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25, 2014

지아나는 지금...

제 블로그를 보시는 분들 모두 아마도 '지아나'라는 이름이 생소하실 거란 생각이 듭니다. 어떤 분들은 왜 지아나냐고 물으시기도 하지만, 묻지 않는 분들도 계시네요.

'지아나'는 제가 Nursing School 다니는 동안 붙었던 별명입니다. 미국 사람들에게는 그리 쉽지 않은 한국 이름 대신에 쉽게 부를 수 있는 영어 이름을 만들어 보기도 했었지만, 과 친구들이나 실습 조교들은 굳이 제 원래의 이름을 불러주려고 노력을 많이 하더군요. 어느 실습 조교가 제 이름을 부르는데, 그 사람 특유의 액센트 때문에 "지안~나" "지안~나" 하며 부르는 것이 재미있어, 과 친구들이 그 사람의 액센트를 흉내내며 저를 "지안~나" "지안~나" 하며 부르면서 '지아나'가 제 별명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꾸 듣다 보니까 한국식으로도 "영희야~"하고 부를때처럼 제 이름을 부르면 '지아나' 같이 들리는 것 같아 진짜 제 이름같다는 생각도 들고, 단 8시간의 시프트 동안 만나게 되는 환자들에게도 기억하기 쉽고, 스타벅스에서 이름을 물어봐도 이 이름을 대면 굳이 스펠링까지 불러주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이 이름을 제 영어 이름으로 쓰기 시작했지요. 여기 블로그에도 제 이름 대신 이 이름을 쓰게 되는 군요.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 말씀드렸습니다.

또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제가 간호사 자격증 시험 준비 중입니다. 만만한 시험이 아닌지라 한동안은 속세와 인연을 끊고 공부에 전념해야 할 것 같아서, 당분간은 블로그도 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더라도 걱정하지 마시고 가끔 생각나면 맘속으로 응원 부탁드립니다.

다음 번 글에는 좋은 소식과 함께 인사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조만간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Monday, November 17, 2014

"8월의 크리스마스" - 4분의 4

그렇게 해서, 교황님이 이번 여름에 방한하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 순간부터 그렇게 바라고 나름 준비해왔던 시복식에 가 보지 못 했습니다. 아쉬움은 컸지만, 그래도 후회는 없군요. 아마도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남기지 않고 다 시도해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순조롭게 시복식 미사 참석을 신청하여 티켓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신청서 제출하고 나서 룰루랄라하고 있다가 티켓 받아가라는 공지가 나오기가 무섭게 줄서서 받아 챙겨놓은 다음, 당일날 6시까지 푹 자고 지하철 타고 나가 경건한 마음으로 미사드리고 돌아왔겠죠. 인증샷 열심히 날리고, 혹시 운이 좋았다면 교황님 사진 하나 건졌을테구요. 그리고나서 카톡이나 페북에 사진 대문짝만하게 올려놓고 뿌듯해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치만, 그렇게 해서 제게 남은 건 아마도 그 인증샷 몇장이 전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교황님은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저희한테 오셔서 너무너무 많은 선물을 주고 가셨어요. 크리스마스 같아요. 8월의 크리스마스..."

교황님의 방한 기간 중 3일간의 행보를 다룬 8월 24일자 KBS "다큐 3일 - 8월의 크리스마스"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어느 자매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 자매님은 과연 어떤 선물을 받았기에 그런 말씀을 하신 걸까요?

