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해서, 교황님이 이번 여름에 방한하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 순간부터 그렇게 바라고 나름 준비해왔던 시복식에 가 보지 못 했습니다. 아쉬움은 컸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군요. 아마도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남기지 않고 다 시도해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순조롭게 시복식 미사 참석을 신청하여 티켓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신청서 제출하고 나서 룰루랄라하고 있다가 티켓 받아가라는 공지가 나오기가 무섭게 줄서서 받아 챙겨놓은 다음, 당일날 6시까지 푹 자고 지하철 타고 나가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드리고 돌아왔겠죠. 인증샷 열심히 날리고, 혹시 운이 좋았다면 교황님 사진 하나 건졌을테구요. 그리고나서 카톡이나 페북에 사진 대문짝만하게 올려놓고 뿌듯해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치만, 그렇게 해서 제게 남은 건 아마도 그 인증샷 몇장이 전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교황님은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저희한테 오셔서 너무너무 많은 선물을 주고 가셨어요. 크리스마스 같아요. 8월의 크리스마스..."
교황님의 방한 기간 중 3일간의 행보를 다룬 8월 24일자 KBS "다큐 3일 - 8월의 크리스마스"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어느 자매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 자매님은 과연 어떤 선물을 받았기에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이 더운 한여름에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난 산타클로스... 저는 과연 그분에게서 어떤 선물을 받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도 오란 사람없던 시복식... 거기에 어떻게든 껴 보고 싶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노력을 계속 하면서, 이렇게까지 시복식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정말 무엇인지, 이것이 제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되었었지요. 제가 그토록 시복식에 가고 싶어했던 것은 결국, "그 유명인사를 가까이서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저 같은 사람이 언감생신 "구경"이라도 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꿀 수 있도록 그 "유명인사"가 어떻게 이렇게 "가까이" 오게 되었는지부터 스스로 따져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순교자들의 시성식이나 시복식을 바티칸이 아닌 그들의 나라에서 직접 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것인데, 이번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에서 시복식을 하신 것 뿐만 아니라 25년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시성식을 하신 이유가, 그만큼 한국 천주교의 위상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매스컴 등을 통해 들어왔던 것이긴 했지만, 그 위상이 높아지게 되었던 이유인 한국 천주교회의 탄생 과정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 이유에 대해 스스로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뿌리와 진리를 탐구하던 젊은이들이 천주교 교리서를 통해 그 진리를 찾게 되고, 정답을 찾은 것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려는 노력을 통해 외부 선교사의 도움없이 스스로 종교의 싹을 틔워, 미사 성제와 성사 집행을 할 수 있도록 신부님을 보내 달라고 북경주교에게 밀사를 보내어 요청을 하는 과정에서 북경주교가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세상 어디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생적인 교회의 탄생으로 온 세상에 서프라이즈를 했던 한국 천주교... 이런 것들을 알아 가면서, 한국 천주교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단지 한가지 종교의 차원을 넘어서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읽으면서도 진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그 시대를 지배하는 사상에 굴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자신의 신앙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한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둘째아이가 입고 있던 시복식 기념 티셔츠를 보고 "한국에 천주교 신자가 그렇게 많은줄 몰랐다"는 어느 백인 의사의 얘기에, '근데 그 천주교가 한국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면 더 놀랄걸??' 하는 말을 해 주고 싶었던 제 자신의 변화가, 아마도 이 8월의 크리스마스에 받았던 가장 큰 선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 외에도, 교황님 개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그런분이 제 종교의 리더라는 사실에 정말 기쁘고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에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속이 울렁거리게 하는 큰 선물이었습니다.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저희한테 오셔서" 생각지도 않은 많은 선물을 안겨주고 가신 분... '프란치스코 교황님'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분의 새하얀 수단보다도 더 눈부시게 환한 미소를 떠올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교황님이 한국에 도착했던 그 순간부터, 기대만큼 밝지 않던 그분의 얼굴로 인해 "한국의 더운 날씨로 인해 관절염이 도지셨나 부다", "일정이 너무 빡빡한 거 아니냐", "한국이 너무 상처가 많은 나라이다 보니 그 아픔이 너무 크게 느껴지나 보다" 하며 많은 추측들이 난무했었거든요.
원래 자주 웃지 않는 분인데 가끔씩 보이는 환한 미소가 사진에 담기고, 그런 모습이 미디어에 오르내리면서 우리에게는 그 환한 미소가 낯익게 되어 버린건지, 아니면 정말 무슨 이유가 있어서 잘 웃지 않으신 건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큐 3일"에 등장했던 어느 자동차 노조의 노조원이,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기도해 달라",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 기도해 달라", 이것을 위해 기도해 달라, 저것을 위해 기도해 달라, ... 우리는 끊임없이 그분께 이거해 달라 저거해 달라하며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이야기를 했을때 정말 가슴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그 많은 요구를 단 하나도 거절하지 않으셨지요.
그 다큐멘터리에 보면, 교황님이 꽃동네를 방문하셨을 때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고 장애우들이 준비한 공연도 지켜 보십니다. 그런데 그 중, 지체 장애가 심해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장애우가 건넨 편지를 받고는 순간 환하게 밝아지는 그분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하네요. 그 순간 알았습니다.
교황님으로 선출된 직후 성 베드로 광장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분으로부터 강복을 받고자 기다리던 군중들에게, "제가 여러분께 강복을 드리기 전에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 강복해 주십시요" 하셨던 분, 한 종교의 최고 수장임에도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아무도 돌보지 않는 보잘것없는 이들의 발에 입을 맞추시는 분, 마피아의 돈세탁 창구로 공공연히 알려져있는 바티칸 은행에 개혁의 칼을 들이대신 분, 천주교 내부에서조차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동성애자들을 끌어안으시는 분... 그분이야말로 저희들의 기도가 정말 많이 필요한 분이시라는 것을...
산타클로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몰래 굴뚝을 타고와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갑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산타클로스를 위해 아이들이 쿠키와 우유를 준비해서 굴뚝 앞에 놓고 자러 들어가지요.
그날 이후로 저는 하얀 옷의 산타클로스를 위해 매일매일 쿠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분을 위한 지향이 매일매일의 제 9일 기도에 추가되었거든요. 이제는 매일매일 크리스마스가 된 것 같네요. 비록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과 정성이 담긴 선물이랍니다. 제 기도가 그분께 닿아 매일매일 한번씩 더 환하게 미소지으시길...
메리 크리스마스, 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