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28, 2015

2015년 한가위날에...

사진 출처: http://www.canterburytimes.co.uk/Solar-eclipse-2015-Skies-tobear-witness-supermoon/story-26184184-detail/story.html



오늘은 추석입니다. 개 보름 쇠듯, 송편 한 조각 먹어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루가 갔네요. 어쩌다보니 오랜만에 뜬다는 Supermoon도 보지 못하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전 어려서부터 명절을 싫어했습니다. 명절만 되면 엄마 아빠가 크게 말다툼을 하시곤 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저는 명절 같은 것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엄마 아빠 밑을 떠났어도 여전히 명절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미국에 나와 있었던 관계로 차례나 제사 준비는 하지 않아도 되었었지만, 때맞춰 전화를 드리고 명절 선물 드리는 것도 제게는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나이 탓일까요? 아니면 명절 기분 하나나지 않는 이 이국땅에 맞는 고향의 명절이라 그럴까요? 이번 추석엔 Supermoon만한 구멍이 하나 뻥 뚤린 것처럼 가슴이 그냥 휑하네요. 이것이 이제 저의 명절 증후군이라도 된 걸까요?

어제, 1분이 채 안되는 통화중에도 유난히도 저를 반기시던 아빠의 목소리에서. 아빠의 가슴 속에 자리한 Supermoon도 눈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혼자입니다.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인간에게 있어서 혼자라는 것은 그 얼마나 커다란 두려움인지... 나의 외로움을 달래줄 이 하나 없다는 것이 그 얼마나 슬프게 다가오는지...

그러나, 이 철저한 외로움의 과정을 통해... 그 외로움을 이겨내고 홀로 서고자 노력하는 이 시간을 통해... 보다 큰 사랑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겠죠. 참된 사랑이란, 상대방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순간 제가 이렇게 찾을 수 있는 하느님이 존재하신다는 사실에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외로움타는 제 자신을 존재하게 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를 사랑하시려고 제가 존재할 수 있게 해 주심을...



2015년 9월 27일

Thursday, September 24, 2015

딸아, 네 희망이 너를 구원하였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드디어 미국에 오셨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이 넒디넓은 미국땅을 가로질러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서쪽 끝에 살고 있다는 핑계로 동쪽 끝에 계시는 교황님 뵙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기도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참례했던 동네 성당의 미사 중에 신자들의 기도때에도 그분이 안전하게 방미 일정을 마치시길 바란다는 기도가 3번이나 각기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애정어린 관심을 가지고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사를 다녀와서 KBS 9시 뉴스를 보다가, 교황님의 방미 첫날의 행보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교황님의 방미가 단지 미국만의 관심사는 아닌 것 같군요. 교황님의 방미에 대한 한국의 관심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의 미국 방문 첫날 일정 중에, 오바마 대통령도 만나고 백악관에서 방문 소감을 발표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아마도 다른 분들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삼엄한 경비를 뚫고 교황님 사절의 행진 대열을 향해 뛰어나온 5살짜리 소녀와의 만남의 장면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New York Post. http://nypost.com/2015/09/24/pope-francis-beckons-5-year-old-girl-who-slipped-past-barricade/)

도대체 그 경비를 어떻게 뚫고 길 한복판으로 나왔는지, 어쩄든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소녀를 저지하는 경찰관 너머로 그 소녀를 부르는 교황님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군요. 물론, 교황님의 이런 모습을 한두번 보아온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그 모습에서, 병든 자, 가진 것 없는 자, 힘 없는 자들에게 먼저 다가가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작고 보잘것 없는 소녀에게 제 자신이 투사되면서, 덩치도 크고 힘센 무장 경찰관에게 쫓겨 들어가는 소녀를 부르며 손 내미시는 그 모습이 마치 저를 부르시는 예수님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제 영혼이 이미 나은 것 같이 느낌이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교황님의 그런 모습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한동안 묻어두고 지냈던 가슴속의 어떤 것이 깨어나 꿈틀거리게 만드는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교황이 되신지 채 일년도 되지 않아 TIME지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 소녀는 불법 이민자인 자신의 부모가 추방되지 않도록 대통령께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이 담긴 편지와 노란색 티셔츠를 교황님께 전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것은, 지난해 광화문 광장 사열 중에 몸소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가족들을 안아 주시던 것이나 성 베드로 광장에서의 일반 알현때 어린 아이를 안아 이마에 입을 맞춰 주시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아이는 어마어마한 용기를 내어 수많은 군중과 삼엄한 경비를 뚫고 자신의 바램을 전하기 위해 뛰어 나간 것이니까요.