이 더운 한여름에 하얀 옷을 입고 나타난 산타클로스... 저는 과연 그분에게서 어떤 선물을 받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도 오란 사람없던 시복식... 거기에 어떻게든 껴 보고 싶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노력을 계속 하면서, 이렇게까지 시복식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는 정말 무엇인지, 이것이 제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되었었지요. 제가 그토록 시복식에 가고 싶어했던 것은 결국, "그 유명인사를 가까이서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저 같은 사람이 언감생신 "구경"이라도 해 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꿀 수 있도록 그 "유명인사"가 어떻게 이렇게 "가까이" 오게 되었는지부터 스스로 따져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순교자들의 시성식이나 시복식을 바티칸이 아닌 그들의 나라에서 직접 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것인데, 이번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한국에서 시복식을 하신 것 뿐만 아니라 25년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도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시성식을 하신 이유가, 그만큼 한국 천주교의 위상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매스컴 등을 통해 들어왔던 것이긴 했지만, 그 위상이 높아지게 되었던 이유인 한국 천주교회의 탄생 과정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그 이유에 대해 스스로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삶의 뿌리와 진리를 탐구하던 젊은이들이 천주교 교리서를 통해 그 진리를 찾게 되고, 정답을 찾은 것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그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삶에서 실천하려는 노력을 통해 외부 선교사의 도움없이 스스로 종교의 싹을 틔워, 미사 성제와 성사 집행을 할 수 있도록 신부님을 보내 달라고 북경주교에게 밀사를 보내어 요청을 하는 과정에서 북경주교가 교황청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세상 어디에서도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자생적인 교회의 탄생으로 온 세상에 서프라이즈를 했던 한국 천주교... 이런 것들을 알아 가면서, 한국 천주교에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게 된 것도 사실이지만, 단지 한가지 종교의 차원을 넘어서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읽으면서도 진리를 알아보는 눈을 가지고 있는, 그리고 그 시대를 지배하는 사상에 굴하지 않고 진리를 받아들여 자신의 신앙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한민족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둘째아이가 입고 있던 시복식 기념 티셔츠를 보고 "한국에 천주교 신자가 그렇게 많은줄 몰랐다"는 어느 백인 의사의 얘기에, '근데 그 천주교가 한국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면 더 놀랄걸??' 하는 말을 해 주고 싶었던 제 자신의 변화가, 아마도 이 8월의 크리스마스에 받았던 가장 큰 선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 외에도, 교황님 개인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그런분이 제 종교의 리더라는 사실에 정말 기쁘고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에의 기억은 아직까지도 속이 울렁거리게 하는 큰 선물이었습니다.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저희한테 오셔서" 생각지도 않은 많은 선물을 안겨주고 가신 분... '프란치스코 교황님'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많은 분들이 그분의 새하얀 수단보다도 더 눈부시게 환한 미소를 떠올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교황님이 한국에 도착했던 그 순간부터, 기대만큼 밝지 않던 그분의 얼굴로 인해 "한국의 더운 날씨로 인해 관절염이 도지셨나 부다", "일정이 너무 빡빡한 거 아니냐", "한국이 너무 상처가 많은 나라이다 보니 그 아픔이 너무 크게 느껴지나 보다" 하며 많은 추측들이 난무했었거든요.

원래 자주 웃지 않는 분인데 가끔씩 보이는 환한 미소가 사진에 담기고, 그런 모습이 미디어에 오르내리면서 우리에게는 그 환한 미소가 낯익게 되어 버린건지, 아니면 정말 무슨 이유가 있어서 잘 웃지 않으신 건지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큐 3일"에 등장했던 어느 자동차 노조의 노조원이,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해 기도해 달라",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 기도해 달라", 이것을 위해 기도해 달라, 저것을 위해 기도해 달라, ... 우리는 끊임없이 그분께 이거해 달라 저거해 달라하며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요구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이야기를 했을때 정말 가슴깊이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그 많은 요구를 단 하나도 거절하지 않으셨지요.

그 다큐멘터리에 보면, 교황님이 꽃동네를 방문하셨을 때의 모습이 나옵니다. 이 사람 저 사람과 만나고 장애우들이 준비한 공연도 지켜 보십니다. 그런데 그 중, 지체 장애가 심해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는 장애우가 건넨 편지를 받고는 순간 환하게 밝아지는 그분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교황님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하네요. 그 순간 알았습니다.

교황님으로 선출된 직후 성 베드로 광장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분으로부터 강복을 받고자 기다리던 군중들에게, "제가 여러분께 강복을 드리기 전에 여러분들이 저를 위해 강복해 주십시요" 하셨던 분, 한 종교의 최고 수장임에도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아무도 돌보지 않는 보잘것없는 이들의 발에 입을 맞추시는 분, 마피아의 돈세탁 창구로 공공연히 알려져있는 바티칸 은행에 개혁의 칼을 들이대신 분, 천주교 내부에서조차 어둠 속에서 숨죽이고 있는 동성애자들을 끌어안으시는 분... 그분이야말로 저희들의 기도가 정말 많이 필요한 분이시라는 것을...

산타클로스는 크리스마스 이브에 몰래 굴뚝을 타고와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갑니다. 미국에서는 그런 산타클로스를 위해 아이들이 쿠키와 우유를 준비해서 굴뚝 앞에 놓고 자러 들어가지요.

