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24, 2014

"8월의 크리스마스" - 4분의 1

이번 여름, 6년만에 한국에 다녀왔습니다. 그것도 2달도 더 넘도록, 아주 티가 많이 나게 다녀왔지요. 미국에 돌아오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국 잘 다녀왔느냐고 묻더군요. 물론, '아주 자~알 다녀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개학이 곧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개학 직전까지 한국에 머무른 이유를 아는 사람들은 다른 질문을 합니다, 시복식 잘 다녀왔느냐고... 제 대답은 '아니요, 못 갔습니다' 였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시복식 미사에 참석하지는 못하고 그냥 돌아왔지만, 단순히 "아니요, 못 갔습니다" 하고 짧은 한마디로 넘어가기에는 그 뒤에 못다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네요. 그래서 시간이 더 지나기 전에 적어두고 싶은 생각이 들어, 시간순으로 일지를 적듯이 적어보았습니다.


[2014년 3월 8일 토요일]

어느 반모임에 갔다가 우연히 교황님이 8월에 한국을 방문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이번 여름에 한국에 다녀올 예정인데 교황님 일정에 맞추어 얼굴이라도 한번 뵐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자, 갑자기 허파에 바람이 잔뜩 들어갔다.


[2014년 5월 17일 토요일]

교황님의 방한 소식을 들었던 바로 그 반모임이 있었다. 사람들이 내게 물었다, 시복식에 진짜 갈 거냐고...

틈날때마다 교황님의 방한 일정을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있다가, 일정이 확정되고 나자 그에 맞춰 비행기표를 이미 끊어 놓은 상태였다. 큰아이 학교의 개학과 일정이 맞물려서 고민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교황님을 볼 수 있으랴 싶어 과감하게 질렀다. 이제는 틴에이저가 된 큰 아이는, 시차 적응도 안 되고 학교 생활 시작에도 지장이 있을거라며 엄청나게 불만을 토로했지만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이건 일생에 두번 오지 않을 기회야."

사람들이 몹시 부러워했다. 나도 기대가 많이 되었다. 어떤 자매님은 예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한국 순교자 103위의 시성식을 여의도 광장에서 집전할때 엄마를 따라 갔었는데, 그때 하늘에 나타난 십자가를 보았다고 했다. 얼마전에 몇몇 다른 분들부터도 그때 하늘의 십자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번 시복식때에도 그와 비슷한 또 다른 신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기대가 더 많이 되었다.


[2014년 6월 4일 수요일]

얼마전부터 성당에 교황님 얼굴이 들어있는 포스터가 붙어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은 별로 주의깊게 들여다 보지 않았는데, 오늘은 길잡이 학교를 다녀오는 길에 무심결에 포스터를 들여다 보게 되었다.

  


시복식 참가 신청 안내 포스터였다. 시복식 참석과 더불어 여기저기 성지 순례를 하는, 결국은 관광 상품처럼 보였다. 한국어권 신자는 5박 6일 동안 약 900불의 비용을 들여 성지 순례를 하게 되지만, 영어권 신자는 기간도 두배였고 약 1700불의 비용이 필요했다. 나와 아이들 둘을 감안하면 한국어권으로 신청을 해도 거의 삼천불에 해당하는 돈이, 하지만 사실상 영어가 더 편한 아이들때문에 영어권으로 신청을 하게 되면 오천불이 넘는 돈이 필요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는, 성지 순례 코스에 포함된 몇몇 성지는 이미 방문했던 적이 있었고,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려면 이미 한국에서 체류하고 있는 와중이어서 이중으로 숙박비를 물어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헐~ 참가비가 꽤 비싸네... 난 안 되겠다.'

대충 읽어보고 지나쳐 몇걸음 가다가, 그치만 왠지 모르게 이 내용을 알고 있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걸음을 돌려서 다시 포스터 앞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집으로 돌아왔다.


[2014년 6월 7일 토요일]

드디어 내일이면 한국행 비행기를 타게 된다. 출국일이 주일이었던 관계로, 토요 특전 미사를 드리러 가면서 만나는 분들께 인사를 드렸다. 본당 신부님께도 인사를 드렸는데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으셨다.

지아나: "8월말이나 되어야 될 것 같아요."

본당 신부님: "꽤 오래 계시네요."

지아나: "네, 한국간 김에 시복식도 보고 오려고요..."

본당 신부님: "응? 그거 신청해야 갈 수 있는데? 신청했어요?"

지아나: "아니요? 신청이요???"

