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24, 2014

"8월의 크리스마스" - 4분의 1

이번 여름, 6년만에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2달도 더 넘도록, 아주 티가 많이 나게 다녀왔지요. 미국에 돌아오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국 잘 다녀왔느냐고 묻더군요. 물론, '아주 자~알 다녀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개학이 곧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개학 직전까지 한국에 머무른 이유를 아는 사람들은 다른 질문을 합니다, 시복식 잘 다녀왔느냐고... 제 대답은 '아니요, 못 갔습니다' 였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시복식 미사에 참석하지는 못하고 그냥 돌아왔지만, 단순히 "아니요, 못 갔습니다" 하고 짧은 한마디로 넘어가기에는 그 뒤에 못다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네요. 그래서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적어두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시간순으로 일지를 적듯이 적어보았습니다.


[2014년 3월 8일 토요일]

어느 반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교황님이 8월에 한국을 방문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번 여름에 한국에 다녀올 예정인데 교황님 일정에 맞추어 얼굴이라도 한번 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자, 갑자기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갔다.


[2014년 5월 17일 토요일]

교황님의 방한 소식을 들었던 바로 그 반모임이 있었다.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시복식에 진짜 갈 거냐고...

틈날때마다 교황님의 방한 일정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있다가, 일정이 확정되고 나자 그에 맞춰 비행기표를 이미 끊어 놓은 상태였다. 큰아이 학교의 개학과 일정이 맞물려서 고민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교황님을 볼 수 있으랴 싶어 과감하게 질렀다. 이제는 틴에이저가 된 큰 아이는, 시차 적응도 안 되고 학교 생활 시작에도 지장이 있을거라며 엄청나게 불만을 토로했지만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이건 일생에 두번 오지 않을 기회야."

사람들이 몹시 부러워했다. 나도 기대가 많이 되었다. 어떤 자매님은 예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한국 순교자 103위의 시성식을 여의도 광장에서 집전할때 엄마를 따라 갔었는데, 그때 하늘에 나타난 십자가를 보았다고 했다. 얼마전에 몇몇 다른 분들부터도 그때 하늘의 십자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번 시복식때에도 그와 비슷한 또 다른 신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대가 더 많이 되었다.


[2014년 6월 4일 수요일]

얼마전부터 성당에 교황님 얼굴이 들어있는 포스터가 붙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은 별로 주의깊게 들여다 보지 않았는데, 오늘은 길잡이 학교를 다녀오는 길에 무심결에 포스터를 들여다 보게 되었다.

  


시복식 참가 신청 안내 포스터였다. 시복식 참석과 더불어 여기저기 성지 순례를 하는, 결국은 관광 상품처럼 보였다. 한국어권 신자는 5박 6일 동안 약 900불의 비용을 들여 성지 순례를 하게 되지만, 영어권 신자는 기간도 두배였고 약 1700불의 비용이 필요했다. 나와 아이들 둘을 감안하면 한국어권으로 신청을 해도 거의 삼천불에 해당하는 돈이, 하지만 사실상 영어가 더 편한 아이들때문에 영어권으로 신청을 하게 되면 오천불이 넘는 돈이 필요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성지 순례 코스에 포함된 몇몇 성지는 이미 방문했던 적이 있었고,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려면 이미 한국에서 체류하고 있는 와중이어서 이중으로 숙박비를 물어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헐~ 참가비가 꽤 비싸네... 난 안 되겠다.'

대충 읽어보고 지나쳐 몇걸음 가다가, 그치만 왠지 모르게 이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걸음을 돌려서 다시 포스터 앞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2014년 6월 7일 토요일]

드디어 내일이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출국일이 주일이었던 관계로, 토요 특전 미사를 드리러 가면서 만나는 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본당 신부님께도 인사를 드렸는데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으셨다.

지아나: "8월말이나 되어야 될 것 같아요."

본당 신부님: "꽤 오래 계시네요."

지아나: "네, 한국간 김에 시복식도 보고 오려고요..."