그날 이후로 저는 하얀 옷의 산타클로스를 위해 매일매일 쿠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분을 위한 지향이 매일매일의 제 9일 기도에 추가되었거든요. 이제는 매일매일 크리스마스가 된 것 같네요. 비록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제 마음과 정성이 담긴 선물이랍니다. 제 기도가 그분께 닿아 매일매일 한번씩 더 환하게 미소지으시길...

메리 크리스마스, 파파!

Sunday, November 9, 2014

"8월의 크리스마스" - 4분의 3

[2014년 8월 15일 금요일]

오늘은 성모승천대축일인 관계로 미사를 봐야 했다. 가까운 동네 성당에 가려고 했던 계획은, 아침에 꾸물거리는 아이들로 인해 무산되고 결국은 조금 늦은 시간에도 미사를 볼 수 있는 명동 성당으로 바뀌게 되었다.

여늬때처럼 줄을 서서 기다려 입장했지만, 제대가 통 보이지도 않는 기둥뒤 밖에는 자리가 남아있지 않았다. 평소에 노래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 어느 미사에 가더라도 성가대에 자꾸 눈이 가는 편인데, 예전과는 달리 제대옆의 성가대 자리가 비어있었다. '오늘은 성가대없이 미사를 하나?' 하고 있었는데, 미사가 시작되자 입당 성가가 윗층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른 때에 비해 훨씬 듣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작부터 윗층에서 하지...'

그런데, 참회 예식이 끝나고 이어지는 대영광송의 신부님 선창이 심상치가 않다. 이제는 미사 중에 자주 사용되지 않는 라틴 전례 음악인 듯 싶었다. 따라 부를수가 없으니 듣는 수 밖에... 유니송과 화음, 남성과 여성의 목소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가운데 라틴 전례 음악 특유의 무게와 느낌이 잘 살아나면서 코 끝에 마치 분향할 때의 향내음이 풍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독서에 이은 화답송, 알렐루야를 들으며 '아니, 명동 성당 성가대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불렀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처음으로 주임 신부님의 강론을 들을 수도 있었다. 그동안 몇차례 명동 성당에서 주일 미사를 보긴 했지만, 강론은 항상 보좌 신부님이 하셨고 마지막 공지 시간에나 주임 신부님의 말씀을 몇마디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몇마디 되지도 않는 말씀을 통해서도 그분의 내공이 심상치 않음은 그리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기에, 주임 신부님은 강론을 안 하시나 하고 궁금했던 참이었다.

강론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신앙고백과 성찬의 전례가 이어지면서, 사회자의 멘트가 나왔다. "봉헌 성가는 가톨릭 합창단에서 OOO(노래 제목 기억 안남 ㅠㅠ) 를 하겠습니다". '아... 가톨릭 합창단 이었구나. 프로들이겠네...'

너무나 아름다운 노래... 죽기 전에, 멋진 성당에서 정말 아름다운 음악 속에서 미사를 보고 싶은 바램이 있었다. 그래서 성탄절이 되면, 혹은 부활절이 되면 주교좌 성당에서 자정 미사를 드리고 싶은 생각이 늘 있었지만 실행에 옮긴 적은 없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쌍투스는 그야 말로 압권이었다. 천사들의 합창이라는 표현을 접할 때가 있는데, 정말로 천사들이 합창을 한다면 저렇게 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안 그래도 눈물이 많은 나는 또다시 찔끔거리기 시작했다.

"성체 성가는 가톨릭 합창단에서 그레고리안 아베 마리아를 부르겠습니다." 다시 사회자의 멘트가 이어졌다. 노래만 듣고 있어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성체를 모시고 났는데, 바로 옆자리의 자매님이 미사보 속으로 얼굴을 감추며 훌쩍거리는 게 보였다.

그러나 그날 미사의 정점은 천사들의 합창도 그레고리안 아베 마리아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파견 성가였다. 미사를 마치며 사회자의 멘트가 다시 이어졌다. "파견 성가는 애국가 1절과 2절을 부르시겠습니다." '애국가??' 하고 있는 순간, 전주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속이 다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이 성가책을 내려놓고 "동해물과 백두산이...' 하며 노래를 시작하는데 이것이 바로 한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옆사람이랑 왠지 손이라도 잡아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앞의 앞 줄에 있던 어느 자매님은 연신 눈가의 눈물을 훔치기 시작하였고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를 노래할 때는 모든 이들이 배에다 있는대로 힘을 주고 목이 터져라 노래하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을 나서는데, 마치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뜨거운 용광로에 들어갔다 나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명동 성당에서 미사를 본 것이 채 다섯 손가락에도 꼽지 못할 정도이긴 하지만, "30년만에 첨으로 애국가 불러보는 거야" 하시는 어느 자매님 부터해서 그날은 성당문을 나서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다른 때와는 조금 달랐다.

