에서는 신청자가 많을 경우, 추첨을 통해 참석자를 선정하겠다는 공지도 웹사이트에서 본 것 같다. 시복식에 참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럼.. 가지 말까? 아니야, 그래도 이런 기회 아니면 내가 교황님을 언제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겠어? 성체는 모시지 못하더라도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데 앉아서 시복식 미사라도 함께 드려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근데... 애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확보된 자리가 없으면 최대한 일찍 가야 자리를 맡을 수 있을텐데, 입장 시작 시각인 새벽 4시부터 자리 맡으러 나가 앉아서 9시까지 기다려야 하나??? 미사 시간이 최소한 2시간은 걸릴텐데... 새벽 4시부터 11시? 12시??? 비가 오면 어쩌지? 날이 너무 더우면? 길바닥에 앉아야 하나? 방석을 챙겨 가? 배고플텐데... 화장실은? 졸리면? ... 아... 머리가 깨질 것 같다.


[2014년 8월 3일 일요일]

전날이었던 토요일은 폭염 주의보가 내려진 정말 뜨거운 날이었다. 미사 끝의 공지 시간에 명동 성당의 주임 신부님께서 한마디 덧붙이셨다.

"이제 교황님 오실때까지 정말 열흘밖에 안 남았습니다. 날이 더우면 더울까 걱정... 비가 오면 비가 올까 걱정... 정말 걱정만 가득~합니다. 여러분, 기도 좀 많이 해 주십시요. 아주 살짝 흐리게..."

한숨이 섞인 듯한 그분의 부탁 말씀이 왜 그리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걸까? 아마도 애들 데리고 가서 자리 맡고 시복식 참관할 생각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나의 걱정과 맞물려 그런걸까?

생각할 수록 이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아이들 둘 가지고도 이렇게 끙끙 거리고 있는데, 이분들은 10만명이 넘는 이들을 챙겨야 하고, 무엇보다도 교황님과 그 일행의 안전과 빡빡한 일정이 물 흐르듯 진행될 수 있도록 만전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니.. 교황님도 아닌 주교님 모시고 2시간짜리 새성전 축성식 준비하면서도 2주 동안 2킬로그램이나 살이 빠졌던 경험이 있던 나는, 이 시복식 준비라는 것의 무게가 새삼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진심어린 기도가 간절히 필요한 일이로구나...'

그때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이번 시복식을 마치,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정도로 밖에 보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까지 내게 있어서 시복식은, 이번 한국 여행에서 건져가야 할 하나의 껀수 정도로 밖에는 되지 않았고, 그때까지의 나에게 교황님이란 결국, 인증샷 하나 남겨 페북에 올려 자랑하고 싶은 그런 해외 저명 인사 중 한명이었을 뿐이었다.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게 있어서 시복식과 그토록 만나뵙고 싶었던 교황님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를 생각해 본 것이...


[2014년 8월 6일 수요일 ~ 8월 7일 목요일]

미국에서 카톡이 왔다. 지난 주일에 sbs에 방영된 "거리의 교황 프란치스코" 라는교황님에 관련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다운받아 보내 줄 수 있을런지 물어보는 메시지였다. 그 덕분에 교황님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리저리 다운받을 방법을 알아 보다가, 그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이걸 아이들하고 같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아무리 마이클 잭슨이 방한을 해서 그 콘서트 장에 가 본다 한들, 마이클 잭슨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 봐야 그게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될까 싶어서 였다.

그리고 큰 타협을 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본다고 약속하면 시복식에는 참석하지 않아도 좋다는 거였다. 이 시복식을 참석을 위해서 시차적응도 못 한채로 개학하기 바로 전날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어 놓았던 나로서는 아주 큰 좌절이었다. 하지만, 교황님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도 않을 거라며 처음부터 삐딱선을 타고 있던 큰 아이와 그냥 엄마가 간다니까 뭐하는 줄도 모르고 무턱대고 따라 나설 작은 아이를 데리고 새벽 4시부터 7~8시간을, 땡볕이 될지 비를 맞고 있을지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할지 내내 서있어야 할지 화장실이나 제대로 다녀올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차라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복식이나 교황님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어쩌면 교육적 차원에서 나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만 엄마랑 같이 본다면 시복식은 안 가도 좋다"
"Hurray~~"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는 아이들 ㅠㅠ... 그게 그렇게 기뻐할 일인건가?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워졌다.

1시간짜리 프로그램이었는데, 중간 중간 멈춰서 이야기하며 2시간 가까이 걸려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았다. 나름 노력하고 있는 엄마를 눈꼽만큼이라도 신경써 준다면 이럴 수 있을까? 큰아이는 프로그램내내 보란듯이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작은 아이는 그저 졸음이 가득한 눈이다.

'Promise is a promise! 그래, 내가 이것만 보면 시복식 안 가도 좋다고 약속을 했으니, 약속은 지킨다.'

프로그램이 끝나자 마자 갑자기 생기가 도는 아이들을 보며, 이것도 결국 내 욕심이었는지, 내려놓고 나니 차라리 내 마음도 편해졌다.