본당 신부님: "교구에서 하는 거 보니까, 신청한 사람만 갈 수 있는 것 같던데... 알아서 잘 하실 줄 알았지."

지아나: #@%$...

신부님이 계속해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귀에 들어오지를 않았다. 나도 뭐라고 대답을 한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신청??? 예전에 시성식 참석했다는 사람들 아무에게서도 신청해서 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맨날 우물안 개구리처럼 살더니만 결국은 한건 했구나 ㅠㅠ...'

신부님 어깨 너머로, 시복식 참석 신청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1차 신청 마감일은 6월 20일.

'저 돈을 내고 신청을 하면 아직도 가능은 하겠구나... 근데... 정말 저렇게 하지 않고는 갈 수가 없는 걸까?'


[2014년 6월 9일 월요일 ~ 6월 13일 금요일]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시복식에 어떻게 참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여기저기 물어보았다.

"이미 1차와 2차에 걸쳐 참석을 원하는 사람들 신청을 받았고 신청자들의 신원 조회를 할 거예요. 2차 접수는 마감한 게 얼마 안 되었는데..."

"글쎄... 얼마전에 신청받고 하는 것 같던데... 난 시성식도 가보고 그래서 이번엔 신청 안 했어. 우리 본당 신부님은 그래도 서울교구 안에서 유명한 분이시니까 한번 물어볼께. 아가, 걱정하지마."

느낌이 안 좋다. 한국에서는 이미 신청이 끝난 모양이다. 혹시라도 추가 신청 접수를 받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기다리기 보다는 아직 신청 접수가 진행중인 미주 쪽에서 알아 보는게 확률적으로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지난주에 혹시나 하여 찍어둔 포스터 사진을 다시 찾게 될 줄이야...

포스터에 나와 있는 연락처를 자세히 보니 여행사 직원이다. 관광은 안하고 시복식만 참석하고 싶다고 하면 싫어할 것 같은데... 이번 북미쪽의 시복식 참석을 주관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북미주 한인 사목 사제 협의단을 통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그쪽 웹사이트를 찾아 대표 연락처와 함께 여행사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시복식에만 참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하고...

꼬박 이틀 동안 답장을 기다렸다. 아무도 답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국제 전화를 걸었다. 처음엔 포스터에 있는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벨소리가 몇번 울리는데 그냥 끊어 버렸다. 아무래도 여행사와 얘기하면 대답은 뻔할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다시 북미주 한인 사목 사제 협의단 웹사이트를 찾아가 대표 전화 번호를 눌렀다.

다행히 시복식 관련 담당자와 직접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한국 준비측과는 북미쪽에서는 투어 패키지에 참석하는 사람들에 한해 시복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에 장담은 할 수 없으나, 나같이 시복식 참석만을 원하는 사례들이 좀 있어서 한번 알아보겠다고 하면서 참석을 원하는 사람들의 신상 정보를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전화를 끊자마자 혹시라도 마음이 바뀔까봐 얼른 이메일을 보냈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희망이 있어 보였다.

'휴~~ 다행이다.'


[2014년 6월 14일 토요일 ~ 6월 20일 금요일]

'포스터에 표시된 1차 마감일인 6월 20일이 다가오고 있는데,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국제 전화를 다시 한번 해 보는 게 나을까??'

아니... 마감 전에는 전화해 봐야 마감될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것 같았다.

'일단 신청의사는 밝혔고 신상 정보를 넘겼으니 마감때까지 기다려 보자.'


[2014년 6월 21일 토요일 ~ 6월 23일 월요일]

'이제 1차 마감은 되었을텐데, 하필이면 주말이라 지금 전화를 해도 통화가 될까 모르겠네. 미국 시간으로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하나???'

미국 서부보다는 16시간이나 빠른 관계로, 한국에서는 월요일이 되고 나서도 다시 16시간을 더 기다려야 통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각이 여삼추로구나...ㅠㅠ'


[2014년 6월 24일 화요일]

한국 시각으로 24일 화요일 이른 아침, 눈을 뜨자마자 세수도 안 한 채로 북미주 한인 사목 사제 협의회에 국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어느 남자분... 담당자가 지금 회의 중이라고 했다. 할 수 없이 전화를 받은 분께 물어보았다.

지아나: "성지 순례에는 참가하지 않고 시복식만 참석하고 싶다고 신청했던 사람인데요, 어떻게 처리가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를 드렸습니다."

주관측: "시복식에 관련한 문의는 OO 투어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지아나: "그건 이미 알고 있는데요, 투어 회사는 아무래도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우선권을 줄 것 같아서, 사정상 투어에 참석할 수가 없어 주관 협의회 쪽에 직접 문의를 드렸었습니다."