'내가 바티칸에서 교황님과 함께 미사를 드린다해도 이런 미사는 두번 다시 없을거야.'

그러자 갑자기 교황님 생각이 다시 들었다. 미사 중간에 '이거 혹시 교황님께서 18일날 명동 성당에서 집전하시는 미사의 예행 연습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어쩌면 그냥 대축일이라서 좀 특별하게 할 수도 있겠지 싶어 그냥 넘어 갔었다. 그런데 대축일이라고 해서 파견 성가를 애국가로 할 것 같지는 않았고, 몇십년 만에 처음으로 애국가를 불러본다는 어느 자매님 말씀이 자꾸 생각나면서 교황님 집전 미사 준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다시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니, 오늘의 이 미사가 마치 교황님이 이번 방한을 하면서 내게 주신 선물같이 느껴졌다.

그렇게 구름 위를 걷는 기분으로 성당을 나섰지만, 교황님 방한에 대비해 쫙 깔린 전투 경찰과 각종 시위를 하는 그룹과 온갖 종류의 관광객들이 뒤섞여 명동 한복판은 그야말로 아우성이었다.

며칠 좀 선선하더니만 다시 기온이 올라 후덥지근한 날씨에 친구들 주고 싶다는 선물을 사기 위해 명동에서 인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콘서트 장으로 출발하기까지 약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게 되자 결국 나는, 아이들을 잠시 패스트푸드 점에 앉혀놓고는 다시 광화문으로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마지막으로, 내가 찍어놓은 자리를 직접 한번 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미 광화문 주변은 차도를 도배하다 시피 한 경찰 버스와 인도에 진을 치고 있는 전투 경찰들, 세월호 유족에 관광객들까지 차도에는 차들이, 인도에는 사람들이 발 디딜 틈없이 말할 수 없이 복잡하였다. 직접가서 보니, 범죄 현장 같은데서 볼 수 있는 노란색 테이프의 폴리스 라인이 아니라, 플라스틱 통에 물을 채워 아예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었다. 바깥 쪽으로는 사람들 몇명이 걸어다닐만한 틈만 주고는 모든 인도의 한 가운데에 바리케이트를 만들고 있었다.

 


바리케이트를 따라 세종 문화 회관 계단 쪽으로 접근하다 보니, 괜챦아 보이는 조그만 골목길 모퉁이가 눈에 들어왔다. 거기에 자리를 잡는다고 했을때 누군가 와서 쫓아내지만 않으면 꽤 괜챦아 보이는 지점이었다. '역시 직접 와 보기를 잘 했어 ㅋㅋ'

계속 해서 세종 문화 회관 계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데, 커다란 안내 지도가 눈에 들어왔다. 가서 보니, 폴리스 라인 바깥 쪽에 설치될 이동식 화장실에 대한 안내 지도였다. 적어도 화장실이 급해도 갈 수 있는 데가 있겠구나 싶어서 마음이 더 놓였다. 시복식 정식 참석자외의 구경꾼들을 위한 배려 또한 감사하게 느껴졌다. 안내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무슨 일급 기밀이라도 되는 것처럼 온몸으로 저지하는 관계자 때문에 사진은 남길 수가 없었다.

막상 내가 찍어놓았던 세종 문화 회관 계단에 도착하고 보니, 계단의 어느 쪽에 앉아도 시야가 완전히 가려질 위치에 아주 높고 커다란 시설물이 설치되고 있었다. 여기 저기 눈에 보이는 다른 전광판과는 다른 구조물인 것이 느낌에는 중계 카메라가 설치될 것 같이 보이는 그런 구조물이었다. 그쪽 계단은 제대보다 높은 지대여서 어쩌면 저격수를 배치한다든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안전 유지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고 해서 일부러 그쪽 시야를 막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진짜 직접 와 보길 잘 했어. 안 와 봤으면 이런 게 여기 서 있을지 어떻게 알았겠어? ㅋㅋ'

이쯤 되고 보니, 원래 내가 1순위로 찍었었던 대한 민국 역사 박물관 건물 옆의 계단 자리도 직접 가서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치만 30분 남은 시간동안 헐레벌떡 뛰다 시피 하며 급히 돌아보았던 광화문 전경이었던 지라 그쪽까지 가기는 어려워서 바리케이트를 어떻게 치고 있는지 먼 발치에서 볼 수 밖에 없었다. 자세한 건 잘 보기가 어려웠지만, 얼핏 보기에는 계단까지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지는 않은 듯 싶었다. 그래서 내일 그 지점으로 무조건 가 보겠다 마음을 먹었다.

