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16, 2014

기다림의 계절

대림은 기다림의 계절...

이마에 재를 얹는다, 금식을 한다, 극기를 한다 등등 "비장"한 각오로 맞이하는 사순과는 달리, 대림은 늘 조용히, 아니 좀 더 솔직히 표현하자면 아이들 선생님, 친구, 친지들에게 드릴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을 하느라고 늘 정신없이 보내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올해의 대림은 시험 공부를 한다는 핑계로, '뭔가 빠뜨린 것 같은데...'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네요.

그런데 이번 대림에는, 대림환에 초가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제 마음을 조금씩 더 환하게 해 주는 일들이 생기고 있어서, 시험 공부를 하고 있어야 할 이 시간에 다시 몇자 끄적거리게 되는군요.

대림환이 세워진 첫주 주일의 다음날인 월요일날, 차를 타고 어디를 다녀오는 길에 큰 아이가 뜬금없이 제게 물었습니다.

철수: "What was it again?"
지아나: "뭐?"
철수: "Lent thing-y?"
지아나: "아... Advent(대림)!"
철수: "(영어로) 좋아하는 일본 에니메이션을 일주일에 3시간만 보고 싶어"
지아나: "너 벌써 일주일에 3시간도 더 넘게 보고 있쟎아?"
철수: "(역시 영어로) 그러니까, 3시간만 보겠다고... 더보고 싶은데 3시간만 보겠다고..."

그제서야 이 녀석이, 오랜만에 자색 제의를 입고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님을 보고는, 신부님이 저런색 옷을 입고 있을때는 뭔가 희생하고 극기하고 그런게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뭔가를 포기하고 극기하는 건 사순에 주로 하고 대림시기에는 꼭 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해 주었더니, "Really?" 하더니 '휴~~'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더군요. 그 안도의 한숨을 쉬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무엇을 희생할 것인지 나름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고 그것이 자신에게는 그리 쉬운 결정은 아니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지난 사순이 생각나더군요. 우리에게 쾌락을 주는 무언가를 조금만 포기해 보자고 했을때 질색 팔색을 하며 씨알도 먹히지 않던 아이였는데...

운전하며 집에 돌아오는 내내 제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 올랐습니다.

대림환의 두번째 초에 촛불이 켜지던 날, 처음보는 신부님이 방문 오셔서 미사를 집전해 주셨습니다. 이 신부님이 강론 중에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그 사람과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고 또 그러고 싶어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로만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하지 말고 사랑하는 예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그러시면서, 자신이 맡고 있는 본당에서는 하루에 적어도 15분은 시간을 내어 그분과 함께 보낼 것을 아주 강조하고 있다고... 여러분들도 이제부터 그렇게 해 보시라고...

그 얘기를 듣자 귀가 번쩍 띄었습니다. 평소에 그러한 필요성을 많이 느껴왔던 터여서, 어떻게하면 아이들이 큰 거부감없이 하느님과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거든요.

그날 저녁, 샤워하고 나오는 아이들을 붙잡아 "오늘 신부님하시는 말씀 들었지?" 하고는 각자 방으로 밀어넣어 버렸습니다. "그러면 나 잠들거야" 하며 분위기잡는 조명도 못하게 하고 어떻게든 시간을 줄여보려고 잔머리를 굴리는 큰 녀석에게는, "그럼 내년부터는 15분으로 하는 거야" 하고 단단히 약속을 받아내고는 5분을 깎아주어야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던 큰 숙제 하나를 단박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치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10분 동안 방에 들어가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문을 열어볼 수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고...

그래서 얼마전부터는 10대 청소년을 위한 부담없는묵상 자료를 프린트해서 방에 두기 시작했습니다. 과연 읽으려나 싶었는데, 그래도 스테이플한 자리에 종이가 접힌 흔적도 있고, 어떤 날은 방에서 나온 직후에 식사전 기도를 진지하게 하는 걸 보면 들여다 보기는 하는가 봅니다.

지난 주일에는 분홍색 초에 불이 켜졌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사무실 옆 조그만 방 앞으로 몇명의 아이들이 줄 지어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 주중에 있는 판공 성사를 볼 수 없는 학생들은 미사 끝나고 고해 성사를 해 주시겠다고 공지를 하시던데, 여기서 하시나 보구나'

그런데, 그 아이들 사이에 서 있는 큰 아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번에는 성당에서 단체로 하는 판공에 참석할 수가 없어, 따로 고해 성사 보러 가자하면 엄청 궁시렁 거릴게 뻔한데 어떻게 구슬러서 데려 가야 하나 하고 고민이 많았던 터인지라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주일 학교도 다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물었습니다.

지아나: "너 아까 고해 성사했니?"
철수: "응"
지아나" "왜 했어?"
철수: "고해 성사할 시간(기회) 없어서..."
지아나: "주일 학교 학생들은 이번 주중에 판공해야하는 거 알고 있었어?"
철수: "응"
지아나: "근데 우리는 그때 갈 수 없는 것도 알고 있었어?"
철수: "응"
지아나: "그래서 미리 오늘 한거야?"
철수: "응"

하마터면 '양심 성찰은 제대로 하고 고해 성사를 보긴 한거냐?' 하는 말이 튀어나올 뻔했었는데 잘 참았습니다. 그리고는, "정말 잘했다"고 마구마구 칭찬을 해 주었지요...

엄마가 지 좋으라고 하는 말과 행동이 오히려 역효과가 되어 버리는 틴에이저가 되어 버린 큰 아이... 올해부터 가톨릭 사립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신앙과 일상이 하나가 되어버리는 생활을 하고 있는 작은 아이와는 달리, 아직도 갈 일은 멀지만 엄마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늘 조바심이 나게 했던 큰 아이... 덩치는 어른만해도 신앙인으로서는 늘 갓난아이인 것만 같았던 그 아이가 어느새 이만큼 훌쩍 자라있음을 보게 되면서, 커다란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땡겨 받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 며칠 있으면 대림환의 마지막 초에 불이 켜 집니다. 이번에도 촛불에 불이 밝혀지면 뭔가 깜짝 놀랄 선물이 있지나 않을까 싶어 이번 주일이 많이 기다려지네요.

기다림의 계절, 대림이라서 더 그런 걸까요?