   
      
(사진 출처: abc NEWS. http://abcnews.go.com/US/meet-young-girl-blessed-pope-francis/story?id=33981305)

우리 아이들이 5살때는 과연 무엇을 했었던가 하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무엇이 그 작은 아이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아이가 전달했다는 편지에도 언급되었듯이, 미국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차별에 대한 슬픔과 가족이 흩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겠죠. 그 슬픔과 두려움이 얼마나 컸으면 바리케이드를 뚫고 무장 경찰들을 사이를 비집고, 뉴스거리가 되었을 정도로 삼엄했던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대 테러 보안 태세를 뚫고, 한마디로 "목숨을 걸고" 뛰쳐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숨쉬고 먹고 움직이고 있지만,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상태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 소녀 (아니면 그 부모님)도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 있어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유학생 와이프로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 불법 취업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적발되었을때 추방의 위험 때문에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때도 많이 힘들었지만 일하지 않아도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었던 걸 보면, 어쩌면 그 소녀 보다는 훨씬 배부른 상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하지 않으면 가족이 굶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소녀의 부모처럼 추방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해야 했을 겁니다. 그렇게 약점이 있다 보니, 불법 체류자들은 당연히 노동법에 정해진 기준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일을 해도 불평조차 할 수가 없고, 그들을 고용하는 고용주들이 그 점을 악용하여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학대를 하는 경우도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 당하며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추방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부모님을 보고 있는 소녀도 두렵고 많이 슬펐을 것이고, 그 두려움과 슬픔이,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러한 부모에 대한 사랑이 그 작은 아이로 하여금 "목숨을 걸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그 소녀의 용기로 인하여 그 부모님은 이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이민국에서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 추방시킬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대통령 특사를 통해 지금 당장이라도 혹은 다음번 불법 체류자 구제시에 구제 대상이 되어 합법적인 미국 시민으로 살 수 있게 되겠지요. 지금 분위기 같아서는 후자의 확률이 더 높아보이긴 하지마는, 전자가 되더라도 저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본국을 떠나 남의 나라에 와서 숨어지내며 살아온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음지에 숨어서 두려움에 떨며 인간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 과연 더 나은 것인가 역시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며, "내가 이 나라와서 고생한 것 만큼 고국에서 일했더라면 정말 크게 성공했을 것"임을 주장하는 이민 1세대들도 그리 드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되든지, 그 부모님과 자신의 사정을 음지에서 양지로 바꾼 그 작은 소녀의 용기에 기립 박수를 보냅니다.

그 소녀가 쓴 편지의 결론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러한 아픔이 평화가 되리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 소녀보다는 치유의 힘을 가진 교황님의 손짓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블로그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블로그에 삽입하고 싶은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다가 우연히 그 소녀가 썼다는 그 편지의 내용을 접하게 되면서 더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차동엽 신부님이 말씀하시던 소위 "절망의 학습"이 채 이루어지기 전인 어린 나이여서 그랬을까요? 저는 그 소녀가, 미국 수도의 대 테러 대비 태세를 뚫고 뛰쳐나온 것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절망이 아닌,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음에서였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가 품었던 희망이 곧 현실이 되지 않을까하는 또 다른 희망으로, 마치 바이러스처럼 제 가슴 속으로 번져오는 것 같군요.

그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자락을 잡고는 열두해 동안 하혈하던 병이 나은 어느 여인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르 5,34ㄴ). 그 여인이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혹시 그 소녀에게 이런 말씀을 하고 싶진 않으실까요?