'아차... 이러다 콘서트에 늦겠다'

광화문에서 종로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가 (차가 더 막혀서 뛰는 게 더 빠른 상황이었음) 아이들을 데리고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콘서트 장을 많이 다녀본 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안내 표지가 없는 콘서트장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지하철 역에서 나오는 출구부터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우왕 좌왕 하며 결국 자리까지 찾아가 앉고 나니, 완전히 기진맥진이었다.

그래도 처음엔 좀 앉아있으니 나아지는 듯 싶어서, 한동안 노래도 따라 부르고 사진도 찍고 소리도 지르고 하다가, 인제는 나이를 속일 수가 없는건지 어느 순간부터 몸이 늘어지기 시작하더니 하품이 계속 나오고 언제 집에 갈 수 있을까 시계만 보게 되었다.

5시에 시작한 콘서트... 늦어봐야 9시면 끝나지 않을까 싶었던 콘서트는 이게 왠 걸? 10시 30분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너무 늦어진 것 같아 출연진들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뛰어 나왔지만, 출구도 제대로 열어 놓질 않아서 우리집 현관문 만한 게이트 사이로 콘서트장 구경꾼의 절반이 빠져나가야 했고, 각종 우여곡절 끝에 전철역 승강장에 도착하니 11시가 넘었다. 핫도그 한개로 저녁을 떼운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투덜댔지만 전철이 끊길까봐 뭘 사 먹으러 갈 수도 없었고, 그 야심한 시각에 콘서트 관중들로 콩나물 시루같이 빡빡해진 전철에 몸을 싣고는 막차에 막차를 거듭 타서 결국 집 근처 전철역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밤 12시는 훌쩍 넘어 있었다. 전철역 출입구의 셔터가 반쯤 내려와 있는 건 예전에 가끔씩 막차를 타 본 적이 있는 나조차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8월 16일 토요일, 드디어 시복식 카운트 다운]

* 새벽 12시 30분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손만 씻고 애들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 새벽 1시
  샤워라도 하면 좀 나을 것 같은데, 두놈들 샤워 끝나려면 어느 세월에... 힘겹게 몸을 움직여 이불을 편 다음 바닥에 드러눕고 나니 마치 마비라도 된 것 같이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 새벽 2시
  방금 전에 시계를 본 게 1시였던 것 같은데, 눈 떠 보니 벌써 2시가 되어 있다. 아직도 한 놈은 샤워를 하고 있고, 잊기전에 9일 기도 해야지 싶어 기어가다시피 묵주를 가지고 와 손에 들긴 했지만 몇단까지 했을까?

* 새벽 2시 30분
  드디어 애들이 샤워를 다 마친 것 같은데, 도저히 몸이 일어나지지가 않는다. 아뿔싸... 손가락에는 힘이 다 풀리고 묵주는 방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몇단까지 한걸까? 첨부터 다시 해야 하나??? ㅠㅠ

* 새벽 4시
  눈을 감았다 뜬 것 같은데 벌써 4시다. 인제는 지하철이 다니기 시작할텐데... 원래 계획대로 한다면 30분 전에 일어나 이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나갔어야 하는데, 지금은 엎드린 채로 베개에 파묻은 얼굴을 반대로 돌려 돌아눕는 것조차 할 수가 없다.

* 새벽 6시
  불도 안 끈 채로 잠이 들어버리기는 했지만, 바깥에 하늘이 점점 밝아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6시면 꽤 늦은 시간이 되어 버렸는데, 내가 찜해 놨던 자리는 과연 아직도 비어 있을까?

* 아침 7시 30분
   시계가 6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아직도 그 자리가 비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던 것은 기억이 나는데, 누군가 시간을 훔쳐 간 것처럼 시계는 이미 7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엎어진채로 시체처럼 있었는지, 목도 아프고 팔도 저리고 얼굴도 퉁퉁 부었다. 딱딱하게 굳어진 몸을 간신히 돌려 똑바로 누웠다.
   지금 바로 나가더라도 도착하면 8시 30분... 이제는 전광판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할 텐데... 시복식에 가 보겠다는 생각은 접어야 할 것 같았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9일 기도를 처음부터 해서 마치고 난 뒤 불을 끈 다음, 다시 자리에 누워 버렸다.