주관측: "시복식 관련한 것은 모두 그쪽 회사로 넘겼으니 그쪽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지아나: "예전에 담당자분이 투어는 하지않고 시복식 참석만 원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좌석을 더 배정받을 수 있을지 알아본다고 하셨었는데, 혹시 그 부분과 관련해서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아시는 바는 없으신가요?"

주관측: "시복식 관련해서 모두 그쪽 회사로 넘어갔으니 그쪽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지아나: "시복식 참석자 좌석 확보 같은 것은 한국 서울대교구의 시복식 준비 위원회와 직접 상의하고 결정해야 할 것 같은데 그런 것도 투어 회사에서 직접 하나요?"

주관측: "시복식 관련한 것은 그 투어 회사에서 주관하고 있으니 그쪽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담당자가 아니어서 잘 모르겠다고 했더라면 오히려 나았으련만...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듯 녹음기처럼 똑같은 말만 되풀이 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가 났다. 시복식 관련해서 모든 걸 다 투어 회사에서 '주관'하고 있다면 도대체 그 포스터에 적혀있는 '주관: 북미주 한인사목 사제 협의회'란 문구의 의미는 무어란 말인가?

지아나: "그렇다면, 시복식 신청 포스터에는 북미주 한인사목 사제 협의회가 '주관'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요, 그 '주관'의 의미는 무슨 뜻입니까? 북미 지역 신자들의 시복식 참석을 위해서 북미주 한인사목 사제 협의회는 무슨 역할을 한 건가요? 투어 회사에 모든 것을 일임한다면 아무래도 비지니스를 생각해야 하니까, 투어를 하지 않고 시복식만 참석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쪽에서 원치 않을 게 뻔하지 않습니까? 이게 시복식을 위한 투어입니까? 투어를 위한 시복식입니까? 시복식이 중요한 거라면 영리단체가 아닌 사제 협의회가 오너쉽을 갖고 시복식에 참석을 원하는 사람들은 참석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정말 실망스럽습니다."

원래 남들 앞에서 생각을 조리있게 얘기하는 편이 못 되는 것을 평소에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누가 이미 써 준 문장을 읽기라도 하듯이 천천히 또박또박 얘기하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 자신조차 깜짝 놀랐다.

이야기 중간에 주관측에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몇번 했던 것 같은데, 담당자가 회의 중에 잠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담당자: "*** 성당의 xxx 씨 맞으시죠? 투어 참석을 하지 않으시는 분들을 위한 추가 좌석 확보는 못한 상태이구요, 그쪽(시복식 준비 위원회)에서 참석자 신상 정보를 빨리 넘겨달라고 하는 바람에 당초 계획했던 7월 20일날 2차 접수 마감 대신 6월 25일로 모든 신청 접수를 마감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시복식 참석 관련해서는 모든 것이 투어 회사로 넘어갔기 때문에 저희도 지금으로서는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쪽에 연락하셔서 문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아나: (이쯤되니 더이상 할 수 있는 얘기가 없더군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다시 투어 회사로 국제 전화를 걸었다.

지아나: "혹시 성지 순례에 참석하지 않고 시복식만 참석하는 것이 가능한지 궁금한데요..."

투어 회사 담당자: "지금으로서는 시복식에 확보된 좌석보다도 신청자 수가 많아요. 그분들이 시복식 참석하려고 그 돈을 내고 성지 순례에 참석하시겠다고 하시는 건데, 그분들이 가셔야 하지 않겠어요?"

지아나: "....... 네, 알겠습니다."

그쪽에서는, 찬물 한 바가지를 뒤집어 쓴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아주 단호하게 잘라 이야기를 했다. 전화기를 내려 놓으면서, 이제는 시복식에 가보고 싶은 욕심도 같이 내려 놓아야 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Thursday, October 16, 2014

러버덕 (Rubber Duck)

러버덕(KBS 뉴스에서 사용한 이름)이 한국에 떴군요. 세상에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10월 13일자 KBS 뉴스를 보던 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의 목욕 장난감인 러버덕을 본따 만들어진 16미터 (6층 건물) 높이에 1톤 가량의 초대형 러버덕인데, 석촌 호수 위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네요. 플로렌타인 호프만이라는 네덜란드 설치 미술가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2007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해서 미국, 홍콩, 일본 등 전세계 순회 전시중이라고 합니다. 호숫가를 지나던 사람들은 그 초대형 오리를 보고는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가는 듯 했고, 그 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관심을 끈 것은 그 초대형 러버덕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만든 미술가의 인터뷰 내용이었습니다. 아마도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7초가 안되는 그 짧은 시간동안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To get you out of your daily life and... well... to let you stop... and look! (일상으로부터 여러분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 그리고... 음... 여러분이 (하던 일을) 멈추고... 눈길을 돌릴 수 있도록...)"