“딸아, 네 희망이 너를 구원하였다"

Monday, September 21, 2015

나무

옛날 옛날에 커다란 나무가 하나 있었습니다.

배고플땐 가끔씩 그 열매를 따 먹기도 하였고,
비가 올땐 펼쳐진 가지 밑에서 비를 긋기도 하였고,
지칠때는 그 나무에 기대어 한참을 앉아 있곤 하였지요.

그렇게 나무는
제가 필요할 때 언제고 찾아올 수 있도록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말없이 서 있기만 하는 나무도
다리가 아프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땅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쉬고 싶진 않을까?
나무도 가끔씩은 무언가 내게 말을 하고 싶진 않을까?
나무도 가끔씩은 가지를 접고 새처럼 훨훨 날갯짓하여 날아오르고 싶진 않을까?

나무야...
오늘은 내가 등 빌려줄께. 내 등에 기대고 앉아 잠시 쉬어 보지 않으련?

Saturday, September 12, 2015

친구에게...

"대학 선후배 분들께서 위로해 주신 덕분에
희경이의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희경이는 13년의 긴 투병생활을 한 끝에 고통없는 세상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용기와 의지, 사랑과 신앙심을 보여 주고 떠났습니다.

모두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기를 희망하는데,
너무 짧게 살았고, 너무 길게 투병생활을 하였습니다.

긴 투병생활 동안 옆에서 지켜보는게 힘들었지만,
인연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희경이를 위해서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많은 친구분들,
자신의 일인 듯 찾아와 봉사해 주시는 분들,
가족보다 더 집사람을 잘 돌봐 주었던 간병인 분들...
세상에는 좋은 인연과 사람들이 많다는걸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여러분과의 인연을 앞으로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희경이 대신 참석할 수 있도록, 여러분의 대소사도 꼭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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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쯤 전이었을까요? 저와 동갑나기 대학 동창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위의 이 글은, 그 남편분이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제 친구의 대학 동창,선후배들께 드린 감사의 편지를 허락을 받아 옮겨 온 것입니다.

그동안 대학 동창들과는 거의 연락을 하고 지내지 않고 있어서, 그 친구가 그렇게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하고 있는지도 몰랐었습니다. 아주 최근 들어서야 그 친구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요.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지 채 한달도 되지 않아서 부고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마침, 저보다 열살 많은, 아직도 아이가 저희 큰아이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이대로 떠나보내기엔 아직 너무 많은 미련이 남는 어느 형제님의 장례 미사에 다녀온 날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날, 장례 미사는 온통 눈물 바다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도 안 걸린다는 지독한 여름 콧물 감기에 걸려 코를 훌쩍거릴 수 있음이 감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눈물이 아주 많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죽음이 그렇게 슬프게만 느껴지지는 않네요. 단지, 잠시 동안의 이별의 아쉬움이 있을 뿐이란 생각이 듭니다. 10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50년 후가 될지(솔직히 이렇게 오래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니면 내일이 될지 한시간 후가 될지, 아니면 이글을 마무리도 짓기 전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저도 어차피 죽을 목숨이고, 이 세상보다 훨씬 더 좋은 곳에서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가 다시 만날 것임을 믿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그렇게 많이 슬프지도 눈물이 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죽음이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죽더라도 제 가족이나 친구들 또한 너무 슬퍼하거나 고통스러워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이 삶 속에서 늘 죽음을 대비한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왔지만, 자칫 섣부르게 했다가는 그들에게 괜한 충격을 주거나 걱정거리를 심어주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동갑내기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함께 해야 겠다는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지아나: "영희야, 한국에 있는 엄마 친구가 죽었대. 엄마랑 나이가 똑같은 친구야. 요즘 많이들 오래 사는데, 그 친구는 정말 일찍 간 것 같아. 영희는 엄마가 죽으면 어떨 것 같아?"

영희: "슬플거야."

(이 아이는 '죽음'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너무 아파서 오히려 무감각해지려는 노력이었을까요? 아니면 정말 자연스럽게 받아 들이고 있는 걸까요?