* 아침 10시 10분
  화들짝 놀라 TV를 틀어보니 시복식 미사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어느 채널은 무슨 재난 현장을 생중계 하듯 급박한 목소리로 특파원을 불러가며 생중계를 하고 있었고, 어느 채널은 뉴스 진행하듯 중계를 하고 있었고, 그냥 조용히 미사드리는 기분으로 시복식을 보고 싶었지만 맘에 드는 채널을 찾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여기저기 계속 돌리다가 어느 좀 조용한 채널에 고정하고 함께 미사를 드렸다.
  광화문 광장에 가득 찬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기에 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속상해하는 나자신에게 다시 묻게 되었다.

  '내가 저기 저자리에 가서 있기 위해서 뭘 더 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아무것도 없었다.'

Saturday, November 1, 2014

"8월의 크리스마스" - 4분의 2

[2014년 6월 25일 수요일 ~ 8월 2일 토요일]

여기저기... 미국에서 세례받고 신앙 생활을 시작한 탓에 한국에는 별로 아는 사람도 없지만, 그나마 성당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한번쯤은 시복식에 참석할 방법이 없을런지 물어 본 것 같다.

"예전과는 달리 이번에는 본인 확인 절차가 철저해서 다른 사람 티켓을 이용해서 입장을 할 수 없다는 것 같아요. 사정상 못 가는 분이 생겨도 그 티켓은 본인 외에는 쓸 수가 없다고 하네요."
(ㅠㅠ)

"아가, 내 아는 신부님께 여쭤봤는데, 그쪽 성당에서는 신청자가 많아서 아예 40대, 50대 신자들 중에서만 신청받고 다른 사람들은 아예 신청도 안 받았다고 그러네. 좀 어려울 것 같아."
(ㅠㅠ)

"저희 성당에서는 각 반별로 2-3명만 신청을 받았대요. 저희도 신청 못 했어요."
(ㅠㅠ)

"이미 신청하신 분 중에서 캔슬하신 분들이 많이 생겼는데요, 추가로 접수를 받지 않아서 빈 자리가 많은데도 새로이 접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마도 전국의 신청자들 신원 조회 하고 개인 정보를 담은 티켓을 날짜에 맞춰 발행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ㅠㅠ)

그러고보니, 명동 성당에서는 신청자가 많을 경우, 추첨을 통해 참석자를 선정하겠다는 공지도 웹사이트에서 본 것 같다. 시복식에 참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럼.. 가지 말까? 아니야, 그래도 이런 기회 아니면 내가 교황님을 언제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있겠어? 성체는 모시지 못하더라도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데 앉아서 시복식 미사라도 함께 드려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근데... 애들은 어떻게 해야 하지? 확보된 자리가 없으면 최대한 일찍 가야 자리를 맡을 수 있을텐데, 입장 시작 시각인 새벽 4시부터 자리 맡으러 나가 앉아서 9시까지 기다려야 하나??? 미사 시간이 최소한 2시간은 걸릴텐데... 새벽 4시부터 11시? 12시??? 비가 오면 어쩌지? 날이 너무 더우면? 길바닥에 앉아야 하나? 방석을 챙겨 가? 배고플텐데... 화장실은? 졸리면? ... 아... 머리가 깨질 것 같다.


[2014년 8월 3일 일요일]

전날이었던 토요일은 폭염 주의보가 내려진 정말 뜨거운 날이었다. 미사 끝의 공지 시간에 명동 성당의 주임 신부님께서 한마디 덧붙이셨다.

"이제 교황님 오실때까지 정말 열흘밖에 안 남았습니다. 날이 더우면 더울까 걱정... 비가 오면 비가 올까 걱정... 정말 걱정만 가득~합니다. 여러분, 기도 좀 많이 해 주십시요. 아주 살짝 흐리게..."

한숨이 섞인 듯한 그분의 부탁 말씀이 왜 그리 내 마음에 와 닿았던 걸까? 아마도 애들 데리고 가서 자리 맡고 시복식 참관할 생각에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나의 걱정과 맞물려 그런걸까?