본당 신부님: "응? 그거 신청해야 갈 수 있는데? 신청했어요?"

지아나: "아니요? 신청이요???"

본당 신부님: "교구에서 하는 거 보니까, 신청한 사람만 갈 수 있는 것 같던데... 알아서 잘 하실 줄 알았지."

지아나: #@%$...

신부님이 계속해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귀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나도 뭐라고 대답을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신청??? 예전에 시성식 참석했다는 사람들 아무에게서도 신청해서 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맨날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더니만 결국은 한건 했구나 ㅠㅠ...'

신부님 어깨 너머로, 시복식 참석 신청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1차 신청 마감일은 6월 20일.

'저 돈을 내고 신청을 하면 아직도 가능은 하겠구나... 근데... 정말 저렇게 하지 않고는 갈 수가 없는 걸까?'


[2014년 6월 9일 월요일 ~ 6월 13일 금요일]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시복식에 어떻게 참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여기저기 물어보았다.

"이미 1차와 2차에 걸쳐 참석을 원하는 사람들 신청을 받았고 신청자들의 신원 조회를 할 거예요. 2차 접수는 마감한 게 얼마 안 되었는데..."

"글쎄... 얼마전에 신청받고 하는 것 같던데... 난 시성식도 가보고 그래서 이번엔 신청 안 했어. 우리 본당 신부님은 그래도 서울교구 안에서 유명한 분이시니까 한번 물어볼께. 아가, 걱정하지마."

느낌이 안 좋다. 한국에서는 이미 신청이 끝난 모양이다. 혹시라도 추가 신청 접수를 받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기다리기 보다는 아직 신청 접수가 진행중인 미주 쪽에서 알아 보는게 확률적으로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지난주에 혹시나 하여 찍어둔 포스터 사진을 다시 찾게 될 줄이야...

포스터에 나와 있는 연락처를 자세히 보니 여행사 직원이다. 관광은 안하고 시복식만 참석하고 싶다고 하면 싫어할 것 같은데... 이번 북미쪽의 시복식 참석을 주관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북미주 한인 사목 사제 협의단을 통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쪽 웹사이트를 찾아 대표 연락처와 함께 여행사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시복식에만 참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하고...

꼬박 이틀 동안 답장을 기다렸다. 아무도 답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국제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포스터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몇번 울리는데 그냥 끊어 버렸다. 아무래도 여행사와 얘기하면 대답은 뻔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다시 북미주 한인 사목 사제 협의단 웹사이트를 찾아가 대표 전화 번호를 눌렀다.

다행히 시복식 관련 담당자와 직접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한국 준비측과는 북미쪽에서는 투어 패키지에 참석하는 사람들에 한해 시복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에 장담은 할 수 없으나, 나같이 시복식 참석만을 원하는 사례들이 좀 있어서 한번 알아보겠다고 하면서 참석을 원하는 사람들의 신상 정보를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까봐 얼른 이메일을 보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희망이 있어 보였다.

'휴~~ 다행이다.'


[2014년 6월 14일 토요일 ~ 6월 20일 금요일]

'포스터에 표시된 1차 마감일인 6월 20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국제 전화를 다시 한번 해 보는 게 나을까??'

아니... 마감 전에는 전화해 봐야 마감될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것 같았다.

'일단 신청의사는 밝혔고 신상 정보를 넘겼으니 마감때까지 기다려 보자.'


[2014년 6월 21일 토요일 ~ 6월 23일 월요일]

'이제 1차 마감은 되었을텐데, 하필이면 주말이라 지금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될까 모르겠네. 미국 시간으로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하나???'

미국 서부보다는 16시간이나 빠른 관계로, 한국에서는 월요일이 되고 나서도 다시 16시간을 더 기다려야 통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각이 여삼추로구나...ㅠㅠ'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한국 시각으로 24일 화요일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세수도 안 한 채로 북미주 한인 사목 사제 협의회에 국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어느 남자분... 담당자가 지금 회의 중이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전화를 받은 분께 물어보았다.