저는, 이 미술가가 "let you stop"이란 표현을 썼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사역 동사 make와 let의 차이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만약 이 미술가가 "make you stop"이란 표현을 사용했다면, 우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러버덕을 바라봐 주기를 원하는 것은 바로 그 미술가가 되지만, 그는 "let you stop"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며, 그는 단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숨돌리고 싶어 하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가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우리가 너무 앞만 보며 달려 가면서 내 주변의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가져왔기에 이런식으로 해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의 삶이 너무 바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 일도 너무 많지만, 챙겨야 할 것도 너무 많고... 나이드신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저보다도 한참 어린 친구들 중에도 깜빡깜빡하다가 어처구니 없는 실수한 얘기들을 하면서 '난 정말 문제가 많아'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글쎄... 과연 그것이 그 개인의 문제일까요? 세상의 모든 것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점점 해야할 일, 알아야할 일, 챙겨야 할 일이 많아지고 점점 더 빨리 해내지 않으면 안되도록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그 처리의 속도를 한참 넘어선 그런 세상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전속력으로 달려가더라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하면 맞겠죠. 그러다보니, 잠시 멈춰서서 숨고르기를 할 틈도 없고, 옆을 돌아볼 여유는 더더욱 없는 것이구요...

요즘같은 세상에, 하루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푹 자고 싶고, 며칠만 휴가 좀 썼으면 좋겠고,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지금 눈앞에 벌어진 일을 당장 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과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그것조차 쉽지 않은 듯 싶습니다.

이렇게 잠시 일손을 멈추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서, 이 미술가는 잠시 그럴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멈춰서서 쳐다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초대형 러버덕을 만들어서 말이죠. 그래서 이 오리는 미술 전문 전시관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일상 공간 속에서 더 진가를 발휘하는 멋진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1년쯤 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운전을 하다가 동네 어귀에 있는 Stop 싸인 앞에 잠시 멈춰 섰는데, 차 안에 타고 있던 작은 아이가 "엄마, 저기 꽃 좀 봐" 하더군요. 고개를 돌려 보니, 그 싸인 근처의 화단에 하얀색 칼라꽃이 참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꽃을 많이 보게 되더라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에 지나쳐 버리는 것이 일상이었었는데, Stop 싸인 앞에 잠시 멈춰섰다 보게 된 그 꽃을 보면서는, 닫혀진 창문 틈으로 마치 그 꽃의 향기가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가 있었습니다.

잠시 멈추지 않으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잠시 멈추지 않으면 눈에 보이긴 해도 그냥 의미없이 보내버리고 마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미술가는 저절로 눈길이 가는 이 러버덕을 통해서, 우리 일상을 잠시 멈추고 어렸을때 목욕탕에 앉아 똑같은 모양의 오리 인형을 가지고 놀던, 이제는 우리의 기억속에서 저만치 밀려나버린 그 근심걱정없던 동심의 세계로 우리를 잠시 초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우리가 잠시라도 멈추어 서기 위해서는, 이렇게 두 눈이 번쩍 뜨이도록 6층 건물 높이만큼이나 커다란 초대형 러버덕, 아니면 Stop 싸인과도 같이 싫든 좋든 멈춰서지 않으면 안되는 강제 규정이 있어야 할 정도로 세상이 녹녹치 않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되었든 잠시 멈추었을때 느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느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풀과 나무와 꽃들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안에서 솟아나는 감사와 찬미, ... 이런 것들을 좀 더 자주, 좀 더 많이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러버덕이나 Stop 싸인이 아니더라도, 좀 더 자주 멈추어서서 주변을 돌아보는 연습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멈추기 힘들면 조금만 더 천천히 가 보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목욕탕 구석에 굴러다니고 있는 조그마한 러버덕만 보더라도 금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Friday, October 10, 2014

공짜

길거리를 운전하고 지나가다 보면 집 앞의 길가에 FREE 라고 대문짝만하게 종이에 써서 붙여놓은 물건들을 보게 될 때가 있습니다. 보통은 집에서 더이상 사용하지는 않고 버리기엔 아까와 구석에 쳐박혀 있다가, 주인장이 큰 맘먹고 누구 필요한 사람있으면 가져가라 하고 내놓은 물건들입니다. 유학생 와이프로 어렵게 생활하던 당시, 크레이그 리스트를 통해 남들이 버리는 물건을 자주 얻어다 사용했던 전력이 있는지라, 누군가 집앞에 내놓은 공짜 물건이 있으면 저는 지금도 남다르게 눈여겨 보는 편입니다.