생각할 수록 이게 보통 일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아이들 둘 가지고도 이렇게 끙끙 거리고 있는데, 이분들은 10만명이 넘는 이들을 챙겨야 하고, 무엇보다도 교황님과 그 일행의 안전과 빡빡한 일정이 물 흐르듯 진행될 수 있도록 만전의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니.. 교황님도 아닌 주교님 모시고 2시간짜리 새성전 축성식 준비하면서도 2주 동안 2킬로그램이나 살이 빠졌던 경험이 있던 나는, 이 시복식 준비라는 것의 무게가 새삼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정말로 진심어린 기도가 간절히 필요한 일이로구나...'

그때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이번 시복식을 마치, 마이클 잭슨 내한 공연 정도로 밖에 보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까지 내게 있어서 시복식은, 이번 한국 여행에서 건져가야 할 하나의 껀수 정도로 밖에는 되지 않았고, 그때까지의 나에게 교황님이란 결국, 인증샷 하나 남겨 페북에 올려 자랑하고 싶은 그런 해외 저명 인사 중 한명이었을 뿐이었다.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게 있어서 시복식과 그토록 만나뵙고 싶었던 교황님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를 생각해 본 것이...


[2014년 8월 6일 수요일 ~ 8월 7일 목요일]

미국에서 카톡이 왔다. 지난 주일에 sbs에 방영된 "거리의 교황 프란치스코" 라는교황님에 관련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한국에서 다운받아 보내 줄 수 있을런지 물어보는 메시지였다. 그 덕분에 교황님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리저리 다운받을 방법을 알아 보다가, 그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는데, 이걸 아이들하고 같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아무리 마이클 잭슨이 방한을 해서 그 콘서트 장에 가 본다 한들, 마이클 잭슨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 봐야 그게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될까 싶어서 였다.

그리고 큰 타협을 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본다고 약속하면 시복식에는 참석하지 않아도 좋다는 거였다. 이 시복식을 참석을 위해서 시차적응도 못 한채로 개학하기 바로 전날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끊어 놓았던 나로서는 아주 큰 좌절이었다. 하지만, 교황님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도 않을 거라며 처음부터 삐딱선을 타고 있던 큰 아이와 그냥 엄마가 간다니까 뭐하는 줄도 모르고 무턱대고 따라 나설 작은 아이를 데리고 새벽 4시부터 7~8시간을, 땡볕이 될지 비를 맞고 있을지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할지 내내 서있어야 할지 화장실이나 제대로 다녀올 수 있을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차라리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복식이나 교황님에 대해 좀 더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어쩌면 교육적 차원에서 나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만 엄마랑 같이 본다면 시복식은 안 가도 좋다"
"Hurray~~"
펄쩍펄쩍 뛰며 기뻐하는 아이들 ㅠㅠ... 그게 그렇게 기뻐할 일인건가? 오히려 내가 더 당황스러워졌다.

1시간짜리 프로그램이었는데, 중간 중간 멈춰서 이야기하며 2시간 가까이 걸려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았다. 나름 노력하고 있는 엄마를 눈꼽만큼이라도 신경써 준다면 이럴 수 있을까? 큰아이는 프로그램내내 보란듯이 따분한 표정을 짓고 있었고 작은 아이는 그저 졸음이 가득한 눈이다.

'Promise is a promise! 그래, 내가 이것만 보면 시복식 안 가도 좋다고 약속을 했으니, 약속은 지킨다.'

프로그램이 끝나자 마자 갑자기 생기가 도는 아이들을 보며, 이것도 결국 내 욕심이었는지, 내려놓고 나니 차라리 내 마음도 편해졌다.

이쯤되고 나니, 비행기표를 바꾸어 빨리 미국으로 보내서 시차 적응이라도 시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결정적으로, 시복식 전날 밤에 열리는 SM 타운 월드 투어 2014 콘서트때문에 어차피 일정을 조정하기는 어렵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8월 10일 일요일]

주일 미사 끝 무렵에, 명동 성당 주임 신부님이 또 한마디 덧붙이신다. 그날은 영성체 중에 코 앞에서 사람이 쓰러지는 바람에 정신이 홀딱 나가버린 탓인지 표현이 정확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대충, '시복식에 직접 참석하고 안하고는 중요한 게 아니다. 그때는 이미 교황님과 같은 하늘 아래 있는 것이고 TV에서라도 시복식을 보면서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뭐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참석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싶으셨던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 말씀이 약간은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래.. 신청자가 많아서 제비 뽑기했는데, 거기서 꽝 뽑은 셈 치자, 뭐...' 원래 그런 쪽으로는 영 운이 따르지 않는 편이어서, 진짜로 제비를 뽑았다면 아마도 영락없는 꽝이었을 것이다.