지아나: "성지 순례에는 참가하지 않고 시복식만 참석하고 싶다고 신청했던 사람인데요, 어떻게 처리가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주관측: "시복식에 관련한 문의는 OO 투어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지아나: "그건 이미 알고 있는데요, 투어 회사는 아무래도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줄 것 같아서, 사정상 투어에 참석할 수가 없어 주관 협의회 쪽에 직접 문의를 드렸었습니다."

주관측: "시복식 관련한 것은 모두 그쪽 회사로 넘겼으니 그쪽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지아나: "예전에 담당자분이 투어는 하지않고 시복식 참석만 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좌석을 더 배정받을 수 있을지 알아본다고 하셨었는데, 혹시 그 부분과 관련해서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아시는 바는 없으신가요?"

주관측: "시복식 관련해서 모두 그쪽 회사로 넘어갔으니 그쪽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지아나: "시복식 참석자 좌석 확보 같은 것은 한국 서울대교구의 시복식 준비 위원회와 직접 상의하고 결정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것도 투어 회사에서 직접 하나요?"

주관측: "시복식 관련한 것은 그 투어 회사에서 주관하고 있으니 그쪽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담당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더라면 오히려 나았으련만...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듯 녹음기처럼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가 났다. 시복식 관련해서 모든 걸 다 투어 회사에서 '주관'하고 있다면 도대체 그 포스터에 적혀있는 '주관: 북미주 한인사목 사제 협의회'란 문구의 의미는 무어란 말인가?

지아나: "그렇다면, 시복식 신청 포스터에는 북미주 한인사목 사제 협의회가 '주관'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요, 그 '주관'의 의미는 무슨 뜻입니까? 북미 지역 신자들의 시복식 참석을 위해서 북미주 한인사목 사제 협의회는 무슨 역할을 한 건가요? 투어 회사에 모든 것을 일임한다면 아무래도 비지니스를 생각해야 하니까, 투어를 하지 않고 시복식만 참석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쪽에서 원치 않을 게 뻔하지 않습니까? 이게 시복식을 위한 투어입니까? 투어를 위한 시복식입니까? 시복식이 중요한 거라면 영리단체가 아닌 사제 협의회가 오너쉽을 갖고 시복식에 참석을 원하는 사람들은 참석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원래 남들 앞에서 생각을 조리있게 얘기하는 편이 못 되는 것을 평소에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누가 이미 써 준 문장을 읽기라도 하듯이 천천히 또박또박 얘기하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 자신조차 깜짝 놀랐다.

이야기 중간에 주관측에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몇번 했던 것 같은데, 담당자가 회의 중에 잠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담당자: "*** 성당의 xxx 씨 맞으시죠? 투어 참석을 하지 않으시는 분들을 위한 추가 좌석 확보는 못한 상태이구요, 그쪽(시복식 준비 위원회)에서 참석자 신상 정보를 빨리 넘겨달라고 하는 바람에 당초 계획했던 7월 20일날 2차 접수 마감 대신 6월 25일로 모든 신청 접수를 마감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시복식 참석 관련해서는 모든 것이 투어 회사로 넘어갔기 때문에 저희도 지금으로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쪽에 연락하셔서 문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아나: (이쯤되니 더이상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더군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투어 회사로 국제 전화를 걸었다.

지아나: "혹시 성지 순례에 참석하지 않고 시복식만 참석하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한데요..."

투어 회사 담당자: "지금으로서는 시복식에 확보된 좌석보다도 신청자 수가 많아요. 그분들이 시복식 참석하려고 그 돈을 내고 성지 순례에 참석하시겠다고 하시는 건데, 그분들이 가셔야 하지 않겠어요?"

지아나: "....... 네, 알겠습니다."

그쪽에서는,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 쓴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아주 단호하게 잘라 이야기를 했다. 전화기를 내려 놓으면서, 이제는 시복식에 가보고 싶은 욕심도 같이 내려 놓아야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