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드디어 미국에 오셨습니다. 마음같아서는 이 넒디넓은 미국땅을 가로질러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었지만, 서쪽 끝에 살고 있다는 핑계로 동쪽 끝에 계시는 교황님 뵙는 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기도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참례했던 동네 성당의 미사 중에 신자들의 기도때에도 그분이 안전하게 방미 일정을 마치시길 바란다는 기도가 3번이나 각기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나왔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애정어린 관심을 가지고 그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미사를 다녀와서 KBS 9시 뉴스를 보다가, 교황님의 방미 첫날의 행보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교황님의 방미가 단지 미국만의 관심사는 아닌 것 같군요. 교황님의 방미에 대한 한국의 관심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의 미국 방문 첫날 일정 중에, 오바마 대통령도 만나고 백악관에서 방문 소감을 발표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제 눈을 사로잡은 것은(아마도 다른 분들도 비슷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삼엄한 경비를 뚫고 교황님 사절의 행진 대열을 향해 뛰어나온 5살짜리 소녀와의 만남의 장면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New York Post.
http://nypost.com/2015/09/24/pope-francis-beckons-5-year-old-girl-who-slipped-past-barricade/)
도대체 그 경비를 어떻게 뚫고 길 한복판으로 나왔는지, 어쩄든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온 소녀를 저지하는 경찰관 너머로 그 소녀를 부르는 교황님의 모습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펑펑 쏟아지더군요. 물론, 교황님의 이런 모습을 한두번 보아온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그 모습에서, 병든 자, 가진 것 없는 자, 힘 없는 자들에게 먼저 다가가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작고 보잘것 없는 소녀에게 제 자신이 투사되면서, 덩치도 크고 힘센 무장 경찰관에게 쫓겨 들어가는 소녀를 부르며 손 내미시는 그 모습이 마치 저를 부르시는 예수님 같이 느껴졌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도, 제 영혼이 이미 나은 것 같이 느낌이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교황님의 그런 모습에서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한동안 묻어두고 지냈던 가슴속의 어떤 것이 깨어나 꿈틀거리게 만드는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교황이 되신지 채 일년도 되지 않아 TIME지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 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그 소녀는 불법 이민자인 자신의 부모가 추방되지 않도록 대통령께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이 담긴 편지와 노란색 티셔츠를 교황님께 전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것은, 지난해 광화문 광장 사열 중에 몸소 차에서 내려 세월호 유가족들을 안아 주시던 것이나 성 베드로 광장에서의 일반 알현때 어린 아이를 안아 이마에 입을 맞춰 주시던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아이는 어마어마한 용기를 내어 수많은 군중과 삼엄한 경비를 뚫고 자신의 바램을 전하기 위해 뛰어 나간 것이니까요.
(사진 출처: abc NEWS.
http://abcnews.go.com/US/meet-young-girl-blessed-pope-francis/story?id=33981305)
우리 아이들이 5살때는 과연 무엇을 했었던가 하는 기억을 더듬으면서, 무엇이 그 작은 아이를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 아이가 전달했다는 편지에도 언급되었듯이, 미국 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차별에 대한 슬픔과 가족이 흩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겠죠. 그 슬픔과 두려움이 얼마나 컸으면 바리케이드를 뚫고 무장 경찰들을 사이를 비집고, 뉴스거리가 되었을 정도로 삼엄했던 미국 수도 워싱턴 DC의 대 테러 보안 태세를 뚫고, 한마디로 "목숨을 걸고" 뛰쳐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숨쉬고 먹고 움직이고 있지만, 살아도 살아있지 않은 상태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 소녀 (아니면 그 부모님)도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 있어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유학생 와이프로서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동안 불법 취업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적발되었을때 추방의 위험 때문에 아예 시작조차 하지 못했었습니다. 그때도 많이 힘들었지만 일하지 않아도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었던 걸 보면, 어쩌면 그 소녀 보다는 훨씬 배부른 상황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하지 않으면 가족이 굶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 소녀의 부모처럼 추방의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해야 했을 겁니다. 그렇게 약점이 있다 보니, 불법 체류자들은 당연히 노동법에 정해진 기준보다 훨씬 열악한 조건에서 일을 해도 불평조차 할 수가 없고, 그들을 고용하는 고용주들이 그 점을 악용하여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학대를 하는 경우도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 당하며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그러면서도 혹시라도 추방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부모님을 보고 있는 소녀도 두렵고 많이 슬펐을 것이고, 그 두려움과 슬픔이,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러한 부모에 대한 사랑이 그 작은 아이로 하여금 "목숨을 걸게"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그 소녀의 용기로 인하여 그 부모님은 이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이민국에서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 추방시킬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대통령 특사를 통해 지금 당장이라도 혹은 다음번 불법 체류자 구제시에 구제 대상이 되어 합법적인 미국 시민으로 살 수 있게 되겠지요. 지금 분위기 같아서는 후자의 확률이 더 높아보이긴 하지마는, 전자가 되더라도 저는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본국을 떠나 남의 나라에 와서 숨어지내며 살아온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음지에 숨어서 두려움에 떨며 인간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생활을 한다는 것이 과연 더 나은 것인가 역시 그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며, "내가 이 나라와서 고생한 것 만큼 고국에서 일했더라면 정말 크게 성공했을 것"임을 주장하는 이민 1세대들도 그리 드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느 쪽이 되든지, 그 부모님과 자신의 사정을 음지에서 양지로 바꾼 그 작은 소녀의 용기에 기립 박수를 보냅니다.
그 소녀가 쓴 편지의 결론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러한 아픔이 평화가 되리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 소녀보다는 치유의 힘을 가진 교황님의 손짓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블로그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블로그에 삽입하고 싶은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다가 우연히 그 소녀가 썼다는 그 편지의 내용을 접하게 되면서 더 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차동엽 신부님이 말씀하시던 소위 "절망의 학습"이 채 이루어지기 전인 어린 나이여서 그랬을까요? 저는 그 소녀가, 미국 수도의 대 테러 대비 태세를 뚫고 뛰쳐나온 것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절망이 아닌, 아직도 희망을 품고 있음에서였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녀가 품었던 희망이 곧 현실이 되지 않을까하는 또 다른 희망으로, 마치 바이러스처럼 제 가슴 속으로 번져오는 것 같군요.
그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 군중에 섞여 예수님 뒤로 가서 그분의 옷자락을 잡고는 열두해 동안 하혈하던 병이 나은 어느 여인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죠.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마르 5,34ㄴ). 그 여인이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혹시 그 소녀에게 이런 말씀을 하고 싶진 않으실까요?
“딸아, 네 희망이 너를 구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