'성체만 못 모시지, 근처에 가서 앉아있으면 되지 뭐.. 인제는 애들 챙길 필요도 없고, 나야 뭐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상관없으니까...'

명동 성당에서 삼청동으로 장소를 옮겼다가 정동에서 있는 저녁 스케쥴 사이의 잠시 시간이 비는 사이에, 발걸음을 광화문으로 옮겼다. 이제는 아주 본격적으로 사전 답사를 하고 싶었다. 어느 지점에서 자리를 잡으면 광화문 앞 (제대가 설치될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이 그나마라도 잘 보일 수 있을런지 여러 지점에서 직접 보고 싶었다.

미리 사전 답사없이 갔다가 '여기가 아닌가벼' 했다가는, 지하철, 버스할 것 없이 그 일대 지역의 교통이 모두 통제되는 상황에서 안국동에서 시청앞까지 걸어가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고, 사실 걷는 것이 두렵지는 않지만, 그 걷고 있는 와중에 "로얄석"은 눈깜짝할 사이에 다 차 버릴 것이 뻔하니 일분 일초가 중요한 상황이었다.

근데... 날씨도 안 도와주네 ㅠㅠ.

그동안 오지도 않던 비가 오후부터 심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삼청동에 있을 때만해도 그나마 우산을 쓰면 돌아다닐만 했었는데, 광화문에 도착했을 무렵에는 걸어다니기가 힘들 정도가 되었다. 세종문화회관 입구 처마 밑에서 비가 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엄마, 언제까지 여기 있을거야?" 하며 징징대는 아이들...

'내가 더 궁금하다, 이 녀석들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해 봤지만, 비는 기세를 더 해 가고 더 이상 버티기가 어려웠다. 결국, 사전 답사로서의 마지막 기회를 포기하고 정동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2014년 8월 11일 월요일]

시복식 날짜가 다가오니, 시복식날 교통 통제 정보가 인터넷에 뜨기 시작했다. 교통청에서 게시한 지도를 보니, 광화문 광장앞을 어떤식으로 사용할 것인지 대략 감이 잡혔다. 그동안 광화문 앞을 지날때마다 봐 둔 두 지점,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과 문화체육관광부 건물의 옆 계단 정도면 괜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 8월 14일 목요일]

교황님이 한국에 도착했다고, TV랑 뉴스에 교황님의 행보가 거의 생중계 되다 시피 하고 있었다. 그치만 나는, TV보다는 인터넷에서 지도 하나를 뚫어지게 들여다 보고 있었다.

교통 통제 관련 지도보다 더 상세한, 시복식날의 폴리스 라인이 표시된 지도였다. 참석자들은 폴리스 라인 안쪽에서 미사를 보겠지만, 나 같은 구경꾼들은 폴리스 라인 바깥쪽에 자리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이 지도는 내가 가장 알고 싶었던 정보를 담고 있었다.

막상 그 지도를 보니, 내가 자리를 잡으려고 봐 두었던 자리의 1순위였던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 건물의 옆 계단이 마치 폴리스 라인의 안쪽인 것 같이 보였다. 대충 도로와 주요 건물의 윤곽만 표시한 지도였기 때문에 구글맵의 위성 사진이랑 대조를 해 봐도 감이 잘 잡히지가 않았다. 그래도 모험을 하기에는 일초일각이 아쉬울 것이어서 이 자리를 포기하고 세종문화회관 옆 계단에서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문제는, 그 계단까지 도달하는 경로가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시복식 제대 쪽에 가장 가까운 경복궁역이 폐쇄되니 안국역에서 내린다면 광화문 앞으로 가로질러 갈 수가 없어 경복궁을 끼고 외곽으로 청와대 앞까지 빙 돌아서 3 km가량을 걸어 접근해야 하고, 경복궁 다음 역인 독립문 역에서 내린다면 버스나 택시 없이는 사직터널을 터덜터덜 걸어서 통과하는 수 밖에 없을 듯 싶으니 이건 아닌 것 같았다. 폐쇄되는 5호선 광화문역의 그 다음 정류장인 서대문 역에서 내린다면 정동 고개를 넘어 약 1.5 km를 걸어야 할 것 같고, 2호선 을지로 입구역에서 내린다해도 시청앞 광장을 끼고 돌아야 하니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았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넌다는 말은 이럴때 쓰라고 생긴 게 아닐까?

나오는 건 한숨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