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October 16, 2014

러버덕 (Rubber Duck)

러버덕(KBS 뉴스에서 사용한 이름)이 한국에 떴군요. 세상에 그런 게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10월 13일자 KBS 뉴스를 보던 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의 목욕 장난감인 러버덕을 본따 만들어진 16미터 (6층 건물) 높이에 1톤 가량의 초대형 러버덕인데, 석촌 호수 위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네요. 플로렌타인 호프만이라는 네덜란드 설치 미술가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2007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해서 미국, 홍콩, 일본 등 전세계 순회 전시중이라고 합니다. 호숫가를 지나던 사람들은 그 초대형 오리를 보고는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가는 듯 했고, 그 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저의 관심을 끈 것은 그 초대형 러버덕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만든 미술가의 인터뷰 내용이었습니다. 아마도 '왜 이런 작품을 만들었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7초가 안되는 그 짧은 시간동안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To get you out of your daily life and... well... to let you stop... and look! (일상으로부터 여러분을 데리고 나오기 위해서, 그리고... 음... 여러분이 (하던 일을) 멈추고... 눈길을 돌릴 수 있도록...)"

저는, 이 미술가가 "let you stop"이란 표현을 썼다는 것이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사역 동사 make와 let의 차이를 기억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만약 이 미술가가 "make you stop"이란 표현을 사용했다면, 우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러버덕을 바라봐 주기를 원하는 것은 바로 그 미술가가 되지만, 그는 "let you stop"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며, 그는 단지, 잠시 일손을 멈추고 숨돌리고 싶어 하는 우리들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꿈보다 해몽이 더 좋은가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우리가 너무 앞만 보며 달려 가면서 내 주변의 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가져왔기에 이런식으로 해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의 삶이 너무 바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 일도 너무 많지만, 챙겨야 할 것도 너무 많고... 나이드신 분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저보다도 한참 어린 친구들 중에도 깜빡깜빡하다가 어처구니 없는 실수한 얘기들을 하면서 '난 정말 문제가 많아' 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글쎄... 과연 그것이 그 개인의 문제일까요? 세상의 모든 것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점점 해야할 일, 알아야할 일, 챙겨야 할 일이 많아지고 점점 더 빨리 해내지 않으면 안되도록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정보의 양과 그 처리의 속도를 한참 넘어선 그런 세상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만 보고 정신없이 전속력으로 달려가더라도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하면 맞겠죠. 그러다보니, 잠시 멈춰서서 숨고르기를 할 틈도 없고, 옆을 돌아볼 여유는 더더욱 없는 것이구요...

요즘같은 세상에, 하루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푹 자고 싶고, 며칠만 휴가 좀 썼으면 좋겠고, 어디론가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지금 눈앞에 벌어진 일을 당장 해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과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그것조차 쉽지 않은 듯 싶습니다.

이렇게 잠시 일손을 멈추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서, 이 미술가는 잠시 그럴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멈춰서서 쳐다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초대형 러버덕을 만들어서 말이죠. 그래서 이 오리는 미술 전문 전시관 보다도 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는 일상 공간 속에서 더 진가를 발휘하는 멋진 작품이 아닌가 싶습니다.

1년쯤 전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운전을 하다가 동네 어귀에 있는 Stop 싸인 앞에 잠시 멈춰 섰는데, 차 안에 타고 있던 작은 아이가 "엄마, 저기 꽃 좀 봐" 하더군요. 고개를 돌려 보니, 그 싸인 근처의 화단에 하얀색 칼라꽃이 참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꽃을 많이 보게 되더라도 아름답다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에 지나쳐 버리는 것이 일상이었었는데, Stop 싸인 앞에 잠시 멈춰섰다 보게 된 그 꽃을 보면서는, 닫혀진 창문 틈으로 마치 그 꽃의 향기가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그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가 있었습니다.

잠시 멈추지 않으면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잠시 멈추지 않으면 눈에 보이긴 해도 그냥 의미없이 보내버리고 마는 것들이 많습니다. 이 미술가는 저절로 눈길이 가는 이 러버덕을 통해서, 우리 일상을 잠시 멈추고 어렸을때 목욕탕에 앉아 똑같은 모양의 오리 인형을 가지고 놀던, 이제는 우리의 기억속에서 저만치 밀려나버린 그 근심걱정없던 동심의 세계로 우리를 잠시 초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는 우리가 잠시라도 멈추어 서기 위해서는, 이렇게 두 눈이 번쩍 뜨이도록 6층 건물 높이만큼이나 커다란 초대형 러버덕, 아니면 Stop 싸인과도 같이 싫든 좋든 멈춰서지 않으면 안되는 강제 규정이 있어야 할 정도로 세상이 녹녹치 않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되었든 잠시 멈추었을때 느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느낌, 나를 둘러싸고 있는 풀과 나무와 꽃들의 아름다움,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안에서 솟아나는 감사와 찬미, ... 이런 것들을 좀 더 자주, 좀 더 많이 느끼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러버덕이나 Stop 싸인이 아니더라도, 좀 더 자주 멈추어서서 주변을 돌아보는 연습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멈추기 힘들면 조금만 더 천천히 가 보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목욕탕 구석에 굴러다니고 있는 조그마한 러버덕만 보더라도 금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