오늘은 큰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 데리러 가는 길에, 학교앞 건널목 길가에 놓여진 FREE 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공짜라는 말에 눈이 번쩍 띄였죠. 중간(?) 크기 쯤 되는 상자 였는데, FREE 라고 써진 사인이 상자 안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상자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근데 FREE 아랫쪽으로 무슨 단어가 더 써 있더군요. 5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어의 아랫쪽 절반쯤이 상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B로 시작하는 단어 같아 보였고 다음 알파벳은 1 자 같이, 그 다음은 그 두개가 반복되는 것 같아 보였는데 차를 타고 스쳐지나면서도 무슨 단어일까 머리를 굴렸습니다.

'BIBLE???'

그러고 보니, 맞는 것도 같아 보이더군요.

'도대체 어떤 사람이 Bible을 공짜로 가져가라고 내 놓은 걸까? 집에서 굴러다니던 애물단지였었나? 아주 오랜된 것이면 지금 쓰이는 것과는 표현도 조금씩 달라졌을텐데... 가구나 가정용품을 집앞에 내놓고 그냥 가져가라는 건 종종 봤어도, 쓰던 성경책을 내놓고 공짜로 가져가라는 건 정말 첨 보는군...'

그대로 상자를 지나쳐가서, 아이를 태우고 그 상자가 놓여있던 건널목에서, 빨간 신호등에 걸려 신호 대기를 하는 중이었습니다. 무심코 오른쪽 옆에서 나란히 대기하고 있는 차를 보게 되었는데, 창문이 열려진 상태여서 그 안이 다 들여다 보였습니다. 운전하는 아줌마 한분과 카풀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3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 중의 2명은 손바닥만한 수첩같은 것을 신기한 듯 들여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상당히 들어보이는 어느 백인 할아버지가 그 나머지 학생 1명에게 창문 너머로 그 수첩같이 생긴 것을 건네주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보아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제법 고급스런 재질의 양장 커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지요. 3명의 학생들은 그 수첩같이 생긴 것을 여기저기 뒤적거리고 있었고, 이번에는 운전자 아줌마가 할아버지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건네더군요.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는 어디론가 성큼성큼 걸어갔는데, 그곳에는 아까 보았던 바로 그 FREE BIBLE 상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상자 속에서 바로 그 수첩같이 생긴 것을 꺼냈고 다시 차로 돌아와서 아줌마에게 건네 주었다.

'저 수첩같이 생긴 것이 성경책이었나???'

크기가 상당히 아담한 것이 아마도 휴대하기 좋게 만든 포켓사이즈 성경책인 듯 싶었습니다. 그때 그 할아버지는 옆에 지나가는 어느 여학생에게 똑같이 생긴 성경책을 건네주려고 했는데, 그 학생은 살며시 웃으며 고개를 가로 젓고는 그냥 지나쳐 갔습니다.

'어, 이건 집에서 굴러다니던 애물단지 성경책이 아닌가벼???'

성경책 상자로 눈길이 갔습니다. 건널목에 서 있던 어느 남학생 하나가 주변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상자로 걸어가서 성경책 하나를 꺼내 이리저리 펼쳐 보았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분위기의 다른 할아버지 한 분도 그 상자에서 성경책을 꺼내고 계시더군요.

'엉?? 한 사람이 아니었어???'

건너편 건널목으로 눈을 돌리니, 건너편에도 똑같은 상자가 있었고 비슷한 차림의 할아버지 한분이 상자 옆에 서 있었습니다.

'아~~ 선교 목적으로 중학생들에게 포켓 성경책을 나눠 주고 있나 보구나...'

그때 신호등은 파란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학생들이 한꺼번에 건널목으로 쏟아져 나오는데 손에 손마다 그 성경책을 들고 있었지요. 어떤 학생은 뒤적거리는 차원을 넘어서 열심히 읽으며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궁금한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나누어 주면 과연 얼만큼의 학생들이 성경을 읽게 될까?'

성경책을 받아든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여기저기 펼쳐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과연 어떤 구절이 눈에 들어왔을까요? 그들은 과연 언젠가 알게 될까요? 영원한 삶으로 가는 열쇠를 오늘 공짜로 받았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