이쯤되고 나니, 비행기표를 바꾸어 빨리 미국으로 보내서 시차 적응이라도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시복식 전날 밤에 열리는 SM 타운 월드 투어 2014 콘서트때문에 어차피 일정을 조정하기는 어렵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8월 10일 일요일]

주일 미사 끝 무렵에, 명동 성당 주임 신부님이 또 한마디 덧붙이신다. 그날은 영성체 중에 코 앞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바람에 정신이 홀딱 나가버린 탓인지 표현이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대충, '시복식에 직접 참석하고 안하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때는 이미 교황님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이고 TV에서라도 시복식을 보면서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참석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싶으셨던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 말씀이 약간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래.. 신청자가 많아서 제비 뽑기했는데, 거기서 꽝 뽑은 셈 치자, 뭐...' 원래 그런 쪽으로는 영 운이 따르지 않는 편이어서, 진짜로 제비를 뽑았다면 아마도 영락없는 꽝이었을 것이다.

'성체만 못 모시지, 근처에 가서 앉아있으면 되지 뭐.. 인제는 애들 챙길 필요도 없고, 나야 뭐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없으니까...'

명동 성당에서 삼청동으로 장소를 옮겼다가 정동에서 있는 저녁 스케쥴 사이의 잠시 시간이 비는 사이에, 발걸음을 광화문으로 옮겼다. 이제는 아주 본격적으로 사전 답사를 하고 싶었다. 어느 지점에서 자리를 잡으면 광화문 앞 (제대가 설치될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이 그나마라도 잘 보일 수 있을런지 여러 지점에서 직접 보고 싶었다.

미리 사전 답사없이 갔다가 '여기가 아닌가벼' 했다가는, 지하철, 버스할 것 없이 그 일대 지역의 교통이 모두 통제되는 상황에서 안국동에서 시청앞까지 걸어가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고, 사실 걷는 것이 두렵지는 않지만, 그 걷고 있는 와중에 "로얄석"은 눈깜짝할 사이에 다 차 버릴 것이 뻔하니 일분 일초가 중요한 상황이었다.

근데... 날씨도 안 도와주네 ㅠㅠ.

그동안 오지도 않던 비가 오후부터 심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삼청동에 있을 때만해도 그나마 우산을 쓰면 돌아다닐만 했었는데, 광화문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걸어다니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세종문화회관 입구 처마 밑에서 비가 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엄마, 언제까지 여기 있을거야?" 하며 징징대는 아이들...

'내가 더 궁금하다, 이 녀석들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해 봤지만, 비는 기세를 더 해 가고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웠다. 결국, 사전 답사로서의 마지막 기회를 포기하고 정동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시복식 날짜가 다가오니, 시복식날 교통 통제 정보가 인터넷에 뜨기 시작했다. 교통청에서 게시한 지도를 보니, 광화문 광장앞을 어떤식으로 사용할 것인지 대략 감이 잡혔다. 그동안 광화문 앞을 지날때마다 봐 둔 두 지점,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과 문화체육관광부 건물의 옆 계단 정도면 괜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교황님이 한국에 도착했다고, TV랑 뉴스에 교황님의 행보가 거의 생중계 되다 시피 하고 있었다. 그치만 나는, TV보다는 인터넷에서 지도 하나를 뚫어지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교통 통제 관련 지도보다 더 상세한, 시복식날의 폴리스 라인이 표시된 지도였다. 참석자들은 폴리스 라인 안쪽에서 미사를 보겠지만, 나 같은 구경꾼들은 폴리스 라인 바깥쪽에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이 지도는 내가 가장 알고 싶었던 정보를 담고 있었다.

막상 그 지도를 보니, 내가 자리를 잡으려고 봐 두었던 자리의 1순위였던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 건물의 옆 계단이 마치 폴리스 라인의 안쪽인 것 같이 보였다. 대충 도로와 주요 건물의 윤곽만 표시한 지도였기 때문에 구글맵의 위성 사진이랑 대조를 해 봐도 감이 잘 잡히지가 않았다. 그래도 모험을 하기에는 일초일각이 아쉬울 것이어서 이 자리를 포기하고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문제는, 그 계단까지 도달하는 경로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시복식 제대 쪽에 가장 가까운 경복궁역이 폐쇄되니 안국역에서 내린다면 광화문 앞으로 가로질러 갈 수가 없어 경복궁을 끼고 외곽으로 청와대 앞까지 빙 돌아서 3 km가량을 걸어 접근해야 하고, 경복궁 다음 역인 독립문 역에서 내린다면 버스나 택시 없이는 사직터널을 터덜터덜 걸어서 통과하는 수 밖에 없을 듯 싶으니 이건 아닌 것 같았다. 폐쇄되는 5호선 광화문역의 그 다음 정류장인 서대문 역에서 내린다면 정동 고개를 넘어 약 1.5 km를 걸어야 할 것 같고, 2호선 을지로 입구역에서 내린다해도 시청앞 광장을 끼고 돌아야 하니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는 말은 이럴때 쓰라고 생긴 게 아닐까?

나오는 건 한숨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