솔직히 저는, 생각보다 덤덤한 아이의 반응에 많이 놀랐습니다. 그 아이에게 있어서는 제가 너무나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이었었기 때문에, 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아이가 펄펄 뛰며 울고 불고 할까봐서 내심 걱정이 많았거든요. 아이가 많이 자란 걸까요?)

지아나: "맞아, 죽음은 슬픈거지. 엄마도 옛날에는 누가 죽으면 많이 슬퍼했었어. 근데 있쟎아, 인제 엄마는... 예전만큼 그렇게 슬프진 않아. 보고 싶을때 볼 수 없어서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나중에 우리는 천국에서 만날 거라는 걸 믿게 됐거든.

어차피 우리는 언젠가 다 죽을 거야. 엄마도 죽고 영희도 죽고 모든 사람은 다 죽을 거야. 단지 언제 죽을지를 모를 뿐이지. 그러니까 엄마가 죽더라도 영희가 너무 많이 슬퍼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그리고 엄마가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내일이라도 죽을 수도 있는거야. 그래도 너무 많이 슬퍼하진 않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내일 죽는다면 쪼금 슬프겠지만 아주 많이 슬프지는 않을거야, 우리는 천국에서 곧 만날 거니까...

영희가 엄마보다는 오래 살았으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엄마보다 일찍 죽는다고 하더라도 엄마는 쪼금만 슬퍼하고, 그대신 영희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줄께. 영희가 얼른 천국으로 갈 수 있도록..."

(이 말을 하다가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괜한 소리를 했나 싶기도 하고...)

"영희야, 연옥이란 거 들어봤지? 사람이 죽으면 연옥 상태에 있게 되고, 그 영혼이 천국에 가려면 기도가 많이 필요한데, 연옥 상태의 영혼은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할 수가 없대. 살아있는 사람들과 이미 천국에 있는 성인들이 그 영혼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한대. 엄마가 죽으면, 영희가 엄마를 위해서 기도 많이 해 줄래?"

(그리고, 대사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저를 위해 한번만 전대사를 해 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영희: "그래"

지아나: (혼자 속으로) '달밤에 왠 유언장???'

(이미 깜깜해진 늦은 저녁 시간에 차를 타고 가면서 나누었던 이야기였던지라, 아이의 반응을 목소리로 밖에는 짐작할 방법이 없었지만, 의외로, 아이가 거부감을 느끼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지아나: "영희야, 엄마가 이런 얘기해서 혹시 무섭거나 그렇진 않아?"

영희: "아니"

지아나: (속으로) '휴우~~ '


그런 대화가 있고나서 열흘 쯤 지났을때, 그러니까 바로 어제, 그 친구의 남편이 감사 인사를 글로 전해왔습니다. 그 글을 읽으면서 이틀전에 보았던 미주판 평화 신문 8월 30일자에 실린 <묵상시와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남편분이 보내오신 글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13년이란 세월 동안에 겪었을 "슬픔과 괴로움과 아픔"이 배어 있었고, 그 속에서 피어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이 저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선물"인 "인생의 하루하루가 얼마나 고마운 날들인가"를 새삼 깨닫게 해 줍니다.



하루하루가 이 얼마나 고마운 날들입니까? 하루하루가 이 얼마나 아름다운 날들입니까? 하루하루 이렇게 숨쉬며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행복한 날들입니까?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이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오늘따라, 대학 다닐때의 그 친구 모습이 생각납니다. 사순 동안 금식 한다고 "나 배고파..." 하던 그 목소리, 그 당시 천주교 신자가 아니었던 제게는 마냥 신비롭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던 손가락의 그 묵주 반지...



친구야,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니? 
그동안 연락도 통 못하고 그렇게 아픈 줄도 전혀 모르고,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너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해.

우리 그동안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언젠가 다시 꼭 보자.
행복한 곳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때까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께.


P.S.) 근데, 너 남편 하나는 참 잘 만난 것 같다, 얘!


2015년 9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